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잇다를 통해 멘토님을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남긴 문화예술 활동, 발자취 등에 관심이 많아 인류학을 전공하고 싶었지만 성적 상의 문제로 역사학을 전공했습니다.
경제학을 복수전공 한 덕에 3개월 동안 리서치 회사에 다녔지만 제가 꿈꿨던 직무가 아니라 관뒀습니다. 공기업에도 도전했지만 실패했습니다. 복지나 안정성만 좇으며 준비하다 보니 그 자리를 절실히 원하는 경쟁자들보다 당연히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작년에 한 박물관에서 인턴을 하면서 박물관에서 일하고 싶다는 저의 바람이 이루어졌지만 높은 진입 장벽에 좌절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폐쇄적인 기업 문화, 사업 운영에 대한 낮은 독립성, 박사 이상의 높은 학력 요구, 문화 소비의 한정성 등의 요인으로 이쪽 일에 한계를 느꼈습니다.
그러다 박물관 문화교류홍보과 재직 당시 문화행사 지원을 나가면서 문화 행정에 관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자연스레 비슷한 일을 수행하는 대표 기관인 아르코, 아르떼, 서울문화재단, 경기문화재단 등의 채용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잠깐이라도 관련 일을 하고 싶어 단기계약직 등에 지원하고 싶었지만, 경력이나 관련 학위가 없는 저는 이조차 불가능했습니다. 두말할 나위 없이 문화행정기관 정규직 자리는 떨어지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석사학위를 따야 할지 아니면 전인교육이 발달한 독일에 워킹 홀리데이를 가서 어학 공부를 한 뒤 거기서 학위를 따야 할지 고민입니다. 무엇을 해야 제가 원하는 분야에서 일할 수 있을까요.
저는 그저 문화예술을 통해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행복하게 만들고 싶은데 그게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멘토님. 어떻게 하면 제 꿈에 한 발자국이라도 가까워질 수 있을까요. 무엇이든 알려주시면 정말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 멘토의 답변
문화행정기관, 전반적으로 고학력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질문이네요. 크게 보자면, 세 가지 길이 있어 보입니다. 그중 두 가지는 멘티님이 이야기한 것처럼 유학을 가거나 대학원을 가는 길입니다. 세 번째는 현장에 있는 문화 예술단체에서 역량을 습득하는 방법입니다.
제 사례로 설명하는 게 더 수월할 것 같네요. 저는 예술경영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특수대학원에 다니며 예술단체에서 문화정책 일을 맡았죠. 보통 기획사나 단체에서 종사하는 분들은 경력개발을 위해 대학원을 많이들 선택하더라고요.
제가 대학원을 진학 때까지만 해도 예술경영이나 문화 행정 영역은 물론 문화재단 자체가 막 출발하던 시기라 멘티님 같은 고민을 많이 하진 않았습니다. 뭐,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죠.
저는 운 좋게도 전국 규모의 단체에서 활동하며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대학원 과정에서 다양한 지식을 쌓거나 공부하는 즐거움을 충분히 누린 것 같지는 않아요.
다만 동료 학생들과 해당 분야 이야기를 나누고 때때로 일 관련 도움을 주고받았던 일은 또렷하게 남아있습니다. 교수님들과의 관계도 이후 여러 가지 보탬이 되었죠. 대학원이 졸업장과 네트워크를 위해 존재한다는 게 실감 났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함께 공부한 사람들 중에는 맹렬하게 학습하고 박사과정을 밟은 사람도 있고, 치열하게 파고들어 해당 분야로 기어이 진출한 분도 있으니 제 경우에만 국한해서 이야기할 사안은 아닌 것 같습니다.
팀장급이 아닌 이상 석사 학위를 요구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만, 요즘은 학력이 전반적으로 높은 상황이라 석사학위 이상의 지원자가 많으면 아무래도 선택받기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학위과정을 밟는 게 유리할 거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차라리 그 돈으로 다른 활동을 하면 본인도 즐겁고 더 가치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사실 높은 학비나 걸리는 시간 등 기회비용이 만만찮거든요.
그러나 현실을 따져보면 이런 말도 무책임한 조언이 될 수 있어 주저하게 됩니다. 아주 소수의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선택을 정답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도 때론 폭력적일 수 있으니까요.
유학파를 둘러싼 시선은 복잡합니다. 기대감과 우려가 혼재하죠. 문화 행정이나 예술 관련 정책이 한국보다 진전된 곳에서 체득해온 지식에 대한 기대감은 분명 존재합니다.
동시에 외국 사례만 알고 국내 현실은 잘 모르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존재합니다. 현장 경험 여부도 중요한 쟁점으로 통합니다.
능력을 평가하는 결정적인 요소는 ‘경력’
유학을 선택하든, 대학원을 선택하든 관련 단체에서 활동해 볼 것을 권합니다. 언급하신 기관들은 제가 일하고 있는 기초지자체 문화재단과 조금 결이 다르기는 하지만, 제가 알기로는 대개 경력자들을 선호합니다.
물론 해당 분야의 전공 여부를 확인하지만 지원자의 능력을 평가하는 결정적인 요소가 경력에 있다고 보는 거죠.
기관의 단기직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단기 일자리가 정규인력이 되기 위한 과정으로 간주하는 추세인데요, 두 가지 측면을 고려해봐야 합니다.
우선, 단기적으로 활동한 사람에 대한 신뢰도 문제가 있을 수 있어요. 이 사람이 책임 있는 일도 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생길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단기직으로 일한 경력이 시스템을 이해하고 적응하는 데 유리한 조건인 건 틀림없습니다.
경력 평가도 어디에서 일했느냐에 따라 갈립니다. 크게 문화 관련 기관이냐 혹은 단체/기획사 등에서 일한 경우로 나뉘겠죠. 그런데 이것도 담당자나 면접관마다 가치관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기관에서 일한 경력을 중요하게 여기는 조금은 보수적인 이들이 있는가 하면, 단체나 기획사에서 일한 경력을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이들도 있다는 거죠.
경력을 쌓은 기관이나 단체의 지명도도 영향을 미치겠지만,더욱 중요한 것은 어떤 업무를 맡아서 했느냐입니다. 같은 기관 안에서도 면접관의 기준이 다르게 종종 적용될 수도 있습니다. 당장 제가 일하는 곳에서도 저와 다른 분들 사이에 견해차가 드러날 때가 있으니까요.
제가 여태까지 말한 것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문화 기관의 인력선발 장벽을 넘기 위해 학력 자본이 필요한 측면이 있다.
2.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단체 등에서 활동하며 자신을 훈련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물론 전시나 공연 등 끊임없이 예술 영역에 관심 가지고 꾸준히 공부하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문화기관이 이 영역에서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자리이다 보니 경쟁이 치열하고, 과잉 경쟁이 그만큼의 과잉 스펙을 요구하는 것 같아 업계 종사자로서 좀 씁쓸합니다.
제 이야기를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지 말고, 차분하게 준비하되 주변에 조언을 구할 분이 있으면 주저 말고 도움을 청하세요. 사소한 인연이 더 많은 기회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점 기억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