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번째 회사를 다니면서 느끼는 점(Part 5 : 두번째 회사 후기)
[어린 날의 회상]
넉넉한 삶은 아니었다.
장난감이 없어서, 수수깡으로 무언가를 많이 만들곤 했다.
가지고 싶은 것을 수수깡으로 만들면 처음에는 재미있었다.
TV 만화에 나오는 것부터 문구점에서 파는 장남감까지 수수깡으로 만들거나
아니면 그 장난감을 가지고 있는 친구집에 가서 놀았다.
한번은 어머니께 장난감을 하나 사달라고 했었다.
볼트론(5마리가 합체하는 사자 로봇)의 한쪽 다리.
국민학교앞에 '서울노트사'라는 문구점에 같이 갔다.
어머니가 어떤 것이냐고 물으셨고 나는 그 장난감을 가리켰다.
주인아주머니는 3천원이라고 하셨다.
어머니는 적잖히 당황을 하셨고, 잠시 이야기좀 한다며 나를 데리고 나갔다.
저렇게 비싼 줄은 몰랐다며, 사주는 대신 아빠한테는 비밀로 하고
아빠가 알게되면 친구장난감을 빌려왔다고 말하라고 하시고는
들어가서 사주셨다.
그 것은 나의 보물이자, 어머니의 배려이자, 아버지의 피땀이었다.
그런 내가 어느새 커서 다른 사람들과 호흡을 하며 사회라는 곳에 살고 있고
일을 하고 있고, 돈을 벌고 있고, 이 곳에서 누군가에게 대가가 없는 도움을 주고 있다.
우린 모두 힘든 시절을 보냈다는 것을 다 알기에..
그리고 누군가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 성인이기에..
금전적인 도움만이 중요한 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에..
[두번째 회사 첫해]
지난 번 글에서 언급했듯이 두번째회사의 급여에 만족할 수가 없었다.
난 솔직히 돈이 더 필요하다.
그래서 두번째 회사에서도 꾸준히 타회사에 이력서를 제출하던 때였다.
'축하합니다. 서류전형 합격하셨습니다.'
그렇게 'L'그룹에 면접을 보게 되었다.
PPT 발표와 함께 진행된 면접이었고
나의 주제는 '향후 기업성장 전략'이었다.
장표는 10장 내외로 구성했고,
템플릿은 회사에서 작성하여 보고했던 파일중
제일 무난하면서 보기 좋은 양식으로 꾸몄다.
기억이 흐릿하지만, 칭찬을 받았었다.
'며칠만에 만든 자료인가'부터
'합격하면 주제대로 잘 할 자신있는가' 등등
꼭 합격할 줄 알았던 상황에서
그날 저녁 다음을 기약한다는 문자를 받게 되었다.
[지난 이야기에 이어서]
두번째 회사를 다니며
사외교육을 많이 들었다.
특히 재무분석, 원가분석, 손익분석 등을 집중적으로 들었고
부가적으로 주식연수, 조직관리 교육을 들었다.
그 내용을 실제적으로 업무에 반영한 경우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교육참석에 의의가 있는 것이었다.
회사에서 외부교육을 이수하는 것은 환급 및 직원육성에도 의의가 있고,
직원은 역량개발을 할 수 있다는 것에 의의가 있으나,
무엇보다 꾸준히 교육을 이수함으로써 이력서에 자기자신이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음을 어필 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다.
나는 최대한 많은 교육을 듣고
많은 업무를 하며 내 이력서를 빼곡히 채우려고 애썼다.
그러던 중 교통사고가 났고, 복직을 하고, 결혼을 했다.
나 때문에 간호사를 그만두고 두번째 회사가 있는, 연고도 없는 지역으로 따라와서
'여기 5일장 가봤는데 정말 재미있어, 다음에 같이 가보자.'
'조용한 동네라서 공원에서 혼자 걷기 참 좋아.'
라며, 퇴근한 나에게 말을 건네는 아내와 통장을 번갈아 보며
고마움 반, 미안함 반에 어서 좋은 직장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꾸준히 타회사의 문을 두드리던 중
그 해 겨울.
'축하합니다. 서류전형 합격하셨습니다.'
그렇게 나는 'L'그룹 본사에 면접을 보게 되었다.
2년전에는 본사가 아니고 지방사업장에서 면접을 봤었다.
그런데, 본사 기획에 면접을 보게 된 것이다.
이번에도 PPT면접이었고, 주제는 비슷했다.
나는 2년전 자료를 꺼내어 무엇이 부족했는지 다시 자료를 보며
더 현실성있게 또 어떤 부분은 과감하게
하며 꾸준히 발표자료를 만들었다.
그때가 11월 이었고, 사업계획 막바지라 회사가 바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집에오면 면접자료를 계속 다듬었고, 새벽에 자는 경우도 허다했다.
발표때 떨지 않기 위해 제3자인 아내를 앉혀 놓고
발표 연습도 수십번.
전문가가 아닌 시각을 가진 아내는 자료의 내용보다는
나의 발표 태도를 유심히 보며
불필요한 동작이나 말투, 억양등을 일반인의 시각으로 정확하게 판단해 주었다.
그렇게 발표연습을 하고 면접전날 나는 아내가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연차를 냈다.
면접 PPT발표는 성공적이었다.
1의 떨림도 없었다.
밤마다 자료를 다시보고 다시고치며
이 순간을 위해 얼마나 연습하고 연습했던가.
발표가 끝난 순간 조용한 면접장 분위기에
담담하고 조용히 자리에 앉았지만, 속으로 너무 기뻤다.
대기업 경력직 면접 PPT발표에서 조금도 떨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어진 질문은 PPT자료에서 언급한 BCG 매트릭스부터
하고 있었던 업무에 대한 질의응답.
그리고,
'지난번에 지방 사업장에 지원했다가 떨어진 적이 있는데
그때는 왜 떨어졌다고 생각하나?'
예상한 질문이었다. 그것을 물어볼 줄 알았다.
'네, 지난번에 지원했을 때는 경험과 경력이 이 회사에 올만큼
충분하지 못했서 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는 충분하다고 생각하나?'
'스스로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면접관님께서 보시기에
아직도 부족하다고 생각이 되시면, 경력을 더 쌓고 언제고 다시 지원하겠습니다.'
누구나 생각만 해놓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답변이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분명 물어볼 질문이라고 생각하여
수십번 같은 어조, 확실한 발음으로 연습을 해서 자연스럽게 나오도록 했다.
그렇게 나는 5명의 경쟁자 중에서 혼자 1차 면접을 합격했고
최종면접을 앞두고 있었다.
확신이 섰다.
그래서 두번째 회사에서 업무시간 중에 조금이라도 시간이 나면
업무 인수인계서를 작성했다.
(물론, 이마저도 안되면 큰 정신적 충격에 다시 빠질 것이다.)
임원면접은 혼자 들어가게 되었다.(사실상 최종면접)
그 임원면접에 들어갈 수 없을뻔한 사연도 있었다.
면접날은 공교롭게 나의 생일이어서 연차를 쓰는데 큰 눈치는 보이지 않았다.
다만, 오전에 진행되는 면접이기에 고민이 되었다.
전날 올라갈 것인가, 당일 아침에 출발해도 문제없는 거리니 그냥 당일 갈 것인가.
아내와 이야기하면서, 그래도 혹시 모를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기위해
전날 올라가서 근처에서 하루 묵기로 했었다.
밤에 올라가는데 갑자기 고속도로에서 우회도로로 안내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올라가기 2~3시간 전, 서해대교 케이블이 끊어져서 교통이 전면 통제되고 있었다.
큰일 날뻔했다. 아침에 올라갈 생각이었다면 분명 우회도로에서 차가 막혔을 것이다.
(이자리를 빌어 아내에게 다시 한번 감사)
그렇게 다음날 최종면접에 참석했고, 지금까지 해왔던 일 등 업무적인 질문과
일부 사적인 질문에 대답을 하며 면접을 봤다.
다른 부문에 지원한 지원자들 사이에 혼자 경영기획 부문 지원자로 앉았다.
처음에는 질문이 하나도 오지 않아서 속으로 적잖이 당황했었다.
조금 불안해지려던 찰나 면접시간 중반을 넘어서야
나에게 많은 질문이 왔고, 차근히 답변을 했다.
'혹시 집안에서 우리 XX제품을 사용하는 사람이 있는가?'
라는 사장님의 질문에.
'네 큰집에서 사용중인 것 같은데..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라고 대답을 했다.
'에이, 우리 XX제품 사용 안하는구만?'
당황스러웠다. 나는 어떤 답을 해서 이 상황을 넘겨야 하는가하고 잠깐 생각했다.
'합격하면 큰집에 하나 사드리겠습니다!'
사용중인지 아닌지 전화해서 물어보겠습니다도 아니고, 하나 사드리겠다니..
내가 생각해도 막무가내였다.
그런데, 그 대답 하나로 면접장에 참석한 임원분들이 크게 소리내어 웃음을 지었다.
사실상 기획부문에서는 나혼자 들어간 면접자리이기에
어느 정도 직장생활이나 사회생활 눈치가 있다면 알았겠지만,
별문제 없으면 합격은 기정사실인 것이다.
(추후 세번째 회사에 입사한 후에 모든 면접에 참석하신 이사님은 나의 준비된
발표 능력과 쌓은 경력을 높이 평가했다고 하셨다.)
내 생일날이었기 때문에 면접을 마치고 아내와 같이 차로 고향에 가던 길이었다.
오후5시에 회사번호로 전화가 왔다.
면접자리는 어땠는지, 멀리서 오셨는데 교통이 불편하지는 않으셨는지
묻는 여직원..
그리고 차안에서 블루투스로 모든 통화내용을 듣는 나와 아내..
'오늘 생일이라고 하셨는데 맞나요? 제가 생일선물 하나 드릴께요.
축하합니다. 합격하셨어요...준비하실 서류는....'
말투 하나하나가 다정다감한 직원이었다.
눈물이 났다. 아내도 기뻐했다.
대기업 직원은 어쩜 저리 합격소식도 다정하게 알려줄까..
꿈에 그리던 'L' 그룹, 그것도 본사 기획팀.
그곳에 내 이름이 올라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돌아오는 월요일에 사직서를 냈고,
다소 황당하다는 표정의 차장에게
담담하고 정확한 어조로 이직 사유를 설명했다.
팀장의 반박은 없었다. 모든 것이 사실이었기에.
오히려 나에게
퇴직일에 대표이사님께 인사 안드리면 안되겠냐며 부탁을 하나 했다.
상무님까지만 인사드리고 가라는 것이었다.
내가 인사드리러 들어가면 분명..
내입에서 나올 소리들의 팀장에게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칠 터.
아내와 상의를 했고, 나는 마음씩 착한 아내의 조언대로
상무님까지만 인사를 하고 퇴직을 하기로 했다.
책상에는 3년전부터 나와 함께한 흔적들이 세월을 입고 있었다.
적당히 꼬인 수화기, 구겨져 붙여진 포스트잇, 테이프자국 묻은 책상
나를 향해 약간 돌아가 있는 서랍장, 이름이 쓰여진 스테플러.
늘 하던 업무처럼 인수인계도 무리없이 진행이 되었다.
다만, 대리님에게는 미안했다.
이 모든일을 후임이 아닌 대리님이 가져가게 된 것이다.
(8개월 후 대리님도 더 좋은 곳으로 이직함)
그리고 퇴직하는 날.
회사 선배이자 같은 지역출신인 형이 점심을 사주었고
집에 와서 아내에게 웃으며 말했다.
"나 오늘부터 백수다!"
이제 새로운 회사를 갈 준비를 해야한다.
틈틈히 L회사 관련기사도 보고(인터넷에 회사 기사가 이렇게 많다니..)
지역도 수도권이기에 살던 집을 내놓고 새집을 보러 다녔다.
집값이 좀 있기는 했지만, 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두번째 회사를 다니며 신혼집으로 살았던 투룸도 그사이 나갔고,
이제 세번째 회사를 다닐 때 살게 될 쓰리룸으로 옮기게 되었다.
행복했다.
사고 이후로 한 번의 오차도 없이
모든 것이 짜여진 각본 마냥 진행되었다.
첫번째 회사를 다니며 1년을 채우지 못하고 퇴직을 했으나
세번째 회사는 1년을 추가로 인정해주며, 나를 바로 대리로 진급시켰다.
아내와 둘이서 써도 넉넉한 급여도 마음에 들었다.
사고전에 원가와 손익, 사업계획, 예산 등을 잡았고
사고후에 투자검토 경제성분석을 잡으며 업무능력을 끌어올린 상황에서
대리로 이직한다는 것은 나에게 큰 이점이었다.
사원급에서 알 수 없던 정보를 접할 기회가 많아질 터였다.
그리고 대리직급으로 추진할 수 있는 업무와 그에 따른 책임의 범위도
사원직급과는 다르기 때문에, 아직 일을 시작하지는 않았지만
업무적으로도 만족할 수 있었다.
분명 어렵게 얻는 기회를
최대한 노력하고 살려서 쟁취한 것이다.
허나, 세번째 회사로의 이직하는 과정에서
긴장을 조금했던 면접을 제외하고는
그 어느하나 불편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뭔가 마음한구석에 의구심을 갖게 했다.
운수가 지나치게 좋았다.
나이와 경험이 많다고 누군가의 나침반을 흔들어 놓는 실수를 범하는
"조언, 충고, 말"을 하게 될수도 있기에..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들려주고, 경험을 이야기하며
그 속에서 상대방이 자연스럽게 거를 것은 거르고, 공감할 것은 공감하며,
능동적/주체적으로 스스로 답을 찾는 것이 그 무엇보다 값지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