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기획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전공이 가장 유리할까요
10여 년 넘게 공연기획자로 살아오면서 공연계 입문을 바라는 자녀들의 학부모들 상담 요청이 가끔 있습니다. 특히 어떤 전공이 가장 도움이 되느냐는 질문이 많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또 포털 내 지식인을 통해서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가장 많이 보이는데요. 현재의 성적은 어떻고, 관련 학과 합격 가능선은 이런데, 취업에 가장 도움이 되는 선택지는 무엇이겠냐고요.
이때 저는 앞으로 공연기획자가 되는 데 있어 굳이 연극영화과 관련 전공이 아니어도 상관없다고 그 하나만은 분명히 얘기합니다. 가장 먼저!
단, 무대 관련 크리에이터 쪽으로 진로를 희망한다면 당연히 관련 분야를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게 좋다고 말합니다. 아무리 현장 경험을 강조하는 곳이지만 크리에이터에게는 ‘전문성’이 요구되기 때문이에요.
해당 분야의 이론에 대해서 꽤 깊이 있게 공부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현재 주목받는 크리에이터들의 상당수가 유학파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외 공연업계 업무는 현장에서 직접 부딪히고 경험하면서 배우는 게 90% 이상입니다. 그러니 학교 네임에 너무 연연할 필요도 없고, 또 대기업 취업을 준비하듯 너무 스펙 쌓는 일에 몰두하지 않아도 됩니다.
더욱 반가운 것은, 민간기업에 비해 학력 부분이 중요시되던 문예회관에서도 최근에는 '블라인드 채용'이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능력 위주로 인재를 선발하겠다는 것이니까요. 예비 공연기획자에게 더 많은 기회가 열리게 된 것이죠.
물론 일반적인 취준생들처럼 하는 노력들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세계는 단언컨대, 다양한 경험을 통해 사고의 폭이 넓은 사람이 훨씬 더 환영받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생각의 유연함과 타인에 대한 이해와 포용력이 깊을수록 수십 명에서 수백 명에 이르는 많은 사람들과의 협업에서 혼자 튀지 않기 때문이에요.
똑똑함보다는 지혜로움이 더 요구되며, 탁월한 의사소통 능력을 통해 신뢰감이 쌓이는 독특한 조직이라는 사실에 토를 달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요즘 업계 채용 공고가 많이 올라오는 시기입니다. 해서 취업 관련한 일대일 컨설팅 문의가 많은데요. 살펴보니 역시나 신입 선발 시, 여러 기관에서 지원 자격 요건에 '공연 관련 경험자 우대'라고 명시하고 있더군요.
이는 공연업계 일정이 워낙 빠르게 진행되고, 늘 시간에 쫓기다 보니 신입으로 들어온 후배들에게 여유롭게 일을 가르쳐 줄 환경이 조성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에요.
그러니 현장 업무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는 사람들을 선호하기 마련이죠. 보다 빠르게 호흡을 맞춰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있으니까요.
그래서인지 비전공자들은 학점은행제 등의 교육 과정을 이수하거나 관련 아카데미를 등록해서라도 현장 경험을 쌓기를 바라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또 현업 종사자들과의 접점을 통해 취업의 기회를 노려보려는 것이죠. 과거의 저처럼요.
하지만 관련 교육기관이 모든 수강생들의 취업을 다 책임져줄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현직자들이 강의에 나선다 해도 개인을 피력할 수 있는 기회도 그리 많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결국 본인이 얼마나 부지런히, 적극적으로 다양한 경험을 쌓기 위해 노력하는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사소한 업무라 해도 일단 시작해 현장의 분위기를 익히고, 현업 종사자들과의 관계 형성을 시작하는 것이 필요해요.
특히 공연기획자의 업무 범위는 상당히 넓습니다. 하나의 계획을 수립하는 것에서 끝이 아닙니다. 무형의 아이디어를 콘텐츠화해 완성된 하나의 이야기로 무대 위에 선보이고, 그것을 마무리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조직의 규모에 따라 각각의 업무가 세분화되어 담당자가 따로 배정되는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다른 성격의 업무를 혼자 도맡아 진행해야 하는 경우도 꽤 많습니다. 없는 제작비를 쪼개고 쪼개다 보면, 결국 인건비를 줄여야 하니까요.
이 말인즉슨, 투입되는 인력을 줄여 소수의 인원이 여러 업무를 동시에 추진해야 하는데, 결국 멀티플레이어가 되어야 하는 상황인 것입니다. 사실, 이런 인재를 바라는 대표들이 꽤 많이 있습니다.
물론 하나의 분야를 깊이 파고들어 전문성을 갖는 것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아직은 열악한 공연계 현실을 감안해 당장에 내가 하고 싶은 일보다는, 그들(조직)의 입장에서 원하는 인재상이 될 수 있도록 다방면에서 장점과 끼를 어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 이유로 저는 공연계 입문을 바라는 이들에게 전공 유무 상관없이 언어 관련 분야를 미리미리 준비해 두라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언어 능력이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다양한 문학작품을 접할 수 있어 식견을 넓힐 수 있고,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모든 것이 콘텐츠 기획 시에 경쟁력이 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답니다.
또 K-콘텐츠의 영향력이 글로벌화되고 있습니다. 해외 투어 또는 라이선스 관련한 업무도 상당히 늘고 있고요. 이에 영어는 기본, 중국어 등의 제2외국어를 잘 익혀 두기를 바라는 마음이에요.
몇 년 전부터 중국 공연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거대 자본을 바탕으로 막강한 물량 공세를 펼치는 중이죠. 중국 공연 시장에서 언제 '내 능력'을 필요로 할지 모를 일입니다.
또한 기획자는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해 자신의 생각을 효과적으로 표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논리적인 글쓰기 능력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다양한 언어 구사력을 갖추고, 논리적인 글쓰기가 가능하다면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훨씬 더 많아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리고 평소에 글 쓰는 연습을 많이 해두기를 바랍니다. 문득문득 떠오르는 생각들을 간단하게라도 메모해 두는 습관, 그리고 평소에 책을 읽거나, 일상의 대화 속에서 귀에 꽂히는 좋은 표현들이나 예쁜 문구들이 있다면, 그냥 흘러가게 놔두지 말고 꼭 기록해 두세요.
블로그나 SNS 운영을 좀 해보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운영을 하다 보면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에 반응하는지,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에 자연스럽게 눈을 뜨게 될 테니까요.
자신의 이야기든, 관심 분야의 이야기든 꾸준한 노출을 위해서는 이미지나 문구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갖게 되는데요, "콘텐츠 기획"이 별건가요. 거기서부터 시작입니다.
대중과 함께 자신의 생각을 나누고, 가치를 전달하기 위해 애쓰다 보면 시대의 트렌드를 알게 되고, 거기에서 '나'를 더 돋보이기 위한 방법들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게 되죠. 그런 과정 속에서 기획적 사고를 기를 수 있습니다.
공연은 정서에 호소하는 예술입니다. 무대 위에 펼치는 스토리텔링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위한 작업이죠. 그러니 대중의 마음에 닿아 가치가 생길 수 있는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지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럼, 이제 마무리 할게요!
공연기획자를 꿈꾸는 수험생은 대학 전공 선택 시, 너무 공연 관련 학과로만 선택의 범위를 제한할 필요 없습니다. 물론 공연 관련 학과에 가는 것도 좋은 선택입니다.
하지만 현재 성적 등과 관련하여 그게 여의치 않다면 너무 걱정하거나 스트레스 받을 필요 없다는 얘기에요. 관련 전공자가 아니어도 공연예술계에서 충분히 일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현재 비전공으로 공연계 입문을 준비하고 있다면 일단 경험을 많이 쌓아두길 바랍니다. 이왕이면 적은 금액이라도 페이를 받고 일할 수 있는 곳이라면 더 좋습니다. 경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이요.
공연계 관련 일자리는 예술경영지원센터(https://www.gokams.or.kr/01_news/job_list_new.aspx) 또는 오티알(https://otr.co.kr/job/)에 가장 많이 올라오니 참고하길 바랍니다.
고군분투하며 막막했던 시간이 제게도 있습니다.
비전공자로 인턴을 거쳐 한 작품을 총괄하기까지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남몰래 이불킥!도 참 많이 했네요.
하지만 직접 부딪히며 익힌 경험들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자산이 되었습니다.
공연기획 비전공자분들과 인연을 맺고,
이제 막 첫발을 내딛는 지금, 이 순간을 응원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계속해서 꿈을 꾸며, 자신의 가치를 찾아가실 수 있도록
곁에서 다정한 멘토가 되어드리고 싶습니다. :)
- 콘서트, 체험극, 넌버벌 퍼포먼스, 연극, 뮤지컬 장르 두루 참여.
- 기획/제작/홍보마케팅/국가지원사업 등 다양한 업무 담당.
- 극장 하우스 관리 및 관객 응대, 지방/해외 투어 다수 경험.
•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 <춘천거기> <터미널>
• 넌버벌 퍼포먼스 <점프> <브레이크아웃> <비밥> <플라잉>
• 가족극 <바투바투> <또채비놀음놀이>
• 콘서트 <미술관 옆 동물원> <피아노의 숲> 외 참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