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하는 것도 경험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당하지 말고 항하라!
얼마 전에 겪었던 일이다.
필자가 살고 있는 나라에서는 이민을 하려면 영어시험을 치러야 하는데, 본인 또한 이민을 위해 그 나라에서만 사용하는 영어시험을 응시했다. 아침 9시와 오후 1시 중 하나를 선택해서 시험을 치를 수 있었는데, 빨리 보고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오전 9시에 시험을 보는 것으로 응시를 했다.
시험 당일에 필자는 9시 시험을 보기 위해 새벽 5시에 일어났고, 씻고 준비를 마치고나서 버스를 타고 항구로 갔다. 그곳에서 배를 타고 40여분을 항해하다 보면, 목적지가 있는 근교의 항구에 도착을 하는데, 거기서 다시 버스를 타고 30~40분 정도 가야 시험을 치르는 곳을 찾을 수 있었다.
시간이 많이 남기도 해서 계속 시험준비를 하려는데, 아침에 매우 일찍 일어난 탓에 컨디션이 최악이었다. 아침잠이 많은 필자로서는 졸린 기운을 깨기가 쉽지 않았고, 겨우내 정신을 차리고 시험장에 입장할 수 있었다.
시험장에 입장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문제는 시험이었다. 모의고사 문제를 많이 풀어보지 않았다고 하지만, 대략 어떤 유형과 어떤 패턴으로 나올 거라는 예상을 하면서 시험준비를 했는데, 모의고사에 나온 문제 수보다 훨씬 더 많이 나와 당황스러웠지만, 듣기는 어느 정도 풀었던 것 같았다. 다음은 읽기인데, 집중이 하나도 되지도 않아 결국에는 중간에 살짝 조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풀긴 했지만, 예감이 좋지 않게 흘러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쓰기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평소에도 친구들과 영어로 문자를 주고받으며 대화를 했기에, 어떤 형식으로 질문에 대한 답변을 작성할 수 있는지 파악을 하는 것은 물론, 답변 요구사항에 맞춰 거의 막힘없이 작성할 수 있었다. 말하기는 제한 시간 내에 답변을 해야 하는데, 이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한 문제는 내가 생각해도 이상한 대답을 하였고, 나머지는 그냥 그럭저럭이었다. 다만, 이 부분에서는 최소 통과점수 정도는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을 했다.
시험이 끝나고 며칠이 흘렀을까? 이메일을 통해 성적표가 나왔다는 연락을 받았고, 나는 즉시 홈페이지에 접속을 했다. 많이 안 좋을 거라고 예상을 했던 읽기에서는 다행히 좋은 점수가 나와 의외이면서 다행이다 라는 생각을 하였지만, 말하기에서 컷오프가 된 것이다. 컷오프가 된 사실에 대해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한 나는 즉시 시험을 출제한 위원회에 항의메일을 보냈다. 말하기 점수가 생각보다 낮게 나온 것 같다. 이건 개인적으로 납득할 수 없다는 식으로 말이다. 재평가를 요구하겠냐는 위원회의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을 했고, 한국 돈으로 약 5만원을 재평가비용으로 요구를 하였다. 즉시 나는 결제를 했고, 그리고나서 시간이 흘렀다.
얼마 전 재평가 결과 메일이 날라왔다. 재평가 요구를 했던 말하기 파트에서 통과 점수를 받았다. 그 결과를 본 순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 전까지는 다시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돈을 지불해야 할 상황인지 아닌지 가늠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고, 만약을 위해 어느 날짜에 재시험을 볼 지 생각을 하고 있었던 찰나였기 때문이다.
평소의 나였다면 재평가를 요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그 때에는 항의를 하고, 재평가를 요구했다. 주변에서는 오히려 재평가를 요구해도 같으니까 재시험을 준비하는 게 낫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던 찰나였다.
본인에게는 상대적으로 아무것도 아니지만, 우리는 흔히 이런 부당하거나 억울하거나, 의아한 상황을 겪으면 항의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다. 특히, 한국에서는 더욱 그렇게 살아왔다.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이것도 다 경험이라고. 그것이 경험이고 청춘이라면, 우리가 하고 싶은 경험을 쌓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청춘의 역할이고, 하고 싶은 말을 내뱉을 수 있게 해주는 게 청춘이 아니던가???
어느 몰상식한 사람들이 청춘이라는 단어를 그렇게 쉽게 내뱉는단 말인가?
이제 우리 청년들은 저런 발언에 대해 분노를 표한다. 특히, 사회가 만들어놓은 틀에서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부당하다고 얘기하는 모습까지 종종 나오게 된다. (아직까지는 SNS상이지만....)
'타는 목마름으로' 라는 시가 글을 쓰는 도중에 생각났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당시 김지하 시인은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을 목마름으로 그것도 타들어가는 목마름으로 인한 상황을 표현하며,
민주주의에 대한 본인의 희망을 절실하게 내뱉었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어떠한가? 민주주의를 이루었지만, 우리는 아직까지도 민주주의가 많이 성숙되어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인지?
이 시대의 청춘들을 위한 민주주의, 즉 자신들의 이상향을 펼치고 싶어하는 그들의 타는 목마름을 멘토들은,
그리고 기성세대들은 얼마나 잘 응원해주고 같이 길을 걷고 있을까?
본인은 이번에 겪은 일을 통해 느낀 건, 다행히 통과를 하게 되어서 재시험에 대한 비용을 굳었다거나, 다시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보다, 왜 그 많은 시험을 봤던 사람들 중에 이런 얘기를 조금이라도 알려준 사람이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교차했다. 이것을 좋은 경험이라 해야 할까? 순응하며 살았다면, 그것은 좋은 경험이라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짜증나고 지우고 싶은 경험일 뿐이다. 그러나 나는 단 한번, 그 한번의 항의를 통해, 내가 하고싶은 말을 함으로써 이루어냈기에, 그렇기에 나는 이제야말로 좋은 경험이라고 말할 수 있고, 이제서야 나는 이게 청춘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모든 멘티분들은 충분히 의지가 있고, 자기 자신들을 사랑하기에, 항의라는 것. 할말이라는 것. 그것을 하는 게 당연하다고 여길 수 있는 사회가 자리잡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