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에디터 이야기] 03.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많으시다구요?
세 번째 이야기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많으시다구요?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많으시다구요?
출판 종사자 중에 편집자들은 대개 이런 사람들이다. 또 이런 사람들이 편집자가 된다.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책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
-언어를 다루는 일에 소질과 관심이 있는 사람
-특정 분야의 전문가로 해당 책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
-국문학과나 문예창작과 등 어문 계열 전공자
-한때 글을 좀 썼는데 작가가 되지 못한 사람
-기타 다른 이유
다양한 이유로 편집자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기본적으로 언어나 책에 관심이 있다. 그러니 전공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높고, 한때 작가를 꿈꿨던 사람도 꽤 많다. 문제는 언제나 이 ‘한때’이다. 말이나 글에 ‘한때’가 나왔을 때 현재가 행복한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예를 들어 ‘내가 한때는 총망받던 예비 작가였는데 말이지.’ 이렇게 ‘한때’로 시작한 생각의 꼬리에는 그보다 더 어두운 꼬리가 물리곤 한다.
‘언제 한 번 내 이름으로 된 책을 내나.’ ‘내가 언제까지 다른 사람의 글이나 고쳐야 하지?’ ‘이번에는 어느 공모전에 글을 내지?’ ‘내 친구 000는 이번에 또 책을 냈네?’
필자는 다행히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성격이나 능력으로 볼 때 작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22살 꽃다운 나이에 일찍이 깨달았기 때문이다. 작가를 꿈꾸는 게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A를 하고 싶은데 어쩔 수 없이 B를 해야 하면 그 일이 재미없기 때문이다. A를 사귀고 싶은데 울며 겨자 먹기로 B를 사귄다고 생각해 보면 그 마음, 짐작하기 쉬울 것이다.
과거에는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편집자이면서 작가이고, 작가이면서 편집자였다. 또 편집자이면서 작가인 사람들이 출판사의 대표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편집자인데 글을 잘 쓰고, 작가인데 편집도 잘했다. 어쨌든 책에 관해서 누구보다 전문가였고, 가난하지만 청빈한 엘리트의 대명사였다.
아직도 이 같은 풍토가 남아 있어서 편집자도 으레 글을 잘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잘 쓰면 좋다. 편집자는 원고를 바르게 고치고, 독자들에게 책을 알리기 위한 글도 써야 한다. 다행히 이 둘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해도, 어차피 글을 읽어야 하는 직업이므로 편집자와 글은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화랑의 큐레이터가 그림을 보는 능력 외에 그림도 잘 그릴 줄 알아야 할까? 그림을 그릴 줄 안다고 안 될 것은 없지만, 그림을 꼭 그릴 줄 알아야 한다는 조건이 붙으면 큐레이터에 입문하려는 사람이 절반 이상으로 줄어들 것이다.
편집자도 이제 다르게 생각해야 한다. 글과 가까운 직업이기는 하지만 꼭 글을 잘 써야 하는 직업은 아니라고! 글을 고치고 다듬는 일을 하지만, 작가의 글을 무작정 고치는 게 주목적은 아니라고! 편집자가 글을 잘 고쳤다고 그 책이 편집자의 책이 되는 것도 아니고, 잘 고쳐 보겠다는 선의였어도 그것을 잘못했을 때 작가만의 색깔에 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요즘은 좋은 문장과 구조가 인기 있는 시대가 아니다.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에 초점이 더 가 있기에 ‘글’이나 ‘문장’ 자체에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다. 사실 그럴 시간도 없다. 사람들이 공감하는 글이나 콘텐츠 찾기에 더 바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뜻이 전혀 통하지 않는 글까지 수용된다는 건 아니니 오해는 말자.
앞에서 말한 7가지는 편집자가 되려는 조건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우선시 되어야 하는 조건이 하나 있다.
다른 사람의 생각에 관심이 있는 사람
이 한 가지 조건만 내건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편집자라는 직업에 관심을 가질까 싶어 급조한 것은 절대 아니니 안심하시라. 위 7가지가 능력이나 기술에 관련된 것이라면,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은 태도와 마인드의 문제이다. 그래서 7가지에는 해당되는데 이 한 가지에 해당되지 않으면 그 일을 하는 동안 재미를 느끼기가 어렵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생각에 관심은 많은데, 7가지에 해당되는 게 없는 것은 괜찮다. 이를 해결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고, 보수 교육 기관도 많이 있다.
모든 직업이 그러하듯 태도와 자세를 어떻게 시작하느냐에 따라 그 직업으로 살아가는 시간이 1년이든 10년이든, 평생이든 즐거울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생각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장에서 더 자세히 해보기로 하겠다.
“당신은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정말 많다죠? 그래서 내가 당신을 고른 거예요.”
전문/특수
yujin kim
멘토
유어스토리 · 기획편집
대학과 대학원에서 문학을 공부했고, 현재는 책 만드는 일을 한다.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과 여러 형태의 독서 모임을 열면서 독서상담치료를 공부하고 있다. 도서관, 학교, 기관 등에서 누구나 갖고 있는 자기만의 이야기와 ‘할 말’을 찾아주는 글쓰기 강의도 하고 있다. 『나를 가장 나답게』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등을 썼다.
남들을 향해 글을 쓰고 말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기에, 그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에 대한 남다른 존경과 애정으로 일하고 있다. 이 일을 하며 깨달은 한 문장은 “모두 좋아하는 것을 쓰고 있더라.”. 지식을 드러내거나 남을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좋아하는 것을 표현하고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하기 위해 말과 글을 찾을 때야말로 가장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언어가 태어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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