안녕하세요. 저는 산업디자인을 전공하는 졸업반 멘티입니다. 벌써 졸업반인데 그동안 준비한 것이 많지 않아 걱정입니다. 많은 조언 부탁드리며 글을 시작하겠습니다.
현재 저는 디자인을 잘한다는 확신이 없는 상태며 정말 디자인을 하고 싶은지도 의문인 상태입니다. 지금이라도 GUI가 아닌 UX로 진로를 옮겨야 하는지도 고민이고요. GUI나 UI 쪽은 포트폴리오가 중요한데, UX는 어떤 것이 중요한지 잘 모르겠습니다. UX 직무에 비교적 고학력자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대학원을 준비해야 하나 혼란스럽습니다.
우선 지금 10월에 있을 졸업 전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UI나 UX 직무로 인턴을 해볼 예정입니다. 졸업 전시를 끝내면 영어 공부도 시작할 예정입니다. 영어 공부도 토익, 토스, 오픽 등 어떤 시험을 먼저 준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질문을 요약하자면 UI 혹은 GUI 직무를 지원할 때 포트폴리오 안에 프로젝트 개수는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요? 또 프로젝트 내에서 어떤 점을 강조하는 것이 좋을지 조언 부탁드려요. 요새는 코딩도 중요하다던데 코딩을 배워두는 것이 유리할까요?
만약 UX 직무로 진로를 변경한다면 어떤 스펙을 준비해야 할까요? 대학원 진학이 유리한가요?
마지막으로 영어 성적은 어떤 것을 먼저 준비하는 것이 좋을까요? 목표 점수는 어떻게 설정하면 좋을까요? 디자인이 좋아 미대에 진학했는데 취업 시즌이 다가오니 여러모로 막막하네요. 멘토님의 조언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멘티님, 안녕하세요. 질문 글만 읽어도 절박한 심정이 느껴집니다. 제가 멘토링을 하는 이유도 비슷합니다. 저도 멘티님처럼 절박했던 상황이 있었는데 그때는 현직자로부터 도움을 받기 어려웠거든요.
디자인을 잘한다는 확신도, 원한다는 확신도 없다는 고민이 특히 와닿습니다. 저도 4학년 때 취업을 앞두고 멘티님과 같은 고민을 했거든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때는 당장 눈앞의 취업만을 고민하다 보니 시야가 더 좁아져서 조급했던 것 같아요. 현재 멘티님의 상황에서 와닿는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저도 UX 디자이너로 일을 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어요. 멘티님도 너무 조급해하지 마세요. 우여곡절이 있더라도 원하시는 꿈을 이루실 수 있을 거예요.
특별한 감각이 없다고 느껴지는 디자인과 학생은 논리나 이성적인 프로세스가 가미된 디자인이 더 잘 맞을 수 있습니다. 그런 성향의 학생들은 UI나 UX 분야에 흥미를 느끼는 게 자연스러운 것 같기도 해요. 저도 그랬거든요.
포트폴리오에 정답은 없다
지원자 입장에서 프로젝트 개수가 고민이 될 것 같긴 한데 사실 개수가 당락을 좌우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갓 대학을 졸업한 학생이 4, 5개의 프로젝트를 포트폴리오에 담아 제출한다면 오히려 의문이 생길 것 같아요. 경력직 지원이 아니니 양보다 질적인 측면에서 스토리를 잘 푸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어차피 회사에서 신입을 뽑을 때 기대치가 높지는 않습니다. 입사 후 교육이 이뤄지기 때문이죠. 따라서 지원자의 능력치보다도 입사 후 잘 적응할 수 있는지를 더 봅니다. 회사에 잘 적응할 수 있는지, 현실을 마주했을 때 너무 당황하지는 않는지 등을 볼 거예요.
그럼 프로젝트 내에서 어떤 것을 강조하면 될까요? 당연히 내가 이 프로젝트에서 얼마큼 기여를 했는지 투명하게 밝혀야 하고 그 과정을 잘 담으시면 됩니다. 저니맵, 어피니티 다이어그램, 퍼소나 등 이쪽 분야와 관련된 단골 워크숍이나 세미나에 참여했다면, 그 경험을 드러내도 좋고요.
중요한 것은 결과물이 아니라 결과물에 도달하기까지의 여정, 그 안에 녹아있는 생각입니다. 근거 데이터가 부실하거나 논리적 비약이 심하면 최종 결과물은 그냥 기술적인 작업과 다를 게 없어집니다.
예를 들어, 사용자 행동 패턴을 설문조사로 알아낸 후 인터페이스를 디자인했다면 데이터 기반으로 했음이 증명되어 신뢰감을 주겠죠. 디자인 결과물을 실제 사용자에게 선보여 계획대로 잘 동작하는지도 확인하고, 문제가 되는 부분이 있다면 개선도 해야겠죠. 이런 일련의 과정이 들어간다면 그 자체로도 좋은 포트폴리오입니다. 포트폴리오에 정답은 없습니다.
조심해야 할 부분은 자칫 임팩트 없이 구구절절 설명으로 이뤄진 포트폴리오가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채용 담당자나 실무 담당자가 봤을 때 매력적일 부분만 선별적으로 구성해야 합니다. 포트폴리오가 완성되면 다시 문의 주세요. 멘티님의 포트폴리오를 보면서 함께 전략이나 디테일을 고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코딩, 알면 좋지만 필수는 아니다
코딩을 배워야 할지 고민이시군요. 코딩, 배워두면 좋겠죠? 배워서 안 좋은 것은 없어요. 분야 자체가 학제적이기 때문에 다양한 학습이나 경험은 분명 언젠가 쓰일 곳이 있습니다. 코딩을 알면 개발자와 협업 시 상대방을 잘 이해할 수 있기에 분명 장점이겠죠. 하지만 취업이라는 목표를 위해 준비된 자원은 한정적이기 때문에 전략이 필요해요.
예시를 들어 볼게요. 국문과 출신의 UX 디자이너가 전공을 살려 UX Writing 직무를 할 확률이 높습니다. 반면 유학파나 교포 출신의 디자이너는 해외 비즈니스와 관련된 UX 업무를 시키겠죠. 특히 회사가 클수록 전문성에 따라 일이 세분되어있기에 내가 잘하는 분야를 집중적으로 어필하시는 게 좋습니다. 즉, 코딩을 배우는 것도 좋지만 만약 시간적 여유가 없다면 잘하는 것에 조금 더 집중하시길 추합니다.
저도 코딩을 배우고 싶지만 타이밍을 계속 못 잡고 있습니다. 반면, 시각디자인을 전공했으나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를 쓰지 않은 채 UX 업무를 본 것이 수년째입니다. 내가 지원하는 회사와 지원하는 포지션에 따라 원하는 것이 다를 테니, 그 부분을 잘 고민해보세요.
UX 직무는 대학원 진학이 유리한가요?
저는 석사과정에서 지금의 회사와 산학연1)을 맺게 되면서 입사하게 된 케이스입니다. 운이 좋았죠. 물론 대학원 진학 전에도 사회생활을 하긴 했습니다. 대학원 진학 자체가 유리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대학원 진학의 여건과 환경이 마련되어 기회가 생긴다면, 시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오프라인 멘토링을 통해 만났던 멘티가 있습니다. 그분은 졸업 후에 계속되는 취업 실패로 저를 찾아왔습니다. 많은 대화 끝에 대학원 진학을 하고 싶다고 도움을 청했고, 지금은 제 연구실의 후배가 되어 석사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이분 말고도 다양한 학생들이 각자의 상황에서 치열한 고민을 하고 계실 텐데요. 제 조언은 언제나 경험을 통해 실전에 강한 전투력을 기르라는 것이었습니다.
요점은, 대학원을 진학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유리하다는 것과는 별개의 이야기죠. 실제 학사와 석사 비율은 반반에 가깝습니다. 석사가 조금 더 많긴 하지만 회사 다니면서 석ㆍ박사를 밟는 분들이 많아서 석사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봐도 될 것 같아요.
UI, UX는 이론보다 실전! 실무에 가까워지세요!
뭘 선택해도 상관없어요. 오히려 UI, UX 분야는 실무 경험이 중요하기 때문에 최대한 실무자의 이야기를 많이 듣길 바랍니다. 그런 점에서 잇다에 질문을 하신 것은 좋은 방향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질문 서두에 인턴을 할 계획을 밝히셨는데 이것도 좋은 선택입니다. 실제로 해봐야 아는 것들이 많습니다.
최대한 다양한 경험을 해보세요. 짧은 기간이라도 일해보면 좋습니다. 이 분야가 나와 맞는지 아닌지도 알 수 있고, 어떤 것을 더 준비해야 할지도 알 수 있습니다. 고민하시는 부분들도 회사를 경험해보면 오히려 쉽게 답을 찾으실 수도 있습니다. 대기업만 생각하기보다 스타트업이나 작은 기업에서라도 일단 실무 경험을 쌓으시는 걸 추천해 드립니다.
실무 프로젝트 경험한 것 자체가 가산점이 될만한 부분입니다. 또, 석/박사는 전문성에 대한 기대를 하게 합니다. 연봉 협상 시 초봉도 다르므로 어떤 전문성이 있는지를 더 살피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UX 팀 인력구성이 다양하다는 것은 모두가 동일한 과정을 밟아온 게 아니라는 겁니다.
UX 디자이너에게 필요한 영어 성적은?
정해진 것은 없습니다. 본인이 공부하기 유리한 시험을 준비하세요. 토익이 익숙하다면 토익을, 오픽이 익숙하다면 오픽을 준비하시면 됩니다. 영어가 중요한 업무라면 영어가 특기인 사람에게 업무를 줄 거예요. 영어 능력이 뛰어나지 않는데, 강제로 영어가 필요한 업무를 주지는 않습니다.
영어가 특기인 분들은 종종 사업자 UX 팀에서 업무를 수행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자면, 스마트폰은 제조사가 생산하지만, 판매를 하지는 않습니다. 통신망이 상품에 투입돼야 비로소 핸드폰의 역할을 하므로 제조사가 통신사에 제품을 납품하는 식이죠. 통신사에 의해 제품이 판매되니 이들과 교섭하는 업무가 발생합니다.
이게 UX랑 무슨 상관이냐고요? 통신사에서 특정 앱을 홈 화면에 넣어달라거나 필요 없는 기능은 빼달라는 요구를 해오기도 합니다. 제품을 만드는데 전체적인 기획 방향이 있을 테니 무조건 들어줄 수는 없겠죠. 그래서 내부 UI, UX 디자이너가 통신사와 소통을 잘해야 합니다. 외국 통신사라면 사업자 UX 팀에서 영어 능력이 중요할 수 있겠죠.
특히 대기업에서는 UI, UX 문서를 거의 다 영어로 작성합니다. 동남아시아 쪽 외주 개발자들이 그 문서를 봐야 하기 때문인데요. 결국은 때에 따라 다릅니다. 영어를 써야 할 순간이 있기도 하고 다른 방법으로도 소통이 되는 순간도 있습니다. 물론 채용 과정에 있어서, 점수가 다 비슷하다면 영어 점수가 당락을 결정하는 요소가 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것은 극단적인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영어 성적을 높이는 데 많은 힘을 쏟기보다도 자신만의 강점을 더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아요. 다른 지원자와 차별화가 되도록요.
이야기가 조금 겉돌았는데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말씀드리자면 특정 시험 성적이 유리한 것은 없습니다. 점수 역시 합격선 이상만 되면 크게 문제없을 거로 생각합니다. 물론 영어가 중요한 포지션이라면 얘기가 좀 달라지겠죠.
끝으로, 회사에 들어갈 수 있는 문이 하나는 아니란 점을 언급하고 싶어요. 공채만 답은 아니라는 거예요. 저도 산학이 계기가 되어 취업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특히 UI나 UX 같은 분야는 특수성이 있다 보니 취업 변수가 다양하고 채용 과정이 정형화되어 있지 않습니다.
실제로 현업에 계신 UX 인력도 다른 분야에서 오신 분들이 많습니다. 개발팀 개발자가 UX 분야로 넘어오는 식이죠. 신입보다는 경력자를 선호하는 분위기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신입으로 지원하시는 분들은 진입 장벽이 높다고 느껴지실 거예요. 경기가 안 좋으면 UI, UX 직군을 따로 뽑지도 않습니다. 사실 근래는 경기 침체로 신입을 잘 뽑지 않습니다.
공채만 전념하다가 자존감은 낮아지고 막막해하는 학생들을 많이 봤습니다. 저도 다시 돌아가면, 똑같이 헤맬 것이기에 취준생들의 고민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런데도 실무 경험을 차근차근 쌓아서 포트폴리오를 잘 완성한다면 기회는 충분히 많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회사에 들어갈 수 있는 문은 생각보다 다양합니다. 꾸준히 준비해서 좋은 결과 있길 바랍니다. 멘티님을 응원합니다.
1) 산학연 : 산업계와 학계와 연구 분야를 아울러 이르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