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할 때 고민해야할 점
나는 이력서로만 보면 진득하게 한 곳에서 4년 이상을 있는 타입이지만,
마음만은 프로 이직러다. 하하.
백조가 물 밑에서 미친듯이 헤엄치듯이, 나는 우아하게(?) 일하면서 종종 이쪽 저쪽 눈을 돌리고 네트워킹을 했다.
그랬던 내가 작년 하반기부터는 정말 링크드인을 몇 달간 안보며 살았다. 좋게 말하면 드디어! '지금 이 순간'에 감사하고 집중하며 사는거랄까.
그러다 한국에서 후배들이 이직 고민을 하는 걸 들으며 조언을 해줬고, 내가 잠시 잊고 있던 이직 세상에 대해 다시 생각을 해보게 됐다.
그러면서 링크드인을 다시 들락거리기 시작했는데,
감사하게도 엄청난 제안들이 인박스에 들어오고 있었다.
그 중 S사 VP 자리가 있었는데, 이건 지금 생각해도 뭔가 착오였던 듯 싶다. 물론 정중히 거절했다.
예전 같았으면 날뛰며 좋아했을 이런 좋은 기회들을 돌보듯 보고있는 나를 보면서,
내가 나이가 들어 열정이 식은건가? 싶어서 잠시 약간 스스로에게 쪽팔려해야하나 했는데,
생각해보니 이건 그만큼 내가 현재에 만족하고 있고, 이 일 외에도 열정을 쏟아붓고 싶어하는 다른 것들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자각했다.
한 회사에 4년 이상 (사실 이전 회사는 나라를 옮긴거지 회사 자체는 8년을 다녔다) 다니면서 주변에서 자주 이직하는 친구, 블로그 이웃들을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은 저렇게 열심히 해서 계속 점프, 레벨업 해가는데 나만 제 자리에 있는 건가?
그들은 저렇게 시장에서 능력을 인정, 검증받는데 나는 한 곳에 머물러서 나중에 시장에 나갔을 때 아무것도 아니면 어떡하지?
하지만 지금은 이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왜냐면, 이직만이 답이 아닌 것을 알기에.
요가하고 달려가서 만난 후배에게 이 얘기를 몇 시간에 걸쳐 얘기를 해줬는데,
고민하는 포인트에 너무나 명쾌한 답이 됐다며 고마워했다.
그래서 이곳에 다시 간추려 남겨본다. 아.. 그 때 영상을 찍었어야 할 것을...
1. 이직을 자주하지 않는다고해서 능력이 없는게 절대 아니고, 커리어 개발을 못하는게 절대 아니다.
지금 내가 있는 업계/직무는 배울 것이 항상 너무나 많고, 세일즈 사이클도 길고, 고객의 기대치도 매우 크다.
그래서 벤더 측도 고객 측도 사람이 자주 바뀌지 않는다. 심지어 너무 오래 있는 사람도 많다.
이 업계에 있으면서 평균 근속이 10-20년 이상인 사람을 너무 많이 봤다.
이런 환경에서 자주 이직을 하게되면 스스로도 임계점에 도달해서 능력을 펼치기 전에 무브를 하는 꼴이 되버린다.
그리고 한 직장 안에서도 커리어 개발을 할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특히나 글로벌 기업이나 대기업이라면 아주 다양한 포지션, 분야, 지역이 모두 후보 대상이다. 내가 원하는 게 있으면 타겟해서 준비하고 추진하면 된다.
나는 외부적으로는 계속 어카운트 세일즈를 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 안에서 담당 분야도 크게 바꾸고 국가도 바꾸면서 커리어를 개발했다.
심지어 내 남편은 한 회사에서 17년을 근무했는데,
3년 이상 같은 업무를 하거나 한 국가에 있었던 적이 없고, 그 3년 안에도 다양한 분야를 종횡무진했다.
그렇게 대졸 초짜 엔지니어로 입사해서 핸즈온이 가능한 씨티오가 됐다.
우리가 그동안 자주 이직을 했더라면 실수로라도 좋은 포지션 제안을 받는 일은 없었을거다.
그게 지식이든, 프로세스든, 관계든 간에 아는게 많아질수록 통찰력이 생기고 업무 생산성과 효율성, 아웃풋까지 쫙 올라간다. 그리고 그 단계에 도달하기 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린다.
물론 나와 달리 이 기간이 짧은 환경에 있는 사람이라면 조금 말이 달라지겠지만.
2. 이직이라는 건 인생에서 꽤 큰 결정이기에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된다.
이직 전에, 과연 어디로 이직할까, 또는 이 이직이 얼마나 좋은 결정일까에 대해 저울질하는 과정부터가 힘들다.
그리고 이직해서는 더더욱 힘들다.
일단 새로운 환경과 사람에 적응하는 건 하루 아침에 쉽게 되는게 아니다.
새로운 조직구조, 업무 프로세스부터 함께 일하는 사람과의 협업 스타일, 하다못해 그 수많은 새로운 이름들(너무 어렵고 긴 이름들도 많고) 다 외워야 하고.
더 중요한 건, 내가 아무리 잘났다해도 그걸 아무도 모르는 새로운 곳에 간거니 내 잘남을 열심히 증명해야한다.
이건 내 능력이 이미 검증된 기존 회사에서는 계속적으로 할 필요가 없었던 행위다.
이직을 위한 조사, 준비, 적응 과정에 쓸 에너지를 현재 일에 쏟아 붓는다면 어떨까?
현재 골치아픈 문제 해결에,
앞으로의 계획과 전략에,
이 안에서 내 커리어 영역을 확장하고 개발하는데.
이직의 기회비용은 무시할 수 없다.
특히 내가 하고싶은 취미나 부캐 등이 있다면 더더욱.
3. 이직해서 얻을거라 기대하는 것 (현재 가지지 못한 것)과 현재 가진 것은 주관적이어야 한다.
이직을 하면 현재 직업에서 하지 못하는 새로운 것들 할 수 있고, 새로운 멘토/멘티들을 만날 수 있으며,
승진과 연봉 상승의 기회도 있을 것이며,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들 - 비효율적 프로세스, 진상 등-도 제거할 수 있다.
너무 퐌타스틱하게 들린다!
하지만 이 멋진 기회가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지는 않을 수도 있다.
무슨 말이냐면, 객관적으로 멋져보이는 이 모든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행복이, 또 누군가에게는 불행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나는 돈보다도 유연한 근무 시간, 재택근무, 자유로운 커뮤니케이션, 평등한 환경 등이 더 중요한 사람이라면 그것들이 유지되지 않는다면 높은 지위와 연봉을 받아도 그리 행복하지 않을거다.
주관적으로 나에게 내 인생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더 채워주는 곳이, 객관적으로 근사해보이는 곳보다 더 행복한 것이다.
아래 글에서 이 부분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쓴 적이 있어서 요만큼만 하겠다.
https://blog.naver.com/senaland/222491448937
한국에서는 중소기업, 공기업, 외국계 기업 등을 거치며, 생존능력과 맷집을 키웠습니다. 그렇게 얻은 깨달음을 여러분들과 공유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