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번째 회사를 다니면서 느끼는 점(Part 6 : 세번째 회사 초중기)
지하철이 옆에 있는 세번째 회사였다.버스로 몇 정거장 차이를 두고, 가까운 거리에 있는 빌라에 집을 마련했다.계절답게 날씨는 차가웠지만, 그렇게 춥다고 느껴지지도 않았다.첫 출근을 했을 때 버스가 회사 앞에 정확히 서는 것이 너무나 멋있어 보였다.웅장한 그룹본사 건물을 보고 놀라고 출입문에 사원증을 대고 들어가는 것도첫 직장이후 오랜만에 해보는 것이었다.지하에는 몇개에 카페테리아가 있어서 점심을 먹은 후나 일과 중에간단히 커피를 마시거나 이야기를 하러 갈 수도 있었고끼니 때마다 나오는 밥도 종류가 서너가지라서 선택권이 있다는 것도아주 마음에 들었다.사무실의 분위기는 직장인이라면 흔히 아는 낮은 파티션이 팀을 가르는 풍경이었다.(잘 모르겠다면, 드라마 '미생'을 한 번 보면 될 것이다.)OJT를 받고, 부서로 인수인계된 날. 회식과 더불어 좋은 이야기가 오갔다.내가 지원한 전략이 아닌 기획으로 끌어온 담당임원님의 자랑이 이어져서 부끄럽기도 했다.나는 아직 일을 시작도 안해서 부담을 느꼈지만, 그래도 해오던 대로 열심히 하리라 다짐을 했었다.그곳에서 처음 잡은 업무는'회의체 운영'과 '사업부 실적 관리'이었다.회의체 운영을 하며 높으신 임원들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고,'자네는 새로 왔나?'라며 묻는 임원들께 얼굴을 알리기도 했다.회의가 상당히 많았다.한달에 공식 회의체는 5번 내외였고,사무실에서 팀내/팀간 회의도 수시로 이루어졌다.업무적인 회의가 있을 때마다 노트북을 들고 다니며바로 프로젝터에 연결하고 다같이 토론하고 이야기하고점심을 먹고 회의하고, 다시 수정하기를 반복했다.회사에서 지급되는 노트북도 새로운 것으로 받았다.화면은 모니터보다 작지만, 이정도의 노트북이라면 크기가 매우 큰 엑셀파일도칼날에 수박 갈라지듯 순식간에 열릴 성능이었다.투자검토를 하긴 했으나, 각 사업부에서 이미 검토가 끝나고 올라온 상태여서굳이 내가 많이 손볼 것은 없었다.다만, 보고장표의 계수들의 합이 맞는지 또는 맞춤법이 잘못되었는지를 많이 봤다.엑셀자료들은 항목별로 이상없는지, 고려하지 못한 요소는 없는지도 판단한다.보통 그런 것을 '정합성 검증' 이라고 표현한다.투하자본부터 적절성을 검토하고WACC을 산출(베타값이라든가 가치판단해야 하기에 생각이 필요한..)해서적절한 할인율로 최종 NPV와 회수기간을 구하고다시 세밀하게 파고들어 제조경비부터 비용의 적절성 등영업외손익까지 보는 것이 내가 하고 싶었던 투자검토였으나,이미 그룹 본사에서 가치판단이 필요없게 고정값으로 주어진 것이 있어서그런 작업도 별도로 필요가 없었다.대신 장표를 업데이트 하거나 계수를 검증하는 것으로 업무가 고정되었다.그리고 나는 Risk관리라는 나 혼자만의 업무를 맡았다.(훗날, 힘들게 들어온 이 회사를 떠나게 되는 도화선이 되었다.)퇴근시간은 보통 8시 전후 였고, 일이 있으면 12시, 때로는 새벽 3시까지 일을 했다.그럼에도 혹시나 내가 일찍 퇴근할까봐 아내는 밥도 먹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그래서 많이 어두워진 시각이 아니면, 같이 손잡고 밤마실을 다녔다.월급날에는 은행 어플에 파란색으로 입금된 숫자들을 보며 힘을 내곤 했다.근처 대학교 앞의 저렴한 3천원대의 대패삼겹살이 주메뉴였고, 그곳을 아내는 매우 좋아했다.주말에는 근처 번화가로 나가서 데이트하고, 또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를 돌아다녔으며,글쓰기를 좋아했던 아내는 내가 업무중인 평일에 지하철로 혼자 서울까지 가서글쓰기 강좌를 듣곤 했다.그 사이 나는 회의체운영에 익숙해졌으며, 손익이나 투자검토 자료를 만지는 것에자판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었다.사실,기획팀이란 답이 없는 부서다.그말은 기획팀 자체가 답이 나오지 않는 갑갑한 부서라는 말이 아니고,특별히 정해진 업무를 제외하고는 다른 팀에 주기 뭐한 업무를가지고 와서 하는 부서라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다시 말하면,일반적으로 보이는 기획팀은 회사를 운영하는 전략(영업적/재무적/생산적)을제시하고 이끌어가는 팀으로 보일지 모르나,대게 추정(손익, 투자)관련 업무가 주를 이룬다.또한, 경영진이 지시내린 사항 중 뭔가 확실히 담당팀이 정해지지 않은 업무를맡게되는 부서라고 보면 될 것이다.그래서 업무가 늘어가고, 때로는 답이 없는(정말 답이 안나오는)일을 하게 된다.자부심은 '이건 왜 알아보지 않았나, 이걸 위에 보고하면 내가 한소리 듣겠냐 안듣겠냐'라는 질책에 무참히 부서지고책임감은 '이걸 왜 이런식으로 했나, 내가 시키는 것만 한다고 그것만 하면 되냐'라는 압박에 서서히 가중된다.경험상.누가 봐도 힘든 일인데 그 일을 하기 편하게 따듯한 말과 격려를 해주는 사람과누가 봐도 쉬운 일인데 그 일을 세상에서 가장 하기 어렵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하나의 예를 들어볼까 한다.집에서 청소하고, 빨래를 하고 있는데형이 와서 라면하나만 끓여 달라고 한다.그러면 나는 경험을 바탕으로해서 가장 맛있는 상태로 라면을 끓이면 된다.그런데..1. 일반라면을 끓일 것인지, 짜장라면을 끓일 것인지, 비빔라면을 끓일 것인지와 그 이유2. 라면을 끓일 때 물의 양은 얼만큼 할 것인지와 그 이유3. 면을 먼저 넣을 것인지, 스프를 먼저 넣을 것인지와 그 이유 및 근거4. 3분을 끓일 것인지, 4분을 끓일 것인지와 그 이유 및 차이점5. 조리중에 불이 크게 날 경우를 대비해 소화기는 비치해 관리되고 있는지6. 불이나면 옆집에 먼저 알릴 것인지, 119에 신고를 먼저 할 것인지7. 파나 계란같은 별도의 토핑이 필요한지, 필요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고 언제 넣을 것인지형이 사사건건 참여를 하며 보고를 하라고 한다.그리고 빨래는 왜 널다가 말았으며, 작은 방은 왜 청소가 아직 덜 되어 있는지추가적으로 보고를 하라고 한다.그렇게 되면 '라면 끓이기'는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 되는 것이다.물론, 회사는 이익집단이다.그런 회사의 특수성을 감안해 A-1, A-2, B-1, B-2, C-1, C-2 등 변수에 따른비교분석 자료를 제시해야 한다.경영진의 합리적인 판단을 듣고자 그렇게 열심히 분석하여 신속하게 올리는 것이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보고의 본질일테지만,저런 1~7의 과정을 한번 겪고 나면라면끓이기의 목적, 즉 업무의 목적은맛있는 라면 만들기 또는 최선의 합리적 결과물 창조가 아니게 된다.보고의 본질은 '두려움'이 된다.경영진의 한마디가 두려워서 오탈자 하나 없이 자료 만들기를 반복한다.손을 떨면서 라면 스프봉지를 뜯고, 중간중간 맛을보며, 식은땀이나고면이 불지는 않을까 가슴이 뛰게 되며, 만에 하나라면을 줬는데 형이 맛이없다고 냄비째 나에게 던지면 화상입지 않을까생각하며, 업무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하게 된다.이렇듯 그곳의 기획팀 분위기로서는보기에 힘들지 어떨지 모르는 일을 항상 아랫사람들이 벌벌 떨만큼어렵게 생각하도록 만드는 문화가 존재했다.내가 기획팀을 원했던 이유는물론 기획팀 고유의 업무를 하긴 해야했으나,칼럼 Part1에도 기술해 놓았듯이회계학을 전공했으나, 1년 12달 마감할 때마다 밤12시까지 남아있는게 싫었고,재무적 시각을 키워 투자검토에 전문성을 가지기 위해 기획팀을 했던 것이다.두번째 회사에서는 그런 것에 상관없이 일을 전문적으로 할 수 있었다.두번째 회사에서 책임을 지면서 일을 했던 것으로 미루어보면천억대 매출신장과 관련 있는 투자건을 맡았을 때에도원가부터, 향후 손익추정까지 큰 문제 없이 했었다.하지만,세번째 회사는 지시를 내리며 방향타를 조정하는 사람(과장, 차장 및 임원)이 많았으며,심지어 지나치게 구속하는 스타일(집에서 저녁먹다가 불려와서 밤까지 일도 해봄)이었기에 점점 나의 만족감은 실망감으로 변해가고 있었다.세번째 회사는 배의 크기에 비해 방향타가 지나치게 작았고, 선장이 많았다.선원들은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정신을 못차리고 있었다.이쯤에서..좋은 이야기를 몇개 써주고싶다.대기업이라는 타이틀 답게 복지는 좋았다.회사자체의 콘도가 있어서 예약하면 이용이 가능했다.회가 콘도가 아닌 일반 펜션을 이용해도 어느 정도 지원금이 나왔다.그리고 복지포인트(카드)라는 것도 처음 받아서 사용해봤고,MRI등 병원비도 지원이 되었다.과연 이 복지사항들이 좋은 이야기인줄은 모르겠지만.....회의이야기를 하자면,(말해봐야 누구나 이미 아는 상황일 것)회의에서 의견의 공유는 이루어지되 결과는 같았다.다시 말해,의견 하나, 의견 하나, 의견 하나, 의견 하나가 순조롭게 모아져종합의견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의견 하나, 의견 하나, 의견 하나, 의견 하나가어렵게 입밖으로 나오고 힘들게 모아진뒤마지막 10분을 남겨놓고 무시되고..누군가의..단독의견..하나만 남게 되었다. 전형적인 마라톤 회의의 결과로 모든 의견들은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거품에 불과했으며,결과적으로 높은 사람 한 명의 의견으로 자료를 만들기로 한다.다른 직무의 회의도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으나,기획팀의 회의는 거의 그런 방식의 회의가 많다.하지만, 많은 사업부의 내용을 모르는 나로서는오히려 그러한 회의에 참여하면서 더욱 빠르고 냉철하게사업부의 손익과 현재상황, 동종업계를 알아갈 수 있는 기회였다.그런 기회를 통해 사업부의 상황과 손익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었다.그 이상으로 아웃풋을 만들어 낼 욕심도 있었으나,'두려움'으로 인해 시도조차 할 수가 없었다.사실 그런 사항들로 인해 이 회사에 대한 만족감과 충성심이 한번에사라진 것은 아니다.나름, 많은 사업부를 관리하며 재무(투자)적 시각도 한층 높아졌으며,업무중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요소들이 눈에 들어올 때면 행복했었다.그렇다 이성의 끈을 놓아서는 안된다.나는 사고로인해 죽다가 살아났으며, 이 회사는 내가 그토록 오고 싶어 했던 회사였다.그리고 혹시나 회사를 그만두게 되면 젊은 나이에 이직이 많은 상황을면접에서 소명하는 자리가 마련되지 않는한 서류상으로 좋게 보이지는 않을 터.진심을 다해 나는 일을 해야 한다.그러나, 라이프 밸런스는 처참히 깨졌고, 때때로 무능하다고 스스로를 탓할 정도로회사 생활에 대한 회의감이 밀려왔다.회사를 입사하고 어느정도 일이 익숙해졌을 무렵 그만두고자 생각한 이유는업무적인 이유보다 문화적인 이유가 컸었다.회사에서 따로 관련 팀이 있어 문화를 개선하고자 했으나,그것은 현장까지 전파되지 못하고 5분짜리 방송 PPT안에 캠페인으로서한번만 보여지고 광고끝나듯 끝나버렸다.회사의 Risk사항들을 관리하는 업무가 있었다.그 업무도 최대한 많은 자료를 내용을 파악하려 했으나,부서간 협조가 어려웠고, 또 사업부의 상황을 모두 알기도 사실상 불가능이었다.내가 먼저 불가능이라고 말하지 않았다.'지금 Ray대리가... X발 말도 안되는 업무를 하고 있는거야, 막말로 나도 몰라. 이걸 어떻게다 파악하냐, 이거 다 아는 사람이 어딨냐'관련 자료를 일부 전달해주는 다른 분이 먼저 말해주었고,그제서야 차장, 과장님이 모두 나에게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역시 회사에서는 계급이 깡패다.내가 먼저 말했으면...'너만 힘드냐, 너 그래서 일안할래?' 라고 한소리 들었을텐데..업무 외적으로는 잘하는 편이었다.늘 하던 것처럼나름 회식자리 분위기나, 사무실 분위기를 띄우는 말을 했었고전 회사에서 그랬던 것처럼 잘 어울리는 사람중에 한명이었다.나는 그런식으로 사람들의 고유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면서 살갑고 정감있는사람이 되고 싶었고, 정해놓은 목표위해 한단계씩 밟아나가는평범한 회사원이 되고 싶었다.단지 그뿐이었다.한편의 칼럼에, 기승전이 모두 담길만큼 짧은 회사생활이었다.그만큼 가슴앓이도 많이 했었다.내가 오고싶어 했던 회사에서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이 너무나 소스라치게 슬펐다.기승전에 이어서 '결'로 이어지는 상황을 만들어준누군가의 한마디는 지금도 상처로 남았다.참은 것이 잘한 것인줄은 알지만,한마디도 못했던 내 자신이 초라했다.그런 이야기를 듣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