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번째 회사를 다니면서 느끼는 점(Part 1 : 첫번째 회사 초창기)
직무는 6년째 같은 기획업무를 하고 있다.
어쩌다 회계학을 전공하다보니 관련된 직무에서 일을 하고 싶었고,
회계에 대한 응용이 필요하고 다방면으로 사용될 수 있는 직무가 기획이었다.
(사실 회계팀은 1년 열두달 열두번 마감을 해서 그때는 야근이 심해지므로
그쪽으로 지원하지 않은 것도 있다. 팩트!)
반도체를 만들던 첫 대기업 S모 회사에서 사회에 첫 발을 내딛었다.
우연치 않은 합격이었다.
분명 최종 면접때 혼자만 토익 650이었고 나머지 4명은 900에
한분은 와이프가 일본분이라 일본어도 능통했었다.
조금 압박 면접이었다.
한명 한명 지원자의 공백기를 파고 드는 질문과 성격에 대한 면접관의
날카로운 지적이 이어졌다.
다른 지원자는 반박했다.
"그렇게 보일지는 몰라도, 사실은 ...... 이런 성격의 소유자입니다."
나는 그러지 못했다.(사실 좀 억울했지만, 내가 객관적으로 합격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팩트!)
"면접관님이 보신게 정확합니다. 오히려 단 30분만에 저의 단점을 정확히 찾아내신 것을 보고
제가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잘못된 점이 많다고 느꼈습니다. 감사합니다."
불필요한 언쟁을 벌이기 싫었다. 그게 다였다.
그날 면접비를 받고 다들 돌아가려다가 5명 모두 다시 불려왔다.
면접관 말로는 다들 분위기가 좋아서(너만 그렇게 느끼는 거 아님???) 술한잔 하고 싶다고 했다.
여하튼 이게 말로만 듣던 음주면접인가 싶어서 다들 귓속말로 말하고 긴장한채로
술마시러 갔다. 그때 혈기 왕성해서 웬만하면 취하지 않아서 문제는 되지 않았다.
술자리는 평범했다. 대학생들 하는 게임도 윗분들이 하고 싶다고 해서 같이 했다.
(우리는 그냥 기쁨조인가, 정말 특이한 면접관 이었다.)
아. 깜빡하고 말을 못했는데, 면접관이 여자였다. 상당히 날카로웠다.
그 다음날 학교에서 공강시간에 나의 고시텔(25만원 이었나...)로 돌아와서
이메일을 확인하는데 합격이란다.(왓더..ㅋㅋ)
입사를 하고 나서 알았는데, 내가 썰전을 벌이지 않고 깨끗하게 인정해서 뽑았댄다.
(이것이 잘못된 선택의 시작이었다. 나를 노예로 쓰겠다는 말이지.)
처음에는 퇴근도 자유로웠다. 하지만 회사 기숙사로 옮긴 후 부터는
매일 밤 11시 또는 자정, 더 심하면 새벽 3시까지 일을 했었다.
엑셀이라는 것을 본격적으로 처음보는데 널려있는 막연한 수식들.
PPT도 글자를 꽉채운 또는 이쁘게 하던 대학교 PPT만 알고 있는데
아주 간결하고 전문적인 용어로 배치된 장표들.
PPT와 엑셀 실력이 약하다고 매주 금요일 PPT 발표도 했었다.
그때는 죽는 꿈(자살하는 꿈)을 많이 꿨다. 회사 옥상에서 뛰어 내려서 깨보니 꿈이었던 적이 있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나의 능력을 단기간에 크게 올려준 고마운 여자팀장이었으나,
그때에는 정말 마녀할멈같이 나를 잡아먹지 못해서 안달이었다.
기획 업무를 본격적으로 하지도 못했다.
단지 윗사람이 만들어 놓은 것을 보조하거나 허드렛일을 할 뿐.
당연했다. 나는 아는 것도 없었고, 봐도 모르는 것 투성이니, 복사라도 잘 하거나
눈치껏 윗사람들 남아 있을 때, 나도 키보드 소리는 그사람들 만큼 내야 했으니까.
재무분석을 통한 투자경제성 검토와 일부 원가분석, 손익분석을 다루었지만,
나는 무엇을 할 것이다! 라는 비전이 없었기에(아직 신생아나 다름없는데 뭘 알겠나 내가..)
단순히 내가 분석한 내용을 보며 그 틀을 정리하고 그 안에서 배워야 했다.
힘들었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 기획은 알아서 뛰어 당기면서 협조를 얻어내고
자료를 여기저기에서 받아서 분석해야하는 숙명을 가진 팀이기 때문이다.
일이 버겁다고 쉽게 그만둘 수도 없었다.
얼마나 미안한가.
나 취직했다고 고향어르신들께 자랑한 부모님이 눈 앞에 아른 거리고,
한 푼도 못벌던 내가 어쩌다 우연히 들어간 대기업에서 그 높은 연봉을 받고 있으니
나란 놈도 결국 꿈보다 현실을 쫓는 현실주의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6시에 기숙사에서 기상
6시 30분에 기숙사를 나와
7시에 사무실 도착
7시에 일일 업무일지를 작성(이거부터 잘못 작성하면 엄청 깨졌었다. 할 일이 없어도
어떻게든 할 일을 만들어 적어내야 했다.)
8시에 손익 및 원가분석 등 업무시작
12시에 밥(늦으면 12시 30분에도 먹고..)
돌아와서 이닦고 다시 일과 회의를..하다보면
6시에 저녁밥
돌아와서 이닦고 또 다시 일과 회의를 하다보면 8시
기숙사라는 이유로 제때 퇴근도 못해봤다. 보통 12시면 보내줬었다.
그렇게 할 일도 없음에도 남아있던 나날들 때문에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고
주말마다 서울가서 친구들 만나서 돈쓰고 맛있는 거 비싼 거 사먹고 했었다.
적은 내용을 보니 그래도...아직까지는 견딜만 한거 같다.
물론 다음 번에 적을 내용들은 그 회사를 떠나기에 충분한 사유겠지만..
아. 보통 윗사람들은 새로 온 신입/경력 사원에게
최소 3개월에서 최대 6개월까지는 본인의 성격을 드러내지 않는다.
즉, 다음 번 내용은 그런 이야기를 적게 될 것이다.
기억하기는 싫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어야만 한다면
기억을 되살려 한 번 꺼내보려고 한다.
나이와 경험이 많다고 누군가의 나침반을 흔들어 놓는 실수를 범하는
"조언, 충고, 말"을 하게 될수도 있기에..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들려주고, 경험을 이야기하며
그 속에서 상대방이 자연스럽게 거를 것은 거르고, 공감할 것은 공감하며,
능동적/주체적으로 스스로 답을 찾는 것이 그 무엇보다 값지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