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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기획
Ray Ryu 멘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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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추진실
답변율 75%
답변수 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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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멘토링 분야
인생/기획/손익/원가/회계/재무/사업계획
#직무 #외국어 #스펙 #면접 #진로 #기타 #회사생활 #이직 #자소서
멘토 소개

요즘에 말할때 조심하게 됩니다.
나이와 경험이 많다고 누군가의 나침반을 흔들어 놓는 실수를 범하는
"조언, 충고, 말"을 하게 될수도 있기에..

그래서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들려주고, 경험을 이야기하며
그 속에서 상대방이 자연스럽게 거를 것은 거르고, 공감할 것은 공감하며,
능동적/주체적으로 스스로 답을 찾는 것이 그 무엇보다 값지다고 생각합니다.

주요 경력

S반도체 사원
후성그룹 사원
LS그룹 대리

기타 사항

모교에서 멘토강의 경험도 하고 후배들의 꿈을 응원합니다

고맙습니다 (4)
은솔 고맙습니다
약 1년 전
2001년에 창업하셔서 진심으로 열의를 다해 사업을 이어나가고있는 회사는 맞는듯 합니다 .. 긴 답변 감사합니다. 참고 하겠습니다!
이유정 고맙습니다
약 4년 전
질문이 많았는데도 상세하게 답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특히 마지막 말이 마음에 와닿아요. 어제 칼럼을 읽을 때도 그렇고, 답변 마지막 말을 볼 때도 그렇고 결국 취준 중이던, 일을 하던 멘탈을 잘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해외대 출신인데 상경계열도, 이공계도 아니라 주로 영업 직무를 지원해보란 얘기를 들었어요. 하지만 성격상 계속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거래처를 발굴하고 하는 일에 부담을 느끼고, 외근보다는 사무실에서 일하는 걸 더 선호하는 편이라 다른 직무를 알아보게 됐습니다. 사실 이 전까지는 공기업 한 곳만 준비하다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늦게 사기업도 준비하게 되어서 '직무가 뭐 있는지부터 알아보자' 하다 기획을 알게 됐어요. 직무강의도 들어봤는데 (당연히 현실 상황에 비해선 포괄적이겠지만요) 경영진의 선택을 돕는 일을 한다는 것, 기업 내 부서 실적을 관리(하고 비교해볼 수 있다는 것)한다는 것에 흥미를 느끼기도 했고, 강의를 듣는 동안 '엇, 내 경험 중에 이런이런 게 있는데!' 하면서 기획을 지원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물론 강의로 기획 업무, 적합한 성격 이런 것들을 들어보았을 때 조금 걱정되는 부분도 있고, 고스펙자들만 모이는데다 회계 지식도 없어 걱정이 되지만, 어차피 어떤 직무든 나에게 100% 맞는 직무는 없을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직무보다도 더 해보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어 기획을 하고 싶습니다.
기예진 고맙습니다
약 5년 전
감사합니다ㅎㅎ 어떻게 해야 하나 막막했는데 일단은 제가 알고있는 기초 지식을 다시 제대로 복습하고 가면 되겠다고 느꼈어요! 물어볼 곳이 없어 막막했는데 도움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시 힘내서 면접 준비하고 또 궁금한게 생기면 여쭤볼게요! 그럼 안녕히계세요??
고맙습니다 더보기
콘텐츠 (2)
전략/기획
기획직무, 숫자를 읽는 힘이 중요합니다
기획직무의 업무 프로세스가 궁금합니다. 막연히 내년도 계획 수립, 이슈 조사 및 분석, 회의체 운영 정도로 알고 있는데 이 외에도 실제로 기획이 어떤 업무를 하는지 궁금합니다. 현직자가 알려주는 1년 차/5년 차 일 때 기획 직무와 과업은 어떻게 되는지, 기획 직무 커리어 패스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고 싶습니다.
Ray Ryu 멘토
S----- · 사업추진실
31
약 4년 전
전략/기획
숫자의 전략기획, 단 면접은 태도부터
전략기획 직무에 관심있는 취준생입니다. 좋은 기회가 생겨 CJ 올리브영 사업관리 직무 최종면접에 가게 됐어요. 직무 소개를 보면, 재무/회계 지식이 필요 역량이라고 되어 있는데요. 전략기획에서 회계가 중요한 것은 알고있는데, 전략기획 직무 면접 준비로 재무제표를 읽어보고 가거나, 기본적인 회계 원리를 다시 봐야 할까요?
Ray Ryu 멘토
S----- · 사업추진실
22
약 4년 전
에세이 (8)
4번째 회사를 다니면서 느끼는 점(Part 8 : 네번째 회사 후기)
사회생활과 직장생활을 하다보면,흔히들 말하는 다수결의 법칙이 존재한다.10명의 사람중 8명이 같은 말을 하면 비록 2명의 소수의견이 존재하기는 하나,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8명의 입밖으로 나온 의견이 웬만해서는 거의 들어맞는다.예를 들면,'사람은 서울로, 말은 제주도로'...고향으로 온 후 네번째 회사는 근무하기 괜찮은 환경이었다.앞서 칼럼에서도 나열했듯이 퇴근이 늦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또한, 일에 있어 이견이 있으면 그자리에서 바로 협의할 수 있도록 서로가 최대한 빠르게 협의하려고 한다.그러나,요즘 같은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상황에특히, 기획업무를 하면서 회사의 현실을 누구보다 빠르게 보는 시각이 길러지면,이 회사가 괜찮을지, 나는 어떻게 될지 다른 사람보다 먼저 그 모습이 보이게 되는 경우가 많다.그래서 앞서 그만둔 회사들은 현재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소식을연락하는 동료들로 부터 심심치 않게 듣게 된다.물론,먼저 움직인 것은 같은 기획팀 부서인원들..왜 나는 정착하기 어려운 것일까,차라리 떠나고 난 후 다른 사람들은 남아 있다면, 나만 유별하구나 하고 자책할텐데..왜 다들 같이 떠나는 것일까.고향기업에서 맡은 기획업무는 고된 것이 없었다.원가와 예산, 손익추정과 분석, 그외 회의체 운영 등충분히 하고도 남는 일이었다.오히려 조금 심심할 정도로..그래서 다른 업무를 찾아서 직접 의견을 내면서 일을 진행하고는 했다.허나,공장하나가 Shut down되고, 급여가 한번이 밀리고, 두번째 밀리는 시점이 되었다.매달 수십억의 적자, 그럼에도 새로 오신 상무님과 고문님은 살려보겠다는 의지를 보였으나,기존 인원들의 반응은 그러지 못했다.말이 안되는 수준의 영업이익을 낼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것부터,식당에서 점심으로 나온 상추가 시들었다고 총무팀장을 불러 얼차려 시키는 것까지..전형적이며, 고지식한 '갑'의 마인드가 출중한 임원들 이었다.나는 기획팀이지만 미래전략이나 비전을 제시하는 업무를 하는 것은 아니기에내가 일하는 만큼 보상받고, 능력을 개발할 수 있는 환경이 되면,총무팀장이 식당에서 얼차려를 받든 말든, 큰 상관이 없는 일이다.물론, 그런 문화를 따르며 그 모습에 찌든 그 분들의 자세가 보기 좋다는 말은 아니다.일을 했으나, 월급이 안나온다는 것은 그 어떤 핑계로도 용서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당장 입에 풀칠해야하는 상황인 직원도 있다.임직원을 모두 불러 놓고, 당분간의 회사의 실정을 설명하는 것은 좋은 취지이나,그런 자리에서 '나도 마이너스 통장이 있는데, 이참에 다들 마이너스 통장하나씩 만드는 거어렵지 않습니다.'라며 장난식으로 말하는 리더의 모습은모든 직원을 경악시키게 만들었다.결과적으로 나는 떠났다.이번에도 나의 중대한 결정뒤에는 와이프의 조언이 큰 작용을 했다.이제 아이가 기어다니고 있는데아버지가 네번이나 직장을 때려 치우다니,말로 설명하는 자리가 없다면, 서류상으로는 낙제점을 받을 경력인 상태다.그럼에도 이력서를 지원하는 것을 다시 시작했다.저장된 이력서만 수백개, 종류별 물음에 대한 자기소개서 수백개.이제는 보지 않아도 술술 나오는 면접 대답들.서류에서 번번히 탈락을 하며, 슬픈 예감에 사로 잡힐 무렵.이따금씩 통과되는 서류전형으로 제주도를 제외한 모든 도에 있는회사의 면접에 한번씩 가보게 되었다.(강원도는...없었으므로 제외)했던 업무와 이직사유, 상황별 물음에 대한 답이 준비를 하지 않아도편하게 나왔다.구직을 다시 시작한지 2개월나는 신기하게 S사 계열로 가게 되었다.그동안 좋은 면접 자리도 많았고, 헤드헌터의 추천으로 면접을 본 경우도 있었으나,대부분 급여를 맞춰주기 어렵다는 식의 면접탈락이 많았다.급여를 낮춰야 하기에는 더이상 외벌이로서 물러날 수 없는 선에 있는 상황에벌어놓은 돈도 까먹으며, 면접에서 고배를 마시고 탈락하기를 몇번...H사의 최종면접과 S사의 최종면접, 그리고 그외 다른 회사4곳의 최종면접..참 신기한 일이다.이직이 많은데 무슨 사유로 서류가 통과 되었을까..그 질문을 한 번 던져본 적이 있었다.'면접은 끝났습니다. 혹시 질문 있습니까?''네, 한가지.. 저는 이직사유를 충분히 설명드렸지만, 이유야 어쨌건 4번이나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서류전형에서 당연히 탈락할 줄 알았는데. 서류전형에 통과하여 이렇게 면접기회를 주신 것이궁금합니다.''서류상으로 좋게 보이지 않는 것은 사실입니다. 물론, 면접자리에서 충분히 소명을 하신 내용을 보면대부분 불가항적인 사유로 그만둔 상태라 크게 문제가 되지 않으나, 역시 지금도 꺼림직한 것은 맞습니다. 다만, 경력기술서 내용과 자기소개서 내용은 지원자님만의 스토리가 탄탄해서면접으로 꼭 검증을 하고 싶었습니다.'그 이후로 나는 그 기업에 제출했던 서류를 집에서 컴퓨터로 다시 찾아보면 눈시울을 붉혔다.그냥 읽었을 때는 몰랐는데, 잘 정리된 경력기술서, 스토리가 담긴 자기소개서..눈앞에 그저 옛일들이 스쳐가면서 합격여부에 관계없이...'너 참 고생많았다...'라며 위로를 했었다.지금은 이사를 준비하고 있다.물론 혼자서 다시 서울로 가야한다.아직 고향에 있는 집의 계약기간이 조금 남아있다.그렇게 고향을 보고 기분좋게 왔으나.'사람은 서울로, 말은 제주도로'..그게 맞든 아니든, 지금으로서는 다시 올라가게 되었다.남은 다른 회사의 면접이 3개가 있으나, 가지 않기로 했다.기획직군으로서 조금더 면밀히 회사와 사회적 상황을 판단해서 그렇게 결정을 했다.어디를 가나 정도의 차이가 있으며, 또X이는 반드시 존재한다고는 하나..장단점을 보고만 움직일 수는 없는 것이 회사이고,감수해야할 것이 있기마련이다.예를 들면, 일정수준의 야근과 업무량은 때로는 가중되는 것이다.하지만 인간적으로그 사람에 대한 인격적인 모독이 극단적이거나, 급여가 밀리거나..하는 상황은 이제 그만되어야 한다..그것이 작은 바램이다..일이 많거나, 어렵거나 해서 그만둔 것이 아니라..오로지 그런 문화와 금전적인 문제로 그만둘 수 밖에 없는 상황이뒤돌아 보니 너무 힘에 겨운 나날이었다.새해에는 칼럼에 이직의 내용이 아닌기획업무에 대한 내용을 본격적으로 담아보려 한다.5번째 회사에서는 집중할 때는 오로지 일에 집중하여 성과를 내고(이 부분은 사회생활을 통해 알게된 인맥들로 S회사의 문화를 사전에 들을 수 있었기에 가능한 부분이라고 생각이 된다.)또, 가정생활과 취미도 충분히 병행할 수 있기를.. 
Ray Ryu 멘토
S----- · 사업추진실
2
약 5년 전
4번째 회사를 다니면서 느끼는 점(Part 7 : 세번째 회사 후기 및 네번째 회사)
입사한지 1년이 지나고다시 따듯하게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라며 재촉하는 겨울이 되었다.눈에 넣어도 아프지않을 소중한 나의 아기가 태어나는 날.출근하자마자 급하게 말씀드리고 아내가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아내는 고향에서 아기를 낳고 싶어해서 일찍이 내려갔기때문에나는 꽤 오랜시간 운전해야했다. 교통사고에 대한 트라우마로 서두르지 않았지만, 몹시 조급했다. 다행히도 도착하고 몇 시간후에 아기가 나왔고, 얼떨떨하고 무엇을 해야할지 몰랐다.단지 아내의 손을 잡아주었고, 출산휴가기간 동안 이것저것 챙겨주며,옆자리를 지켰다.그리고 3일후 다시 회사에 복귀한 날.잠깐 이야기좀 하자는 윗분의 말에 회의실로 갔고,나는 뜻밖의 소리를 들어야 했다.나는 일을 미처 끝내지 못하고 내려갔었다.물론, 내려가기 전에 어떤 일은 어떻게 진행이 되고 있으며 추후 어떻게 할 것인지 말했다.그렇기 때문에 그런 일적인 이야기를 할 줄로 알았었다.예를 들면,'축하한다. 아기는 잘 나왔니, 와이프 상태는 어떠니, 잘 돌봐주고 왔니...지금 마치지 못한 일이 이정도 인데, 이거는 어떻게 진행할거니, 언제까지 가능하겠니..'같은 이야기를 예상했다.허나,'아기는 너만 있냐?, 바쁜데 출산휴가 가랬다고 진짜 가?, 애를 니가 낳냐?야 그리고, 노트북은 왜 안가져갔냐?, 아기는 밤에 잠 안자냐?,밤에 아기잘때 노트북으로 일 못하냐?'등의 이야기를 들었다.(최대한 기억할 수 있는 만큼의 토시하나까지 적어 보았다.)참을 수 없었다. 동시에 참을 수 밖에 없었다.그 일 이후로 나는 가까운 미래의 내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아이가 잘때만 들어가는 내 모습.분유를 어떻게 타야 할줄 모르는 내 모습.아이 빨래를 일반세제로 해버리는 내 모습.기저귀를 못 갈아주는 내 모습.퇴근 후 힘든 표정으로 아이를 바라보는 내 모습.그런 나의 힘든 표정을 따라할 아이의 모습.혼자서 육아하는 외로운 와이프의 모습.벌써 3번째 회사다.하지만,내나이 서른 초중반.앞으로 더 살아봐야 60년.영원히는 살 수 없는 것이다.2100년에 뜨는 해를 바라 볼 수는 없는 것이다.언젠가 나도 숨이 끊어질 날이 올 터.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면금은보화정도는 양보할 수 있다.그렇다.이 회사는 아닌 것이다.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에 보면여자주인공 미오는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자신의 미래에 대해 보게 된다.남자주인공 타쿠미와 결혼해서 아이를 낳은 자신의 모습.그리고 자신이 오래살지 못할거라는 모습그리고 다짐을 한다.설령 자신이 정말 그렇게 일찍 죽게되는 모습이사실일지라도 사랑하는 사람과 살며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살다 죽기로...그리고 타쿠미를 만나러 간다.비슷한 사유로 나도 세번째 사직서를 제출했다.그 이후로 나는 이 곳, 저 곳에 이력서를 다시 제출하기 시작했고,얼마지 않아 다양한 곳에서 면접을 보게 되었다.기획 직무이기에 여러 분야의 회사에 면접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어떤 곳에서는 내가 과분할 정도의 상당히 높은 연봉을 제시했고어떤 곳에서는 면접에서 사장이 나를 폄하하기도 했다.나란 사람의 가치가 때에 따라 높아지기도, 때에 따라 낮아지기도 했다.결국 내가 택한 곳은 고향에 있는 회사 였다.면접자리에서 나에게 많은 관심과 기대를 가지고 있었고,비록 회사가 적자가 심하기는 했으나, 나 혼자가 아니라 가족 모두를 생각해보니그렇게 결정하게 되었다.얼마만에 오는 고향인지..기대 반 설렘 반에비록 3개월동안 실업자로 있으며 마음고생을 했지만,그 기간동안 아기를 어떻게 다루는지 알게 되었고,새벽에 얼마나 아기가 깨는지 알게 되었고,분유, 기저귀, 욕조, 유산균, 생수 등 물가를 알게 되었고,웃는 모습을 아이가 따라하는 것도 알게 되었고,이 모든 것이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리고 입사한 이곳 네번째 회사.회사는 새로웠지만,지역이나, 하는 업무는 생소하지 않았다.그동안 배우고 쌓은 실력으로 충분히 가능한 기획업무인 것이다.ERP시스템은 당연히 깔려있지 않았다.모든 자료는 엑셀로 만들어져 있었고, 각 팀에서의 엑셀자료가 일관성이 없어서계수를 하나하나 검증하는 것도 온전히 사람의 몫이었다.그럼에도,웬만하면 일찍 퇴근할 수 있는 문화가 존재했다.9시 이후에 회사에 남아있는 경험을 딱 1번 했으며보통 평균 6시~7시에 퇴근을 하고 있다.노을에 깔리는 땅거미를 따라 아내와 아이와 함께 마실가는 것이 취미가 되었고,회사일은 회사일대로 거침없이 하게 되었다.교통체증이 적어서 출퇴근에 대한 맹목적인 시간낭비도 없고,주말에 근교로 나갈때, 잠깐 운전하면 산이 나오고 바다가 나왔다.'이런 것이 모든 회사원들이 바라는 생활이 아닐까'라며 종종 속으로 곱씹었다.모든 직원의 이름을 알게 되는데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그에 따라 조금씩 친밀도도 높여서 지금은 거의 모든 분들과친근하게 지내고 있다.사장이 회사에 큰 터치가 없는 것도 좋은 현상이다.다만, 중요한 자리에서 생산직과 관리직의 사기를 높여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고,그 외 중요한 업무는 각 팀장들이 협업해서 하고 있었다.때로는 언성이 높아지기도, 때로는 대리들끼리 주먹다짐을 하기도 했었지만그때 뿐이었고, 이내 서로가 화해를 하고 화합을 도모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이제까지의 모든 칼럼을 갈무리 지으면,1. 기획업무는 어느 회사나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기본적인 틀은 같다.2. 개인의 업무능력으로 연봉이 정해지는 것은 일반 회사에서는 극히 드물며,    대개의 경우 회사의 연봉 테이블로 연봉이 정해진다.3. 아니라고 생각될 때에는 각자의 상황에 맞게 유리한 해석을 하고,   누구는 그만두는 것이 답이며, 누구는 참고 다니는 것이 답이다.4. 나의 경우 회사를 두는 사유는 '사람'때문이었다.5. 사람이 괜찮으며, 월급 제때 나오고, 정시퇴근이 보장이 되면   회사를 그만둘 이유는 없다.6. 이직은 노력과 더불어 운이 존재해야 한다.7. 남들은 하지 못하거나 어려워하는 것에 강점이 한가지 있으면,   그것을 본인의 강점으로 삼아야 한다.정도로 요약이 될 것같다.추가로..네번째 회사를 다니고 있지만..8. 이 회사가 나의 마지막 회사라는 법은 없다.------------------------------------------------------------------시작할때는 큰 이유없이 칼럼을 썼습니다.하지만, 작성을 하면서지난 날의 기억을 스스로도 회상하며 잠시 시간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고,또한, 관심가져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일종의 사명감을 가지고 작성을 하게 되었습니다.6년차에 4개의 회사를 거치면서 정장을 입고 출근하며 뿌듯할 때도 있었고,현장에서 분진이 머리에 쌓고 호흡을 하며, 고생했던 기억도 있습니다.당장 내일은 아닐지 몰라도,내년에 나는 어디에 있을지 스스로도 대답을 할 수 없는 삶입니다.저처럼 사고가 날수도, 불현듯 짝을 만날수도, 이직을 수차례하며 지역이 바뀔 수도..그안에서 느낀 것은어디를 가든, 어떤 상황이든 본인과 가정의 행복이 회사보다 언제나 우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제 기준에서는 그렇습니다.)내년이면 달라지겠지, 내년엔 더 좋아지겠지라며 힘내는 것도 답일지 모르나그런 성향이 맞는 사람은 그렇게, 그런 성향이 맞지 않는 사람은 또 다르게사는 것이 각자의 해답일 거라고 생각합니다.예측 가능한 상황은 사람을 편하게 만들어 줍니다.가령,어두워지고 구름이 끼니 비가 올거라는 예상지금 지하철을 탔으니 약속시간까지 25분 걸릴 것이라는 예상이번달은 지난달의 여파로 외화환산손익이 발생하여 원래 손익보다얼마정도 차이가 날 것이라는 예상 등..그런 예측 가능한 상황은 미래를 쉽게 대비할 수 있습니다.하지만, 동시에 사람의 감성을 매마르게 하고, 예측과 다른 상황이 발생했을때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어렵게 만듭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예측 가능한 상황을 선호하고기획업무를 하는 입장에서 그런 예측을 제대로 해내야합니다.반면에,예측 불가능한 상황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어 줍니다.비가올줄 알고 우산을 가지고 나왔으나 맑은 경우친구에게 25분이 걸린다고 연락했으나, 지하철에서 사고로 늦어질 경우외화환산이익이 난다고 보고 하였으나, 시장의 영향 또는 검증오류로 보고의 내용과 차이 발생할 경우우리는 한없이 불편해 집니다.그러나,그런 가끔 바보로 보일때도 있고, 스스로 어이없어 하는 상태에 이르게 될지라도그렇기 때문에 인간적이지 않나 생각합니다.우리 모두가 두번도 아니고단 한번 뿐인 삶 속에서, 어느 것에 가치를 두고 사느냐에 따라인생의 방향타가 바뀌고, 느끼는 것이 달라지기에 스스로 본인이라는 배를지혜롭게 항해하셨으면 합니다.
Ray Ryu 멘토
S----- · 사업추진실
1
약 5년 전
4번째 회사를 다니면서 느끼는 점(Part 6 : 세번째 회사 초중기)
지하철이 옆에 있는 세번째 회사였다.버스로 몇 정거장 차이를 두고, 가까운 거리에 있는 빌라에 집을 마련했다.계절답게 날씨는 차가웠지만, 그렇게 춥다고 느껴지지도 않았다.첫 출근을 했을 때 버스가 회사 앞에 정확히 서는 것이 너무나 멋있어 보였다.웅장한 그룹본사 건물을 보고 놀라고 출입문에 사원증을 대고 들어가는 것도첫 직장이후 오랜만에 해보는 것이었다.지하에는 몇개에 카페테리아가 있어서 점심을 먹은 후나 일과 중에간단히 커피를 마시거나 이야기를 하러 갈 수도 있었고끼니 때마다 나오는 밥도 종류가 서너가지라서 선택권이 있다는 것도아주 마음에 들었다.사무실의 분위기는 직장인이라면 흔히 아는 낮은 파티션이 팀을 가르는 풍경이었다.(잘 모르겠다면, 드라마 '미생'을 한 번 보면 될 것이다.)OJT를 받고, 부서로 인수인계된 날. 회식과 더불어 좋은 이야기가 오갔다.내가 지원한 전략이 아닌 기획으로 끌어온 담당임원님의 자랑이 이어져서 부끄럽기도 했다.나는 아직 일을 시작도 안해서 부담을 느꼈지만, 그래도 해오던 대로 열심히 하리라 다짐을 했었다.그곳에서 처음 잡은 업무는'회의체 운영'과 '사업부 실적 관리'이었다.회의체 운영을 하며 높으신 임원들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고,'자네는 새로 왔나?'라며 묻는 임원들께 얼굴을 알리기도 했다.회의가 상당히 많았다.한달에 공식 회의체는 5번 내외였고,사무실에서 팀내/팀간 회의도 수시로 이루어졌다.업무적인 회의가 있을 때마다 노트북을 들고 다니며바로 프로젝터에 연결하고 다같이 토론하고 이야기하고점심을 먹고 회의하고, 다시 수정하기를 반복했다.회사에서 지급되는 노트북도 새로운 것으로 받았다.화면은 모니터보다 작지만, 이정도의 노트북이라면 크기가 매우 큰 엑셀파일도칼날에 수박 갈라지듯 순식간에 열릴 성능이었다.투자검토를 하긴 했으나, 각 사업부에서 이미 검토가 끝나고 올라온 상태여서굳이 내가 많이 손볼 것은 없었다.다만, 보고장표의 계수들의 합이 맞는지 또는 맞춤법이 잘못되었는지를 많이 봤다.엑셀자료들은 항목별로 이상없는지, 고려하지 못한 요소는 없는지도 판단한다.보통 그런 것을 '정합성 검증' 이라고 표현한다.투하자본부터 적절성을 검토하고WACC을 산출(베타값이라든가 가치판단해야 하기에 생각이 필요한..)해서적절한 할인율로 최종 NPV와 회수기간을 구하고다시 세밀하게 파고들어 제조경비부터 비용의 적절성 등영업외손익까지 보는 것이 내가 하고 싶었던 투자검토였으나,이미 그룹 본사에서 가치판단이 필요없게 고정값으로 주어진 것이 있어서그런 작업도 별도로 필요가 없었다.대신 장표를 업데이트 하거나 계수를 검증하는 것으로 업무가 고정되었다.그리고 나는 Risk관리라는 나 혼자만의 업무를 맡았다.(훗날, 힘들게 들어온 이 회사를 떠나게 되는 도화선이 되었다.)퇴근시간은 보통 8시 전후 였고, 일이 있으면 12시, 때로는 새벽 3시까지 일을 했다.그럼에도 혹시나 내가 일찍 퇴근할까봐 아내는 밥도 먹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그래서 많이 어두워진 시각이 아니면, 같이 손잡고 밤마실을 다녔다.월급날에는 은행 어플에 파란색으로 입금된 숫자들을 보며 힘을 내곤 했다.근처 대학교 앞의 저렴한 3천원대의 대패삼겹살이 주메뉴였고, 그곳을 아내는 매우 좋아했다.주말에는 근처 번화가로 나가서 데이트하고, 또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를 돌아다녔으며,글쓰기를 좋아했던 아내는 내가 업무중인 평일에 지하철로 혼자 서울까지 가서글쓰기 강좌를 듣곤 했다.그 사이 나는 회의체운영에 익숙해졌으며, 손익이나 투자검토 자료를 만지는 것에자판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었다.사실,기획팀이란 답이 없는 부서다.그말은 기획팀 자체가 답이 나오지 않는 갑갑한 부서라는 말이 아니고,특별히 정해진 업무를 제외하고는 다른 팀에 주기 뭐한 업무를가지고 와서 하는 부서라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다시 말하면,일반적으로 보이는 기획팀은 회사를 운영하는 전략(영업적/재무적/생산적)을제시하고 이끌어가는 팀으로 보일지 모르나,대게 추정(손익, 투자)관련 업무가 주를 이룬다.또한, 경영진이 지시내린 사항 중 뭔가 확실히 담당팀이 정해지지 않은 업무를맡게되는 부서라고 보면 될 것이다.그래서 업무가 늘어가고, 때로는 답이 없는(정말 답이 안나오는)일을 하게 된다.자부심은 '이건 왜 알아보지 않았나, 이걸 위에 보고하면 내가 한소리 듣겠냐 안듣겠냐'라는 질책에 무참히 부서지고책임감은 '이걸 왜 이런식으로 했나, 내가 시키는 것만 한다고 그것만 하면 되냐'라는 압박에 서서히 가중된다.경험상.누가 봐도 힘든 일인데 그 일을 하기 편하게 따듯한 말과 격려를 해주는 사람과누가 봐도 쉬운 일인데 그 일을 세상에서 가장 하기 어렵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하나의 예를 들어볼까 한다.집에서 청소하고, 빨래를 하고 있는데형이 와서 라면하나만 끓여 달라고 한다.그러면 나는 경험을 바탕으로해서 가장 맛있는 상태로 라면을 끓이면 된다.그런데..1. 일반라면을 끓일 것인지, 짜장라면을 끓일 것인지, 비빔라면을 끓일 것인지와 그 이유2. 라면을 끓일 때 물의 양은 얼만큼 할 것인지와 그 이유3. 면을 먼저 넣을 것인지, 스프를 먼저 넣을 것인지와 그 이유 및 근거4. 3분을 끓일 것인지, 4분을 끓일 것인지와 그 이유 및 차이점5. 조리중에 불이 크게 날 경우를 대비해 소화기는 비치해 관리되고 있는지6. 불이나면 옆집에 먼저 알릴 것인지, 119에 신고를 먼저 할 것인지7. 파나 계란같은 별도의 토핑이 필요한지, 필요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고 언제 넣을 것인지형이 사사건건 참여를 하며 보고를 하라고 한다.그리고 빨래는 왜 널다가 말았으며, 작은 방은 왜 청소가 아직 덜 되어 있는지추가적으로 보고를 하라고 한다.그렇게 되면 '라면 끓이기'는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 되는 것이다.물론, 회사는 이익집단이다.그런 회사의 특수성을 감안해 A-1, A-2, B-1, B-2, C-1, C-2 등 변수에 따른비교분석 자료를 제시해야 한다.경영진의 합리적인 판단을 듣고자 그렇게 열심히 분석하여 신속하게 올리는 것이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보고의 본질일테지만,저런 1~7의 과정을 한번 겪고 나면라면끓이기의 목적, 즉 업무의 목적은맛있는 라면 만들기 또는 최선의 합리적 결과물 창조가 아니게 된다.보고의 본질은 '두려움'이 된다.경영진의 한마디가 두려워서 오탈자 하나 없이 자료 만들기를 반복한다.손을 떨면서 라면 스프봉지를 뜯고, 중간중간 맛을보며, 식은땀이나고면이 불지는 않을까 가슴이 뛰게 되며, 만에 하나라면을 줬는데 형이 맛이없다고 냄비째 나에게 던지면 화상입지 않을까생각하며, 업무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하게 된다.이렇듯 그곳의 기획팀 분위기로서는보기에 힘들지 어떨지 모르는 일을 항상 아랫사람들이 벌벌 떨만큼어렵게 생각하도록 만드는 문화가 존재했다.내가 기획팀을 원했던 이유는물론 기획팀 고유의 업무를 하긴 해야했으나,칼럼 Part1에도 기술해 놓았듯이회계학을 전공했으나, 1년 12달 마감할 때마다 밤12시까지 남아있는게 싫었고,재무적 시각을 키워 투자검토에 전문성을 가지기 위해 기획팀을 했던 것이다.두번째 회사에서는 그런 것에 상관없이 일을 전문적으로 할 수 있었다.두번째 회사에서 책임을 지면서 일을 했던 것으로 미루어보면천억대 매출신장과 관련 있는 투자건을 맡았을 때에도원가부터, 향후 손익추정까지 큰 문제 없이 했었다.하지만,세번째 회사는 지시를 내리며 방향타를 조정하는 사람(과장, 차장 및 임원)이 많았으며,심지어 지나치게 구속하는 스타일(집에서 저녁먹다가 불려와서 밤까지 일도 해봄)이었기에 점점 나의 만족감은 실망감으로 변해가고 있었다.세번째 회사는 배의 크기에 비해 방향타가 지나치게 작았고, 선장이 많았다.선원들은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정신을 못차리고 있었다.이쯤에서..좋은 이야기를 몇개 써주고싶다.대기업이라는 타이틀 답게 복지는 좋았다.회사자체의 콘도가 있어서 예약하면 이용이 가능했다.회가 콘도가 아닌 일반 펜션을 이용해도 어느 정도 지원금이 나왔다.그리고 복지포인트(카드)라는 것도 처음 받아서 사용해봤고,MRI등 병원비도 지원이 되었다.과연 이 복지사항들이 좋은 이야기인줄은 모르겠지만.....회의이야기를 하자면,(말해봐야 누구나 이미 아는 상황일 것)회의에서 의견의 공유는 이루어지되 결과는 같았다.다시 말해,의견 하나, 의견 하나, 의견 하나, 의견 하나가 순조롭게 모아져종합의견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의견 하나, 의견 하나, 의견 하나, 의견 하나가어렵게 입밖으로 나오고 힘들게 모아진뒤마지막 10분을 남겨놓고 무시되고..누군가의..단독의견..하나만 남게 되었다. 전형적인 마라톤 회의의 결과로 모든 의견들은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거품에 불과했으며,결과적으로 높은 사람 한 명의 의견으로 자료를 만들기로 한다.다른 직무의 회의도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으나,기획팀의 회의는 거의 그런 방식의 회의가 많다.하지만, 많은 사업부의 내용을 모르는 나로서는오히려 그러한 회의에 참여하면서 더욱 빠르고 냉철하게사업부의 손익과 현재상황, 동종업계를 알아갈 수 있는 기회였다.그런 기회를 통해 사업부의 상황과 손익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었다.그 이상으로 아웃풋을 만들어 낼 욕심도 있었으나,'두려움'으로 인해 시도조차 할 수가 없었다.사실 그런 사항들로 인해 이 회사에 대한 만족감과 충성심이 한번에사라진 것은 아니다.나름, 많은 사업부를 관리하며 재무(투자)적 시각도 한층 높아졌으며,업무중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요소들이 눈에 들어올 때면 행복했었다.그렇다 이성의 끈을 놓아서는 안된다.나는 사고로인해 죽다가 살아났으며, 이 회사는 내가 그토록 오고 싶어 했던 회사였다.그리고 혹시나 회사를 그만두게 되면 젊은 나이에 이직이 많은 상황을면접에서 소명하는 자리가 마련되지 않는한 서류상으로 좋게 보이지는 않을 터.진심을 다해 나는 일을 해야 한다.그러나, 라이프 밸런스는 처참히 깨졌고, 때때로 무능하다고 스스로를 탓할 정도로회사 생활에 대한 회의감이 밀려왔다.회사를 입사하고 어느정도 일이 익숙해졌을 무렵 그만두고자 생각한 이유는업무적인 이유보다 문화적인 이유가 컸었다.회사에서 따로 관련 팀이 있어 문화를 개선하고자 했으나,그것은 현장까지 전파되지 못하고 5분짜리 방송 PPT안에 캠페인으로서한번만 보여지고 광고끝나듯 끝나버렸다.회사의 Risk사항들을 관리하는 업무가 있었다.그 업무도 최대한 많은 자료를 내용을 파악하려 했으나,부서간 협조가 어려웠고, 또 사업부의 상황을 모두 알기도 사실상 불가능이었다.내가 먼저 불가능이라고 말하지 않았다.'지금 Ray대리가... X발 말도 안되는 업무를 하고 있는거야, 막말로 나도 몰라. 이걸 어떻게다 파악하냐, 이거 다 아는 사람이 어딨냐'관련 자료를 일부 전달해주는 다른 분이 먼저 말해주었고,그제서야 차장, 과장님이 모두 나에게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역시 회사에서는 계급이 깡패다.내가 먼저 말했으면...'너만 힘드냐, 너 그래서 일안할래?' 라고 한소리 들었을텐데..업무 외적으로는 잘하는 편이었다.늘 하던 것처럼나름 회식자리 분위기나, 사무실 분위기를 띄우는 말을 했었고전 회사에서 그랬던 것처럼 잘 어울리는 사람중에 한명이었다.나는 그런식으로 사람들의 고유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면서 살갑고 정감있는사람이 되고 싶었고, 정해놓은 목표위해 한단계씩 밟아나가는평범한 회사원이 되고 싶었다.단지 그뿐이었다.한편의 칼럼에, 기승전이 모두 담길만큼 짧은 회사생활이었다.그만큼 가슴앓이도 많이 했었다.내가 오고싶어 했던 회사에서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이 너무나 소스라치게 슬펐다.기승전에 이어서 '결'로 이어지는 상황을 만들어준누군가의 한마디는 지금도 상처로 남았다.참은 것이 잘한 것인줄은 알지만,한마디도 못했던 내 자신이 초라했다.그런 이야기를 듣고도..
Ray Ryu 멘토
S----- · 사업추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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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5년 전
4번째 회사를 다니면서 느끼는 점(Part 5 : 두번째 회사 후기)
[어린 날의 회상]넉넉한 삶은 아니었다.장난감이 없어서, 수수깡으로 무언가를 많이 만들곤 했다.가지고 싶은 것을 수수깡으로 만들면 처음에는 재미있었다.TV 만화에 나오는 것부터 문구점에서 파는 장남감까지 수수깡으로 만들거나아니면 그 장난감을 가지고 있는 친구집에 가서 놀았다.한번은 어머니께 장난감을 하나 사달라고 했었다.볼트론(5마리가 합체하는 사자 로봇)의 한쪽 다리.국민학교앞에 '서울노트사'라는 문구점에 같이 갔다.어머니가 어떤 것이냐고 물으셨고 나는 그 장난감을 가리켰다.주인아주머니는 3천원이라고 하셨다.어머니는 적잖히 당황을 하셨고, 잠시 이야기좀 한다며 나를 데리고 나갔다.저렇게 비싼 줄은 몰랐다며, 사주는 대신 아빠한테는 비밀로 하고아빠가 알게되면 친구장난감을 빌려왔다고 말하라고 하시고는들어가서 사주셨다.그 것은 나의 보물이자, 어머니의 배려이자, 아버지의 피땀이었다.그런 내가 어느새 커서 다른 사람들과 호흡을 하며 사회라는 곳에 살고 있고일을 하고 있고, 돈을 벌고 있고, 이 곳에서 누군가에게 대가가 없는 도움을 주고 있다.우린 모두 힘든 시절을 보냈다는 것을 다 알기에..그리고 누군가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 성인이기에..금전적인 도움만이 중요한 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에..[두번째 회사 첫해]지난 번 글에서 언급했듯이 두번째회사의 급여에 만족할 수가 없었다.난 솔직히 돈이 더 필요하다.그래서 두번째 회사에서도 꾸준히 타회사에 이력서를 제출하던 때였다.'축하합니다. 서류전형 합격하셨습니다.'그렇게 'L'그룹에 면접을 보게 되었다.PPT 발표와 함께 진행된 면접이었고나의 주제는 '향후 기업성장 전략'이었다.장표는 10장 내외로 구성했고,템플릿은 회사에서 작성하여 보고했던 파일중제일 무난하면서 보기 좋은 양식으로 꾸몄다.기억이 흐릿하지만, 칭찬을 받았었다.'며칠만에 만든 자료인가'부터'합격하면 주제대로 잘 할 자신있는가' 등등꼭 합격할 줄 알았던 상황에서그날 저녁 다음을 기약한다는 문자를 받게 되었다.[지난 이야기에 이어서]두번째 회사를 다니며사외교육을 많이 들었다.특히 재무분석, 원가분석, 손익분석 등을 집중적으로 들었고부가적으로 주식연수, 조직관리 교육을 들었다.그 내용을 실제적으로 업무에 반영한 경우도 있었으나,대부분은 교육참석에 의의가 있는 것이었다.회사에서 외부교육을 이수하는 것은 환급 및 직원육성에도 의의가 있고,직원은 역량개발을 할 수 있다는 것에 의의가 있으나,무엇보다 꾸준히 교육을 이수함으로써 이력서에 자기자신이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음을 어필 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다.나는 최대한 많은 교육을 듣고많은 업무를 하며 내 이력서를 빼곡히 채우려고 애썼다.그러던 중 교통사고가 났고, 복직을 하고, 결혼을 했다.나 때문에 간호사를 그만두고 두번째 회사가 있는, 연고도 없는 지역으로 따라와서'여기 5일장 가봤는데 정말 재미있어, 다음에 같이 가보자.''조용한 동네라서 공원에서 혼자 걷기 참 좋아.'라며, 퇴근한 나에게 말을 건네는 아내와 통장을 번갈아 보며고마움 반, 미안함 반에 어서 좋은 직장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꾸준히 타회사의 문을 두드리던 중그 해 겨울.'축하합니다. 서류전형 합격하셨습니다.'그렇게 나는 'L'그룹 본사에 면접을 보게 되었다.2년전에는 본사가 아니고 지방사업장에서 면접을 봤었다.그런데, 본사 기획에 면접을 보게 된 것이다.이번에도 PPT면접이었고, 주제는 비슷했다.나는 2년전 자료를 꺼내어 무엇이 부족했는지 다시 자료를 보며더 현실성있게 또 어떤 부분은 과감하게하며 꾸준히 발표자료를 만들었다.그때가 11월 이었고, 사업계획 막바지라 회사가 바쁜 상황이었다.그럼에도 집에오면 면접자료를 계속 다듬었고, 새벽에 자는 경우도 허다했다.발표때 떨지 않기 위해 제3자인 아내를 앉혀 놓고발표 연습도 수십번.전문가가 아닌 시각을 가진 아내는 자료의 내용보다는나의 발표 태도를 유심히 보며불필요한 동작이나 말투, 억양등을 일반인의 시각으로 정확하게 판단해 주었다.그렇게 발표연습을 하고 면접전날 나는 아내가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연차를 냈다.면접 PPT발표는 성공적이었다.1의 떨림도 없었다.밤마다 자료를 다시보고 다시고치며이 순간을 위해 얼마나 연습하고 연습했던가.발표가 끝난 순간 조용한 면접장 분위기에담담하고 조용히 자리에 앉았지만, 속으로 너무 기뻤다.대기업 경력직 면접 PPT발표에서 조금도 떨지 않았다는 사실이..이어진 질문은 PPT자료에서 언급한 BCG 매트릭스부터하고 있었던 업무에 대한 질의응답.그리고,'지난번에 지방 사업장에 지원했다가 떨어진 적이 있는데그때는 왜 떨어졌다고 생각하나?'예상한 질문이었다. 그것을 물어볼 줄 알았다.'네, 지난번에 지원했을 때는 경험과 경력이 이 회사에 올만큼충분하지 못했서 떨어졌다고 생각합니다.''이번에는 충분하다고 생각하나?''스스로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면접관님께서 보시기에아직도 부족하다고 생각이 되시면, 경력을 더 쌓고 언제고 다시 지원하겠습니다.'누구나 생각만 해놓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답변이었다.하지만, 이마저도 분명 물어볼 질문이라고 생각하여수십번 같은 어조, 확실한 발음으로 연습을 해서 자연스럽게 나오도록 했다.그렇게 나는 5명의 경쟁자 중에서 혼자 1차 면접을 합격했고최종면접을 앞두고 있었다.확신이 섰다.그래서 두번째 회사에서 업무시간 중에 조금이라도 시간이 나면업무 인수인계서를 작성했다.(물론, 이마저도 안되면 큰 정신적 충격에 다시 빠질 것이다.)임원면접은 혼자 들어가게 되었다.(사실상 최종면접)그 임원면접에 들어갈 수 없을뻔한 사연도 있었다.면접날은 공교롭게 나의 생일이어서 연차를 쓰는데 큰 눈치는 보이지 않았다.다만, 오전에 진행되는 면접이기에 고민이 되었다.전날 올라갈 것인가, 당일 아침에 출발해도 문제없는 거리니 그냥 당일 갈 것인가.아내와 이야기하면서, 그래도 혹시 모를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기위해전날 올라가서 근처에서 하루 묵기로 했었다.밤에 올라가는데 갑자기 고속도로에서 우회도로로 안내하는 사람들이 보였다.올라가기 2~3시간 전, 서해대교 케이블이 끊어져서 교통이 전면 통제되고 있었다.큰일 날뻔했다. 아침에 올라갈 생각이었다면 분명 우회도로에서 차가 막혔을 것이다.(이자리를 빌어 아내에게 다시 한번 감사)그렇게 다음날 최종면접에 참석했고, 지금까지 해왔던 일 등 업무적인 질문과일부 사적인 질문에 대답을 하며 면접을 봤다.다른 부문에 지원한 지원자들 사이에 혼자 경영기획 부문 지원자로 앉았다.처음에는 질문이 하나도 오지 않아서 속으로 적잖이 당황했었다.조금 불안해지려던 찰나 면접시간 중반을 넘어서야나에게 많은 질문이 왔고, 차근히 답변을 했다.'혹시 집안에서 우리 XX제품을 사용하는 사람이 있는가?'라는 사장님의 질문에.'네 큰집에서 사용중인 것 같은데..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라고 대답을 했다.'에이, 우리 XX제품 사용 안하는구만?'당황스러웠다. 나는 어떤 답을 해서 이 상황을 넘겨야 하는가하고 잠깐 생각했다.'합격하면 큰집에 하나 사드리겠습니다!'사용중인지 아닌지 전화해서 물어보겠습니다도 아니고, 하나 사드리겠다니..내가 생각해도 막무가내였다.그런데, 그 대답 하나로 면접장에 참석한 임원분들이 크게 소리내어 웃음을 지었다.사실상 기획부문에서는 나혼자 들어간 면접자리이기에 어느 정도 직장생활이나 사회생활 눈치가 있다면 알았겠지만, 별문제 없으면 합격은 기정사실인 것이다.(추후 세번째 회사에 입사한 후에 모든 면접에 참석하신 이사님은 나의 준비된발표 능력과 쌓은 경력을 높이 평가했다고 하셨다.)내 생일날이었기 때문에 면접을 마치고 아내와 같이 차로 고향에 가던 길이었다.오후5시에 회사번호로 전화가 왔다.면접자리는 어땠는지, 멀리서 오셨는데 교통이 불편하지는 않으셨는지묻는 여직원..그리고 차안에서 블루투스로 모든 통화내용을 듣는 나와 아내..'오늘 생일이라고 하셨는데 맞나요? 제가 생일선물 하나 드릴께요.축하합니다. 합격하셨어요...준비하실 서류는....'말투 하나하나가 다정다감한 직원이었다.눈물이 났다. 아내도 기뻐했다.대기업 직원은 어쩜 저리 합격소식도 다정하게 알려줄까..꿈에 그리던 'L' 그룹, 그것도 본사 기획팀.그곳에 내 이름이 올라간 것이다.그리고 나는 돌아오는 월요일에 사직서를 냈고,다소 황당하다는 표정의 차장에게담담하고 정확한 어조로 이직 사유를 설명했다.팀장의 반박은 없었다. 모든 것이 사실이었기에.오히려 나에게퇴직일에 대표이사님께 인사 안드리면 안되겠냐며 부탁을 하나 했다.상무님까지만 인사드리고 가라는 것이었다.내가 인사드리러 들어가면 분명..내입에서 나올 소리들의 팀장에게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칠 터.아내와 상의를 했고, 나는 마음씩 착한 아내의 조언대로상무님까지만 인사를 하고 퇴직을 하기로 했다.책상에는 3년전부터 나와 함께한 흔적들이 세월을 입고 있었다.적당히 꼬인 수화기, 구겨져 붙여진 포스트잇, 테이프자국 묻은 책상나를 향해 약간 돌아가 있는 서랍장, 이름이 쓰여진 스테플러.늘 하던 업무처럼 인수인계도 무리없이 진행이 되었다.다만, 대리님에게는 미안했다.이 모든일을 후임이 아닌 대리님이 가져가게 된 것이다.(8개월 후 대리님도 더 좋은 곳으로 이직함)그리고 퇴직하는 날.회사 선배이자 같은 지역출신인 형이 점심을 사주었고집에 와서 아내에게 웃으며 말했다."나 오늘부터 백수다!"이제 새로운 회사를 갈 준비를 해야한다.틈틈히 L회사 관련기사도 보고(인터넷에 회사 기사가 이렇게 많다니..)지역도 수도권이기에 살던 집을 내놓고 새집을 보러 다녔다.집값이 좀 있기는 했지만, 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두번째 회사를 다니며 신혼집으로 살았던 투룸도 그사이 나갔고,이제 세번째 회사를 다닐 때 살게 될 쓰리룸으로 옮기게 되었다.행복했다.사고 이후로 한 번의 오차도 없이모든 것이 짜여진 각본 마냥 진행되었다.첫번째 회사를 다니며 1년을 채우지 못하고 퇴직을 했으나세번째 회사는 1년을 추가로 인정해주며, 나를 바로 대리로 진급시켰다.아내와 둘이서 써도 넉넉한 급여도 마음에 들었다.사고전에 원가와 손익, 사업계획, 예산 등을 잡았고사고후에 투자검토 경제성분석을 잡으며 업무능력을 끌어올린 상황에서대리로 이직한다는 것은 나에게 큰 이점이었다.사원급에서 알 수 없던 정보를 접할 기회가 많아질 터였다.그리고 대리직급으로 추진할 수 있는 업무와 그에 따른 책임의 범위도사원직급과는 다르기 때문에, 아직 일을 시작하지는 않았지만업무적으로도 만족할 수 있었다.분명 어렵게 얻는 기회를최대한 노력하고 살려서 쟁취한 것이다.허나, 세번째 회사로의 이직하는 과정에서긴장을 조금했던 면접을 제외하고는그 어느하나 불편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뭔가 마음한구석에 의구심을 갖게 했다.운수가 지나치게 좋았다.
Ray Ryu 멘토
S----- · 사업추진실
1
약 5년 전
4번째 회사를 다니면서 느끼는 점(Part 4 : 두번째 회사 중기)
[사고나기 전 두번째 회사 생활 일부]채를 잡았던 '원가'를 기반으로동종업계 재무분석과 신규사업 ITEM발굴, 그리고 경제성검토를 진행했었다그리고 가을부터는 년간 예상손익을 추정하고 익년도 사업계획을 짜며,동시에 경제전망 보고서도 작성을 했다.(어떻게 하는 것인지 이야기하는 것은 따분한 업무이야기므로 본 내용에서는 패스)물론, 기획업무로 정해진 숙명업무도 있다.예산편성과 수립/통제 - 각 부서별 예산관리 등회의체 운영 - 대게 임원급 이상이 참여하는 회의때 회의자료를 취합하여 검증하고 보고                      (물론, 토시하나 맞춤법하나 숫자하나까지 모두 완벽해야 함)공시 - 큰 기업은 IR팀이 따로 있으나 없을 경우 웬만하면 기획팀이 하는 업무로          회사의 분기, 반기, 년간 손익을 전자공시시스템(DART)에 공시하는 업무내가 겪어 보고 또 들어본 바에 의하면 기획팀은 숙명업무로 예산이나 회의체등은 필수다.또한, 구매팀이 법인심사를 준비할때도 같이 업무를 하며, 도움을 주었다.(B/L, P/L, C/I, BAF, CAF도 이때 처음 알게 됨)그렇게 협업을 하며 열의를 가지고 기획업무를 하면서도.아쉬운 통장잔고에.나는 사택에 오면 이력서를 쓰며 몰래 다른 회사의 문을 다시 두드렸다.유명한 복지로 인해 한국의 구글로 소문난 경기도 파주에 있는'제니퍼XXX'부터 L모 그룹, 판교의 마모 회사, SK 모회사 등이력서를 제출하고 떨어지고, 때로는 면접도 보았었다.하지만, 짧은 경력에 3번째 회사로 이직하려는 나를받아주는 곳은 없었다.두번째 회사는 외진 곳이라 이성을 만날 기회가 적어서업무를 마치고 사택에 오면 게임을 하거나, 주말에 서울에 가서(남자인..)친구들을 만나곤 했다.[이제, 지난 사고에 이어서]팀장이 먼저 퇴근을 했었다.위에 대리님과 회사에서 저녁을 먹으며우리도 어서 퇴근하자는 이야기를 했고,'저는 올해 나이가 아홉수라서 생활할때 조심해야 겠어요..'라고 내가 대리님께 이야기 했었다.그리고 그날 오후 6시..사고는 발생했다.(진심으로 말은 함부로 뱉는 것이 아닌듯..)'해가 길어졌나.. 겨울가고 이제 봄이 오려나 보다..빨리 가서 게임해야지'분명 이생각을 하고 있었다.그리고 잠시 후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가만 있으세요, 움직이지 마세요.'사람들의 다리만 보였다.운전대를 잡아야 할 내손이 바닥을 기고 있었다.'뭐지?...사고난건가...저 아래에 굴러떨어진 차는 내차같은데..'그리고 얼굴을 만져보니 따듯했다.피였다. 다시 기절했다.(지금도 의아하나 목격자 말로는 뒤집어진 차에서 내가 기어서 7미터나 되는 언덕을올라왔다고 한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생존하고자 하는 본능에 몸이 움직였나 보다.신기하다.)그렇게 병원으로 실려갔으나그 지역에서 수술이 가능한 병원은 없었다.급한대로 찢어진 얼굴과 찢어진 어깨를 봉합하기는 했으나발목은 꺽일대로 꺽여 수술이 필요한 상태였었다.그래도 1년동안 친해진 회사 분들이 모두 달려왔다.같은 팀 대리님, 옆부서 대리님, 생산팀, 자재팀 대리님, 과장님...'안돼 이거 출근 안돼, 휴직해야해..박대리 EMS 불러줘. 누구는 뭐하고'고향에 계신 부모님도 바로 오셨다.딱 한사람.그시간에 타부서 같은 직급의 차장님들과 회식이라며 룸싸롱을 갔던..우리팀 차장만 오지 않았다.고향에 와서 입원을 하며 나는 너무 억울했다.내 잘못으로 난 사고도 아닌데 다리도 부러지고, 얼굴도 찢어지고이 얼굴로 여자는 어떻게 만나며, 돈은 언제 모으고,회사에 복직하면, 내자리는 있을까..어떻게 나는 다시 시작해야한다는 말인가..수술이 끝나고도그런 말을 입밖으로 부모님께 하며 나의 나약해진 정신을 모조리 드러냈다.(얼마나 가슴아팠을 것인가..이미 나락으로 떨어진 아들의 정신상태를 보는부모님의 기분이...)입원 기간은 4개월로 긴 편이었다.교통사고 환자라 병원입장에서는 공단에 무슨 보조금을 받기 어렵다고 한다.그래서 한 병원에서도 길어야 한달이상 받아주지를 않았다.어쩔수 없이 병원을 여러번 옮기면서 정신도 다시 예전의 나로 돌아오고 있었다.3번째 병원으로 옮길때였다.(회사도 그렇고 병원도 그렇고 자주 옮겨 다님)구급차로 나를 데리러 온 간호사분이 그렇게 예뻐 보일 수 없었다.어떻게 병원으로 가는줄도 모른채 누워서 그 간호사만 바라봤다.입원 수속이 끝나고 휠체어를 밀며 찾아보았으나, 다시 찾을 수 없었다.어느날, 1층에서 우연히 그 분을 보고머리도 감지 않은 상태에서 휠체어를 밀고 바로 갔다.그리고 이송도와줘서 고맙다며, 예쁘신데 남자친구 없으면 번호좀 받을 수 있는지물어봤다.(알고보니 동갑)그렇게 번호를 받았고, 병원에서 나는 여자친구가 생겼다.다른 병원으로 옮길때도 도와주고, 그 병원까지도 찾아왔다.퇴원할 때는 케익도 사주고, 여러모로 나의 피폐해진 마음에 빛이 되주었다.후에 퇴원을 하고 복직을 했을때,(다행히 내 책상은 빠지지 않음)몸은 괜찮냐며 묻는 동시에...여자친구 소식을 접한 일부 직원들이'치료받으라고 휴직시켜줬더니, 연예를 했네! 하하' 하며 축하해주기도 했다.(비아냥은 아니고 다들 건강에 대한 나의 안녕을 빌어줬다.)얼굴에 있는 흉터를 걱정할때도, 여자친구는 자기 일인것처럼 같이 걱정해주었다.물론, 현대 의학기술에 한번 놀랐다.프락셀레이저(흉터 안보이게), 엑셀브이레이저(붉은 흉터 연하게), 트리암시놀론주사(흉터 안딱딱하게)등등 대한민국 의료 기술 좋다고 생각한다.지금도 이런 레이저 이름을 기억할 만큼 그때 나에게 흉터는 매우 큰 스트레스 였다.(광고는 아니고..오죽하면 이름과 효과를 기억할까...)지금은 얼굴쪽은 흉터가 거의 보이지 않게 되었다.사고부터, 복직까지 4개월.많은 교훈과 상처를 얻었고, 여자친구도 생겼다.(후에 그 여자친구는 지금 제 아이의 엄마가 됩니다.)숨쉬며 살아있음에 이 정도의 급여도 만족할 수 있었고, 더욱 인생을 고맙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복직 후 다시 잡은 채는 '투자 검토'였고 그것을 계기로 모든 자료를 통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해당 투자건으로 인해 주식이 폭등하고 폭락한 사유가 있기 때문에 어떤 것인지는 생략)그 이듬해에 나는 결혼을 했고,내가 있는 지역의 투룸에서 작지만 행복하게 신혼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보험사를 상대로 보상과 합의를 받기 위해 열심히 공부도 한 덕분에합리적인 보험금을 받아서 치료에 보탰다.(그 공부 덕분에 부업은 아니나, 교통사고 상담을 취미로 하고 있음)참으로 무서운 사고 였다. 에어백이 터지지 않았으면, 관뚜껑에 못이 박혔으리라..하지만 고마운 사고 였다.얼마나 배운 것이 많은가..급여가 적다고, 이따위 흉터진 얼굴로 못산다고, 여자친구도 없다고불평만 하던 내가...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알게 되었고,교통사고 처리방법도 꿰차게 되었으며,사고를 통해 결혼도 하게 되었다.살아 숨쉬는 것 자체의 소중함을 알게 된 것이다.결혼한 첫해는 행복했다.회사에서도 치료를 받으라고 웬만하면 정시이후에 퇴근을 바로 허락해주었고,치료후 집에 오면 아내와 손잡고 산책을 가고, 술도 한잔 기울였다.하지만, 사고당시 혼자만 병원에 찾아오지 않았던 차장은배려를 하면서도 나에게 많은 압박을 주었다.팀장의 지시로 새로온 후임에게 업무 분담을 하라고 해서 해주었으나열의를 가지고 차근히 알려줬던 나의 의도와는 별개로후임은 일을 잘 따라오지 못하였다.일은 못해도 느려도 괜찮다고 생각한다.후임도 배워나가는 단계이므로 이해했는데차장은 도무지 안되겠다며, 후임에게 갔던 업무를 다시 가져와서 나보고 하라고 했다.그렇게 중간에 끼어있으면서 업무는 가중이 되었으나,해오던 업무라 어렵지는 않았다.이제 후임을 둔 선배로서현재의 내가 사회초년생이던 과거의 나를 대하듯모르는 것은 알려주고, 실수한 것은 바로잡아주되가끔, 때로는 여러번 참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더라도후임의 생각을 지배하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나는 속으로 계속 되뇌었다.'이 사람은, 예전의 나다.'후임이 일을 따라오는 속도는 개인차가 존재하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었으나,팀원과 조금의 상의도 없이 '업무를 줘라, 안되겠다 다시 가져와라.' 하는 모습....어차피 다시 들고 올 업무라도, 팀장으로서 조금의 의견조율이 있었다면...사실, 조직이나 업무적인 이유로 퇴사를 결심한 것은 아니었다.하지만, 머리속에 자리잡은..'팀원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데, 접대자리도 아닌데, 룸싸롱에서 술마신 사람'이라는 기억은 쉽게 지울수가 없었기때문에나는 팀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많은 자료를 고민하며 업무에 반영했고, 아이디어는 적어뒀으며,검증을 통해서 만들어낸 수식이 완벽할 때에는 따로 보관을 해두었다.그리고 지금부터 아내까지 책임지기 위해서는 대기업이 많고외지지 않은 장소인 도시쪽으로이직을 해야겠다고 다시 한 번 결심을 하게 되었다.그 해 겨울.이직 기회는 정말 우연치 않게 다시 오게되었다. 어쩌면 필연적으로..
Ray Ryu 멘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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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5년 전
4번째 회사를 다니면서 느끼는 점(Part 3 : 두번째 회사 초기)
급하게 다녀온 어학연수(3개월 정도 친구와 다녀왔다.)그리고 어학연수중에 꾸준히 사용한 영어때문에 준비를 하지 않아도 OPIC-IM2 스코어를 얻었다(물론, 준비없이 토익도 봤는데 700 겨우 넘고 망했었다)이제 나는 현실을 깨달아야 했다.첫째, 나는 1년을 못채우고 직장을 그만두었기에 다시 신입으로 지원해야 한다.둘째,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다.하지만, 긍정적인 자세는 유지하기로 했다.그만둔건 온전히 나의 선택이었고 그 결과를 받아 들여야 한다.더이상 내가 좋은 직장에 다녔었다고 기억해주는 친구는 없었다.그저, 직장을 그만둔 현재 백수친구 일뿐이었다.다시 나는 엑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필터를 걸어서..*구분: 1,2,3,4,5,6....*지원회사명: 어디, 어디, 어디*지원부서명: 어디, 어디, 어디..*연봉정보: 얼마, 얼마, 얼마...*자소서 작성여부: O, X, X, X, O...*지원여부: O,O,X...*서류발표일: 언제, 언제,....*합격여부: X, X, X, X, X, X, X.......그렇게 시간은 지났고, 로이킴이라는 사람이 슈퍼스타에서 우승을 차지하고..찬바람이 불었다. 크리스마스 캐롤도 들렸다.처음 취업을 했던 S반도체회사에는 입사하기까지 300개의 회사에 지원을 했었다.그중에는 흔히 하는 S전자, H자동차도 있었고, 마구잡이 지원도 많았다.두번째 취업을 준비하면서는 200개정도의 회사에 지원을 했었다.(복사와 붙여넣기는 줄고, 자기소개서는 있는 그대로 쓰게 되었다.)정말 아무도 모를 것같은 회사, 연봉 1천대, 2천대의 회사.나는 눈을 낮추고 많은 지원을 했음에도 모두 실패를 했고,이제 친구들로 부터 연락도 뜸해졌다.아니, 내가 먼저 연락을 하지 않았기에 그런 거라고 생각된다.정리하면,어학연수를 다녀왔으나, 경력 10개월의 회사경력을 가지고, 다시 신입으로 지원해도사회는 호락호락하게 나를 다시 받아주지 않았다.이때부터 취업시장이 빙하기로 들어가는 초기단계였다. 내 기억으로는..새해가 되었고, 나는 겨우 합격하여 H대기업의 협력회사인 H회사에 들어가게 되었다.지역은 아무 연고도 없는 곳이었다.연봉도 대폭 줄었다. 아니, 오히려 내 실력에 비해 첫번째 회사는 나에게 많은 금전을 지급한 것 같다.아쉬웠다. 만족할 수가 없었다. 인정하기 싫었다.그렇지만 받아 들일 수 밖에 없었다.누구를 탓 하겠는가...첫번째 회사 팀장을 탓할까?...이미 지난 일이 되었다.입사하고 9명이나 되는 신입 동기가 생겼으나, 대부분 나보다 나이가 한두살 어렸다.그리고 한달만에 3명이 회사를 그만두었고3달째 되었을 때에는 10명중 5명만 회사에 남아 있었다.첫번째 이탈자는 같은 기획팀 동생이었다.3주간의 OJT를 마치고 회사를 열심히 알아가던중 어떤 미션?(엑셀로 BOM 등 원가 정리)을 받았다.나도 차근히 해나가는데. 애초에 이 동생은 그것을 하기 싫어 했었다. 이유는 모르겠다.다만, 술자리에서 이야기를 해본 내용으로 미루어보면 삼성, 현대만 바라보는 친구였는데이곳에 와서 연봉이 이렇고, 지역도 이렇고 해서 실망이 큰거 같았다.그 업무를 받고 내가 오후쯤 마무리 지어갈때, 그 동생은 사라졌다.알고보니 콜택시를 불러서 그길로 택시를 타고 사택에서 짐을 챙겨 고향으로 내려갔다.회사관계자 누구에게도 그 어떤 말도 하지 않고..나도.. 그만 둘까..라는 생각이 엄습해왔다.하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고, 열심히 회사생활을 하기로 했다.이때에 가장 기획팀으로서 업무를 많이, 그리고 세부적으로 했었다.표준원가, 견적원가, 추정손익, 실적손익, 회의체 운영, 관세청 법인심사 대응, 국세청 세무조사 대응, 해외 투자환경처 조사, 투자검토, 공시 및 IR, 예산 수립 및 편성/통제, 동종(경쟁사)업계 손익분석그리고 기획업무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사업계획 까지...제일 먼저 채를 잡았던 것은"원가"였다.회계학이 전공이었기에 원가부분은 이해하고 있었고무엇보다 기업에서 손익을 다루는 부서(재경, 회계, 재무, 기획 등)는원가를 모르면 그 이후의 계수들을 읽을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한번 원가의 구조를 꿰뚫게 되면(개인차가 있어서 1개월이 될지 1년이 될지는 모름)회사가 어떻게 손익이 나는지 밑그림을 그릴 수가 있게 된다.그래서 원가를 잡고 그 이후에 제조쪽으로 채를 바꿔잡으면서대학교에서 배웠던 원가/관리회계를 실무적으로 완벽히 이해하게 되었다.이제 나는 깨닫게 되었다.아버지는 나에게 하루 용돈으로 1,000원을 주면 내입장에서 300원 오락실, 200원 얼린 쥬시쿨300원으로 과자, 남은 200원은 비상금...으로만 계산 했는데원가를 이해하게 된 이후로는아버지의 한달 수입이 100만원(예를들어)이고 아버지는 70만원에 물건을 사오기때문에30만원이 남고, 관리비와 공과금 10만원을 빼면 20만원이 남는다.나에게 용돈 3만원(1,000원 x 30일)을 주면 아버지는..아버지의 매출액 중 3%, 세전이익의 15%를 (나름 주주인..)나에게 배당금 명목으로지급하고 있는 것이고이렇게 되면, 아버지는 나때문에 한달동안 술을 10병..줄이셔야 한다(이것이 원가절감)회사가 어떻게 수익을 내고 어느 부분에서 비용을 절감해야 하는지 눈에 보이면회계쪽 일은 눈에 익기 마련이다.물론, 투자검토 같은 주관과 예측(포어캐스팅)이 많이 반영되어 있는 사항은그에 따른 객관성있는 세부자료가 뒷받침이 되어야 하고, 어느정도 신뢰성 있는주장을 할 줄 알아야 하기에 고되기는 하다.한주 한주가 다르게팀장은 나에게 많은 기회를 줬고, 그 때마다 업무를 나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었다.모르는 것은 현장관계자나 대리급 선배들에게 물어보고, 그리고도 모를때는첫번째회사를 다니면서 알게되었던 업계 관계자들에게 까지 물어보며그렇게 나의 영역을 넓혀 갔다.그리고 1년이지나고, 사원급 중에서 유일하게 인사고과 A등급을 맞았다.보상은 연봉 0.5% 추가 인상....그렇게 크지는 않았지만,금액과는 별개로 무언가 인정받았다는 심리때문에 많은 만족감을 느꼈었다.그렇게 나는 좋은 회사를 만난 것 같았다...회사의 일은 한달주기로 반복되는 일과 이슈가 있는 비정기적 업무로 나뉘었다.모든 일에 관여를 하며 주도성을 가지고 일을 했었다.생산라인의 탁한 공기가 익숙했고, 마스크와 안전모는 내자리 옆 서랍위에 있었다.여름은 매우 더웠고, 겨울은 매우 추웠다.작업복에는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기 시작했고,꾸미는 것을 좋아하던 내가 어느새 꾸밈이 적어졌다.하지만, 통장을 볼때면 못내 아쉬운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인생은 실전이었다. 제 아무리 계산을 해도 내가 결혼해서 집은 살 수 있을만한 견적이 나오지 않았다.그래도 웃으며, 나는 팀내 분위기 메이커로서 살갑게 사람들을 대하고회사생활을 했다.그리고, 이듬해에 나는 신호위반한 차에 치여 할부가 겨우 끝난 내 차와 함께 다리 아래로 떨어지는 사고로인생에 큰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Ray Ryu 멘토
S----- · 사업추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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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5년 전
4번째 회사를 다니면서 느끼는 점(Part 2 : 첫번째 회사)
로테이션하는 업무들은 금새 손에 익기 마련이다.하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으로 주어지는 이슈들에 대해 신입인 나로서는 손에 익기는 커녕 어떻게 어디서 부터 다루어야 할지 막막했었다.(누구나 마찬가지 일듯)그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선배지만, 나에게는 선배가 없었다.몇 번을 곱씹어 생각해보고 내가 비슷한 위치에 와서 다시 그때를 생각해봤는데도..그 당시 선배는 선배가 아니라 악마에 가까웠다.투자 경제성 검토를 하며, 어떻게 벤더에게 바로 네고를 칠 수 있도록 정보를 습득하고 분석해보라는 건가..당장 명함들고 벤더에게 내 소개를 하더라도 누가봐도 회사생활 6개월밖에 안한 대학교 졸업한 사회 초년생인 것이 티가 나는데..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저 뭔가 아는 척 벤더에게 질문을 하고, 근거가 없더라도 어떻게든 논리를 세운 근거 비슷한 것을 가지고 확신에 가득찬 주장을 해야한다는 것이었다. 선임이 나에게 그렇게 가르쳤다.'너가 무시당하면, 네고는 없는거야. 알아?'그렇다면 선임은 어떻게 그런 노련함을 쌓았을까 하고 의구심이 들었고결론부터 말하자면 독종이었다.지금도 연락하는 첫번째 회사 현업 선임(지금이야 형이라고 부름)과 안부를 주고 받다가 들어보면내가 그 선임을 처음 본 7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 선임은 미혼이었다.지난 이야기 때 팀장이 여자라고 언급을 했는데, 선임도 여자였다.둘다 군대는 다녀오지 않았지만, 내가 만나본 여자중에서는 군대식 사고방식을 가장 잘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이제 나는 숨이 차다.아침에 일어나면 회사를 가기 싫어졌고,회사에 도착해서 내자리에 앉으면 심장이 뛰었다.억지로 시키는 PPT발표(그때는 정말 힘들었지만, 지금은 이때의 강압적 PPT발표가 매우 도움이 된 훈련이 되었다. 팩트!)때문에 회사 옥상에서 자살하는 꿈도 꿨었다.사회초년생이 흔하다는 MOS자격증도 없이 엑셀과 PPT로 업무를 하려고 했으니위에서 보는 시각은 오죽 답답했을터. 그래서 나는 금요일에 의무적으로 PPT발표를 하게 되었다.평일 일과시간에는 일을 하고 저녁에는 PPT를 만들고 밤참을 먹고 PPT연습까지 끝내면새벽 2시..그마저도 이른 감사한 시간이었다.(한번은 새벽 2시에 피곤해서 내일하면 안되겠냐고 했다가 새벽 4시까지 갈굼당함..)그 때 버릇이 하나 생겼다.금요일 아침에 기숙사에서 나오기전에 나는 항상 내 책상위에 무엇인가를 세로로 세우고 나왔다.네임펜, 수첩, 라이타 등등 아침에 보이는 것 1개를 세로로 세우고 속으로 말했다.(오늘 PPT발표 하고 나면 또 혼나게 될거야. 그래도..죽지않고 퇴근해서 세워진 너를 다시 볼 수 있겠지?)물론 지금도 잘 살아 있고, 그 때 퇴근해서 잘 세워져 있는 물건을 봤을 때 정말 울음이 나오곤 했다.마치 100일 휴가로 집에 갔을 때 나를 반겨주는 아버지, 어머니를 보는 것 처럼....나는 최선을 다하고 싶었고, 선임과 팀장이 지시한 대로 훈련을 거듭하고 있었다.하지만 그것이 그들의 성에 결코 찰리가 없었다.그렇게 나에 대한 이미지는 하향곡선을 그리고 절대로 우상향으로 바뀔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그래도, 어떻게 들어온 회사인데...어디가서도 받지 못하는 돈인데... 라며 참아내고 있었다.그렇다. 나는 자존감과 자신감을 단 8개월만에 모두 잃어버렸다..(그래도 나는 어떻게는 뭐든 잘해낼 거야..라는 작은 자신감마저..없어짐)두려움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만두면 1년도 못채우고 그만두는 건데 어디가서 경력인정도 못받을 거라는생각도 들었고, 실패자로 낙인이 찍힐 것 같은 두려움이 있었다.그리고 부모님께도 죄송할 것이었다.회사를 그만두게 된 결정적인 사건은 그때 터졌다.당시 중국에 새로운 몇백억 정도 되는 새로운 투자를 하기 위해 투자검토를 하고 사업계획서를 작성하던중이었다. 열심히 한 덕에 진도는 빠른 편이었다.그리고 12월 30일 외할머니가 위중하다는 전화를 받았고 이를 팀장님께 말씀 드렸다.'야 지금 시기가 코앞인데. 그리고 오늘 종무식 안할거야? 할머니 많이 아프시대? 오늘 돌아가신대? 내가 볼때 할머니를 뵌적은 없는데 사람 그렇게 쉽게 안죽으니까 가더라도 종무식은 하고가. 그리고 가서도 문제 없는 거 같으면 상황봐서 다시 복귀해''....네..종무식 참여하고 가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오겠습니다.'그렇게 종무식을 참여했고, 급히 서울로 운전대를 잡았던 나는 임종을 지켜드리지 못했다. 도착하기 20분전에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회사로는 복귀하지 못했다.할아버지는 내가 1살때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훈련소때, 외할아버지는 자대배치받고 5주후에 돌아가셨다.남은 외할머니의 임종은 꼭지켜드리겠다고 수백번 다짐했었다.난 돌아가신 조부모님과 외조부모님의 얼굴을 항상 차가워진 순간에만 만지고 울 수 밖에 없었다.'....씨발...내가 돈을 바랬습니까...살려달라고 했습니까....할머니 얼굴한번 보려고 한건데...'라며 새해가 밝을 때까지 속으로 되내였다.'할머니...우리 할머니 얼굴 한 번 보게만...해달라고..한건데..'그렇게 나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인간성을 상실한 회사에서는 더이상 돈을 받으며일할 수 없다고 말하며 정처를 마련하지도 않고 바로 퇴직했다.그때도 물론'나보다 더 힘든 상황인 사람도 많을 것인데, 나란놈은 결국 여기까지 인가 보구나.'라며 자책도 하고 나약해졌다.하지만, 여유를 부릴 수는 없었다. 나는 어학연수를 떠나기로 했다.그렇다고 돈이 많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멀리 갈 수도 없었기에가까운 필리핀으로 어학연수를 가게 되었다.PPT에서도, 업무에서도...영어가 부족했다고 무시당하던 상황들은'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모른다고 그렇게 면박주고 몰아세우시지 마셨으면 합니다.'라고 말할 수도 있었지만사회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영어로 나를 비난하고 면박을 주든, 아니면 잘해보라고 웃으며 동기부여를 해주든영어가 안되는 건 나의 귀책사유인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기 때문이다..토익 650으로 합격했으니 영어가 저 밑바닥인건 맞다.물론 토익이 스피킹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나는 문법조차도 헷갈리며 업무를 했다.영어를 많이 쓰는 편은 아니었으나....사용하는 상황에서는 늘 문제가 발생했다.그렇게 회사를 그만두고 일주일간 정비를 하고 바로 어학연수를 떠나게 되었다.
Ray Ryu 멘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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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5년 전
4번째 회사를 다니면서 느끼는 점(Part 1 : 첫번째 회사 초창기)
직무는 6년째 같은 기획업무를 하고 있다.어쩌다 회계학을 전공하다보니 관련된 직무에서 일을 하고 싶었고,회계에 대한 응용이 필요하고 다방면으로 사용될 수 있는 직무가 기획이었다.(사실 회계팀은 1년 열두달 열두번 마감을 해서 그때는 야근이 심해지므로그쪽으로 지원하지 않은 것도 있다. 팩트!)반도체를 만들던 첫 대기업 S모 회사에서 사회에 첫 발을 내딛었다.우연치 않은 합격이었다.분명 최종 면접때 혼자만 토익 650이었고 나머지 4명은 900에한분은 와이프가 일본분이라 일본어도 능통했었다.조금 압박 면접이었다.한명 한명 지원자의 공백기를 파고 드는 질문과 성격에 대한 면접관의날카로운 지적이 이어졌다.다른 지원자는 반박했다."그렇게 보일지는 몰라도, 사실은 ...... 이런 성격의 소유자입니다."나는 그러지 못했다.(사실 좀 억울했지만, 내가 객관적으로 합격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팩트!)"면접관님이 보신게 정확합니다. 오히려 단 30분만에 저의 단점을 정확히 찾아내신 것을 보고제가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잘못된 점이 많다고 느꼈습니다. 감사합니다."불필요한 언쟁을 벌이기 싫었다. 그게 다였다.그날 면접비를 받고 다들 돌아가려다가 5명 모두 다시 불려왔다.면접관 말로는 다들 분위기가 좋아서(너만 그렇게 느끼는 거 아님???) 술한잔 하고 싶다고 했다.여하튼 이게 말로만 듣던 음주면접인가 싶어서 다들 귓속말로 말하고 긴장한채로술마시러 갔다. 그때 혈기 왕성해서 웬만하면 취하지 않아서 문제는 되지 않았다.술자리는 평범했다. 대학생들 하는 게임도 윗분들이 하고 싶다고 해서 같이 했다.(우리는 그냥 기쁨조인가, 정말 특이한 면접관 이었다.)아. 깜빡하고 말을 못했는데, 면접관이 여자였다. 상당히 날카로웠다.그 다음날 학교에서 공강시간에 나의 고시텔(25만원 이었나...)로 돌아와서이메일을 확인하는데 합격이란다.(왓더..ㅋㅋ)입사를 하고 나서 알았는데, 내가 썰전을 벌이지 않고 깨끗하게 인정해서 뽑았댄다.(이것이 잘못된 선택의 시작이었다. 나를 노예로 쓰겠다는 말이지.)처음에는 퇴근도 자유로웠다. 하지만 회사 기숙사로 옮긴 후 부터는매일 밤 11시 또는 자정, 더 심하면 새벽 3시까지 일을 했었다.엑셀이라는 것을 본격적으로 처음보는데 널려있는 막연한 수식들.PPT도 글자를 꽉채운 또는 이쁘게 하던 대학교 PPT만 알고 있는데아주 간결하고 전문적인 용어로 배치된 장표들.PPT와 엑셀 실력이 약하다고 매주 금요일 PPT 발표도 했었다.그때는 죽는 꿈(자살하는 꿈)을 많이 꿨다. 회사 옥상에서 뛰어 내려서 깨보니 꿈이었던 적이 있었다.지금 돌이켜 보면 나의 능력을 단기간에 크게 올려준 고마운 여자팀장이었으나,그때에는 정말 마녀할멈같이 나를 잡아먹지 못해서 안달이었다.기획 업무를 본격적으로 하지도 못했다.단지 윗사람이 만들어 놓은 것을 보조하거나 허드렛일을 할 뿐.당연했다. 나는 아는 것도 없었고, 봐도 모르는 것 투성이니, 복사라도 잘 하거나눈치껏 윗사람들 남아 있을 때, 나도 키보드 소리는 그사람들 만큼 내야 했으니까.재무분석을 통한 투자경제성 검토와 일부 원가분석, 손익분석을 다루었지만,나는 무엇을 할 것이다! 라는 비전이 없었기에(아직 신생아나 다름없는데 뭘 알겠나 내가..)단순히 내가 분석한 내용을 보며 그 틀을 정리하고 그 안에서 배워야 했다.힘들었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 기획은 알아서 뛰어 당기면서 협조를 얻어내고자료를 여기저기에서 받아서 분석해야하는 숙명을 가진 팀이기 때문이다.일이 버겁다고 쉽게 그만둘 수도 없었다.얼마나 미안한가.나 취직했다고 고향어르신들께 자랑한 부모님이 눈 앞에 아른 거리고,한 푼도 못벌던 내가 어쩌다 우연히 들어간 대기업에서 그 높은 연봉을 받고 있으니나란 놈도 결국 꿈보다 현실을 쫓는 현실주의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6시에 기숙사에서 기상6시 30분에 기숙사를 나와7시에 사무실 도착7시에 일일 업무일지를 작성(이거부터 잘못 작성하면 엄청 깨졌었다. 할 일이 없어도                                             어떻게든 할 일을 만들어 적어내야 했다.)8시에 손익 및 원가분석 등 업무시작12시에 밥(늦으면 12시 30분에도 먹고..)돌아와서 이닦고 다시 일과 회의를..하다보면6시에 저녁밥돌아와서 이닦고 또 다시 일과 회의를 하다보면 8시기숙사라는 이유로 제때 퇴근도 못해봤다. 보통 12시면 보내줬었다.그렇게 할 일도 없음에도 남아있던 나날들 때문에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고주말마다 서울가서 친구들 만나서 돈쓰고 맛있는 거 비싼 거 사먹고 했었다.적은 내용을 보니 그래도...아직까지는 견딜만 한거 같다.물론 다음 번에 적을 내용들은 그 회사를 떠나기에 충분한 사유겠지만..아. 보통 윗사람들은  새로 온 신입/경력 사원에게최소 3개월에서 최대 6개월까지는 본인의 성격을 드러내지 않는다.즉, 다음 번 내용은 그런 이야기를 적게 될 것이다.기억하기는 싫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어야만 한다면기억을 되살려 한 번 꺼내보려고 한다.
Ray Ryu 멘토
S----- · 사업추진실
0
약 5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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