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졸업했지만, 전공을 살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정확히 이런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없고 막연한 꿈만 있습니다.
저는 편집 디자인이나 웹 디자인을 하고 싶어요. 사실 하고 싶은 게 더 많지만 다 못하겠죠. 준비도 힘들고요. 부모님께서 한심하게 생각할까 봐 스트레스만 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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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본격적으로 준비하고 싶어도 맞지 않은 전공을 4년 동안 공부하며 시간 낭비 했다는 생각에 또 같은 실수를 할까 걱정입니다. 무슨 일을 할지, 어떻게 준비를 할지 결정을 못 하겠어요. 막연한 꿈만 꾸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멘토님 멘토링 분야에 ‘꿈이 많거나 없는 사람’이란 대목을 보고 막막하고 절박한 마음에 글 남겨봅니다.
💬 정애지 멘토의 답변
스페셜리스트가 되겠다는 강박을 버리세요
안녕하세요. 제가 멘토링 분야에 '꿈이 많거나 없는 사람'이라고 적긴 했지만, 저라고 딱히 그 꿈에 대한 답변을 갖고 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저 자신이 바로 꿈이 많거나 없는 사람이거든요.
저는 대학생 시절 디자인을 전공했습니다. 그러나 디자인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습니다. 참고로 고등학생 2년, 재수 1년, 대학교 4년, 심지어 1년간의 편입 준비까지 도합 약 7~8년간을 디자인 전공에만 몰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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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졸업반 당시의 저는 아이돌 팬 활동에 더 관심이 많았고, 대학생활 내내 광고동아리 활동을 했으니 광고 기획자로 취업하겠지라고 막연하게 생각만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정말 운이 좋았는지, 광고회사에서 기획자로 적당히 커리어를 쌓을 수 있었죠.
그렇게 벌써 7년이 지났네요. 지금 제가 하는 생각을 말할까요? 솔직히 광고도 딱히 제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런 제가 한심하게 느껴지나요?
맞아요. 저는 제가 한심하다고 종종 생각합니다. 좋지 않은 형편에서 평생 직업으로 삼지도 않을 디자인을 전공해서 부모님 등골만 빼먹은 건 아닐까, 내 의지로 광고 회사에 들어가서 일했지만 남는 것은 왜 병원 진단서와 후회뿐일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운 적도 많았습니다.
한편으로는 직장에 지나치게 의미를 두는 나 자신이 실망스럽고 화가 났습니다. 직장에 다니지 않는다고 무능력한 게 아닌데도, 스스로를 계속 무능력하다고 깎아내리고 있었고 누군가를 만나기도 두려웠거든요.
생각해보면 말이죠, 대부분의 직장 선배들을 보면, 남녀를 막론하고 보통 45세를 기점으로 경력이 단절되거나 퇴화되거든요.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때, 디자인을 업으로 삼든 광고를 업으로 삼든 현실적으로 내 커리어는 약 40살 이후 거의 퇴화할 텐데, 남은 내 인생 반백 년을 어떻게 살아야 하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퇴사 이후 거의 매일 이런 걱정을 반복하며 공포감에 떨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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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히려 시한부처럼 내 경력의 종말은 40살이라고 점찍어 놓고 보니, 답이 약간 보이는 듯했어요. 내 경력의 종말이 40살이니 그전까지 새로운 인생을 준비해야겠다, 더 많은 것에 도전해봐야겠다 생각하기 시작했거든요.
저를 비롯한 제 나이의 동료 대부분은 '평생직장'이라는 말에 공감하지 않습니다. 이직도 이전에 비해 잦은 편이고, 평생 같은 일만 하며 사는 사람도 없고요.
오히려 상황에 따라 스탠스를 변경하면서 유연한 삶을 살아가는 분들이 행복을 빨리 찾곤 하더라고요. 아마 멘티님이 제 나이가 될 때쯤에는 더 심해질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벌써 많은 미래학자들은 현재의 직업들이 많이 사라질 것이고, 대부분의 사무직은 AI로 대체될 것이라고 말하죠. 그 때문에 한 가지만 잘하는 스페셜리스트가 되기보다는 다양한 분야에 능통한 제너럴리스트가 되라고 권고하기도 하죠.
그래서 저는 제너럴리스트가 되기로 했고,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다양한 경험을 통해 찾아가기로 했어요.
무의미한 경험은 없습니다
제가 결론적으로 하고 싶은 말은, 많이 절박하고 힘들겠지만 지금 당장 취업해야겠다고 조바심을 갖기 보다는 그 전에 내가 조금이라도 호기심이 가는 일을 다양하게 경험하는 것을 먼저 해보라고 조언하고 싶어요. 그게 웹디자인이든, 편집디자인이든요.
미국의 유명 코미디언인 코난 오브라이언은 2011년 다트머스대학 졸업 축사에서 꿈은 늘 바뀌기 마련이니 특정 직업이나 커리어 목표로 꿈을 정의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덧붙여, 실패를 하고 실망을 해야만 비로소 남들과 다른 나의 모습이 보이게 되고, 그제서야 자신의 목표를 명확히 할 수 있다고 이야기 했지요. 실제로 그는 공중파 방송에서 퇴출되는 실패를 겪었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케이블방송에서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해, 오히려 공중파에 있을 때 보다 더 큰 성공을 만들고 있습니다.
저는 스스로를 잉여, 루저라고 이야기 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많은 실패를 거듭했고, 남들이 '한심하다'고 여길만한 일도 많이 저질러 왔으며, 이 순간에도 전공과 직업을 밥 먹듯이 바꿔가며 이렇다할 성공을 이루지 못한 채 살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코난 오브라이언의 말처럼 결국 성공의 자리에 올라가는 사람은 한번 쯤은 실패와 실망에 좌절해 본 잉여, 루저들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아직은 무엇도 아니지만, 스스로의 목표를 명확히 하는 과정 중에 있다고 믿고 있고, 언젠가는 제가 만족할 수 있는 성공을 할 수 있으리라 믿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매우 복잡한 방법으로 살아왔지만, 방향을 잃었던 적은 없었으니까요.
저는 저처럼 자주 흔들리고, 넘어지고, 실패했지만 그럼에도 절대로 자신을 포기할 수 없는 분들께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멘토라는 이름보다는 서로 부족한 삶의 과정을 나누고 고민하며 함께 자랄 수 있는 공생 관계가 되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