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멘토님의 에세이 잘 읽어봤습니다. 요즘 직무강의도 들어보고 인터넷으로 정보도 알아보는데, 듣는 것과 현실은 많이 다르다는 걸 다시 깨닫고 있습니다. 그래도 기획 직무에 관심이 가서 이렇게 질문 드립니다.
Ⓒsasirin pamai 1. 기획직무의 업무 프로세스가 궁금합니다. 막연히 내년도 계획 수립, 이슈 조사 및 분석, 회의체 운영 정도로 알고 있는데 이 외에도 어떤 업무를 하는지 궁금합니다.
2. 1년 차/5년 차 일 때 직무와 과업은 어떻게 되는지, 커리어 패스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고 싶습니다. 기획직무로 일할 때 어떤 역량이 가장 중요한지도 알고 싶습니다.
3. 기획 직무 내부에도 여러 팀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럼 로테이션 근무를 하나요? 또한, 저는 외교학을 전공했고 회계나 재무를 배운 적이 없는데, 지원할 때 불리할까요? 경영/통계/회계 전공이 아니라도 괜찮다는 말을 들었는데 현직자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4. 엑셀을 잘 다루는 게 중요하다고들 하는데, OA 자격증을 갖춰야 할까요?
바쁘실 텐데 질문이 많아 죄송합니다. 시간 내서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Ray Ryu 멘토의 답변
안녕하세요. 질문 잘 읽어보았습니다. 토익 990점에 오픽 AL을 취득했다니, 멘티님은 뛰어난 스펙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기획을 하려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기획의 종류는 다양합니다. 신제품 기획이나 신사업 기획, 부서 간 업무 효율화를 위한 TF 진행, 원가절감, 부서 비용 효율화 방안 연구, M&A시 적절한 기업가치 평가 및 인수가격 산정 등 타 부서(개발/구매/마케팅/영업/회계/금융/혁신/IT 부서 등)가 전담할 수 없는 일을 전부 추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본격적으로 질문에 대해 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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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직무의 업무 범위
기획직무는 기본적으로 주간/월간 보고자료(영업현황 및 실적) 작성, 9월부터는 다음 연도 사업계획 수립, 각종 회의 운영 등의 업무를 합니다.
그 외에는 특정 부서에 귀속해서 맡길 수 없는 모든 업무를 다루기에 추가로 어떤 업무를 한다고 단정해서 말하기 어렵지만, 제 경우 최근 IT 그룹과 협업해 손익관 시스템을 새로 구축하고 있고 구매팀과는 TF를 꾸려 체계화 작업을 진행 중입니다.
기획 직무, 근거에 기반을 둔 일 처리가 중요합니다
1년 차는 보고 배우는 단계입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주 단위 또는 월단위로 돌리는 보고 업무 정도일 겁니다.
2년차부터 본격적으로 업무 범위가 확장되는데, 보통 숫자와 관련한 일부터 맡게 됩니다. 기획 직군은 시작은 저마다 다르나 그 끝은 숫자로 표현해야 하는 집단입니다.
그렇게 5년 차 정도가 되면 TF를 통해 업무 효율화 또는 신사업 기획 등을 추진하게 될 겁니다. 이때도 마찬가지로 업무를 숫자로 표현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그 효과로 2020년 몇억의 매출, 몇억의 영업이익을 거둘 예정이며 투하 자본 몇억은 2023년에 회수 가능할 것으로 판단됩니다’는 식으로 분석된 자료를 기반으로 본인의 생각을 숫자로 말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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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로 기획 일을 할 땐 확실한 근거에 기반을 둔 일 처리가 중요합니다. 어떤 질문을 받을 때, 단순히 떠오르는 생각이 아니라 정리된 생각을 근거에 기반 해서 제시해야 합니다.
또한 그 대답은 질문자가 원하는 대답이어야 합니다. 질문자가 원하는 대답을 하지 못할 경우, 근거가 납득할만하지 않다면 일 못하는 사람으로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그 다음 중요한 건 인간관계입니다. 인간관계는 스스로가 터득해야 하는 영역이라 제가 따로 조언하기 어렵지만, 되도록 먼저 나서거나 상대를 배려하면 대체로 좋은 평가를 받는 것 같습니다.
이런 행동은 친구들과의 술자리에도 똑같이 적용되죠. 친구들의 빈 잔을 채워주고, 옆 테이블과 시비가 붙었을 때 웃으며 원만하게 갈등을 해결하면 친구들 사이에서 좋은 친구로 인식되겠죠. 사회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전공 무관이지만 숫자에 강해야 합니다
기획 직무는 전공 무관으로, 누구나 지원할 수 있습니다. 다만 숫자를 읽는 힘이 없고 회계를 모르는 사람이 기획 부서에서 2년 이상 자리를 유지하는 경우를 거의 못 봤습니다. 다른 회사나 다른 부서로 가더군요.
멘티님이 차장 2명, 과장 2명, 대리 2명, 사원 2명으로 구성된 팀의 팀장이라고 가정해보세요. 대리나 사원 중 한명이 숫자와 회계에 미숙해서 회의 내용도 제대로 이해 못 하고 일 처리가 늦는다면 해당 팀원에게 타 부서에서 업무를 수행 하는 건 어떨지 술자리에서 한 번쯤은 권하지 않을까요? 팀과 당사자를 위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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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계산적인 관점이지만, 부서에서 지출하는 비용 대비 최대의 효율을 이끌어내야 성과급을 받을 수 있을 텐데 비용을 축내는 인원이 있다면 그리 좋지 않겠죠.
로테이션 업무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부서 간 로테이션을 진행하되, 부서 내 업무는 웬만하면 공유해서 처리합니다. 만약 로테이션하게 된다면 훌륭한 사람은 서로 안 주려고 할 테죠. 로테이션 도는 인원이 꼭 훌륭한 인재는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앞서 말했지만, 기획직무를 채용할 때 전공 무관이라고 명시합니다. 외교학을 전공했다고 낙담할 필요는 없습니다. 경영/경제와 무관한 전공자도 회의록 회의체, 각종 보고자료 취합 등의 잡무에 당장 투입될 수는 있겠죠. 하지만 해당 부서에서 오래 근무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멘티님은 일단 작은 기회라도 잡으세요. 그리고 회사에서 최대한 숫자 감각을 익히고 배우려 노력한다면 추후 우수한 직원이라고 칭찬받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정말 원하는 회사에서 첫 사회생활을 하면 기획부서 내에서 숫자를 모르는 사람으로 낙인찍힐 수도 있으니 잘 판단해야 해요.
엑셀, 자격증이 아닌 실무 능력으로 증명해야 합니다
엑셀을 잘 다루면 매우 유리합니다. 매크로까지 가능하다면 더할 나위 없죠. 참고로 저는 OA 자격증은 없습니다. 토익도 이제 700점이나 나올까 의문이네요. 다만 업무상 영어는 가능합니다. 현직자들은 ‘토익은 실력이라기보단 연습이고, 스킬이다’고 생각하는 추세입니다.
사실 회사에서 제가 가장 게으릅니다. 매일 반복하는 일에 똑같이 시간을 뺏기는 것을 싫어하고 액셀 작업이나 PPT 때문에 퇴근 시간이 늦어지는 것도 엄청 싫어합니다.
ⒸAndrey_Popov
그런 게으름 때문에 엑셀을 천천히 익힌 덕에 7년이 지난 지금 똑같이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다른 사람들보다 그리고 회사의 그 누구보다 엑셀을 잘합니다.
단순히 자격증만으로는 일할 수 없어요. 제가 면접을 볼 때 ‘자격증이 없는데 엑셀은 잘하나, 투자 검토는 무엇은 해봤나’ 등의 질문을 받으면 다음과 같이 답합니다.
“회사에서 자격증을 보유한 엑셀 실력자와 저에게 당장 같은 일을 시켜보세요. 이 회사의 재무/원가 팀에서 가장 실력 있는 인원과 신규 사업 투자 검토 문제를 동시에 풀어보게 해주세요.”라고요.
그렇게 지금 회사로 이직했어요. 굳이 자격증은 없지만, 업무를 할 때 이렇게 엑셀을 사용했고 몇 년을 사용했다는 식으로 답변하지는 않았어요.
회사에서 단번에 무언가를 이루는 건 어렵습니다. 힘든 일을 경험하고, 울면서 야근도 해보고, 억울한 상황에 놓여도 보면서 세월을 보내며 내공이 쌓이는 거죠. 어려운 일을 결국 풀어내서 기뻐하면서요.
그렇게 시간을 치열하게 보내다 보면 5년이 지난 시점에 그저 회사에 출퇴근하기에 바쁜 다른 999명의 사람보다 훨씬 앞서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