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하지 못한 것이 실력, 노력, 자소서의 부족이라고 그동안 판단해왔으나 최근에는 제가 하고 싶은 직무를 정확히 결정하지 못해서 탈락한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됐습니다.
Ⓒoluwaseun duncan
졸업 직후에는 단순하게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되고 싶다고만 생각했는데, 알고리즘 문제를 푸는 사이트의 코딩 정도만 해본 제가 소프트웨어 개발을 할 수 있을지 부쩍 불안감이 생겼어요.
여러 자료와 이야기를 접하다 보니 점점 생각이 흔들려서 이제는 중심을 잡지 못할 정도로 자신감을 잃을 것 같아 멘토님께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1. 소프트웨어 업계 안에서도 SI 회사를 구체적으로 알고 싶습니다. SI 회사가 컴퓨터공학과 출신 개발자들의 무덤이라는 이야기도 있던데 어떤가요?
2. 소프트웨어 분야로 진로를 정하고 싶은데 어떤 식으로 준비해야 좋을까요? 가능하다면 멘토님의 취준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아직 갈피를 못 잡아서 요즘 생각이 많습니다. 멘토님의 소중한 조언 기다리겠습니다.
💬 Duk Cho 멘토의 답변
기술보다 기초를 탄탄히
안녕하세요. SW 쪽으로 진로를 결정한 학생들 대부분이 아마 멘티님처럼 고민하고 있을 거예요. ‘내가 거대한 프로젝트를 맡아서 할 수 있을까? 지금 내 실력으로도 취업이 가능할까?’하는 식으로요.
이런 생각을 계속 가지다 보면, ‘무엇을 하고 싶다’보다는 ‘나는 이런 프로젝트를 했으니까 이런 것을 할 수 있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됩니다.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기보다 본인이 가지고 있는 기술을 기반으로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만을 찾게 된다는 거죠.
사설이 길었는데, 결국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멘티님이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SW 개발을 처음부터 완벽하게 알고 시작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제 생각에는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아요.
Ⓒrawpixe
왜냐하면 SW 개발은 하나의 거대한 문제를 잘게 쪼개서 해결해나가는 과정이거든요. 개발자는 처음부터 답을 알고 시작하는 것이 아니고, 문제들을 차근차근 해결하면서 발전하는 겁니다.
어떻게 하면 좀 더 효율적이면서 유연하고 우아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하는 거죠. 단순히 언어를 가지고 코드를 찍어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이런 문제들을 풀어나가면서 또다시 새로운 문제에 직면하게 되고, 이 과정을 거쳐 개발자는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어요.
따라서 지금 당장 본인이 가진 기술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생각에 위축될 필요가 전혀 없어요. 나는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추고 있으니까 배우기만 하면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있고, 언어는 단지 도구일 뿐이라는 자신감을 가지는 것이 중요한 거죠.
실제로 기업에서도 신입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대학생 때 배울 수 있는 학문(자료구조, 운영체제, 데이터베이스, 네트워크)을 중심으로 기초를 탄탄하게 다진 사람을 원할 뿐이에요.
특히 요즘같이 신기술이 범람하는 시대에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주변에서 누가 이런저런 기술을 쓸 수 있다는 식의 이야기에 현혹돼서 신기술에 너무 매달리지 마세요. 탄탄한 기초 지식과 문제 해결 능력만 있다면, 새로운 기술은 빠르게 학습할 수 있으니까요.
ⒸViktor Hanacek
SI 생태계를 고려해서 지원하세요
SI 회사를 설명하기 전에 SW 업계의 생태계를 간단하게 정리해볼게요.
IT 회사(네이버, 카카오 등)
게임 회사(엔씨소프트, 넥슨 등)
SI 회사(삼성 SDS, LG CNS, SK C&C, 한화 S&C 등)
솔루션 회사(제니퍼소프트, 티맥스, 마이다스 IT 등)
보안 회사(안랩, 알약 등)
몇 가지 회사 종류가 더 있을 수 있지만, 대략적으로 보자면 이렇게 나열할 수 있습니다. 열거된 모든 회사에서는 개발 업무를 해요. 이 중에서도 질문해주신 SI 회사들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1. 국가에서 소프트웨어 사업을 시작한다. 2. 국내 SI 업계의 큰 회사들이 해당 사업을 수주받는다. 3. 일정 부분은 큰 회사가 자체개발하고, 나머지는 외주 하청을 맡긴다. 4. 사업을 수주받은 하청업체(대부분 중소기업)에서는 큰 회사처럼 일정 부분은 자체개발하고, 나머지는 외주 하청을 맡긴다.
이 중에서 3번과 4번이 반복되다 보면, 어느 순간 흔히 인력업체라고 부르는 곳에서 사업을 수주받게 되고, 이 회사에 개발자가 파견됩니다.
이렇게 되면 최말단의 파견 개발자에게 일이 올 때까지 1년짜리 프로젝트가 3개월밖에 남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그리고 처음에 사업 비용이 5억이었던 것이 하청업체에 오는 동안 5000만 원이 되기도 하고요. 즉, 가장 하위에 있는 개발자는 돈도 적게 받는데, 시간에 쫓기면서 밤샘 야근을 하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거죠.
Ⓒexpect best
모든 SI 회사들이 위와 같은 과정을 거치지는 않겠지만, 저렇게 기형적인 국내 SI 생태계를 보니 개발자 지망생들이 SI 회사를 최대한 피했으면 좋겠다는 것이 제 솔직한 마음입니다.
물론 삼성 SDS, LG CNS, SK C&C 같은 큰 회사에 가게 되면 업무적인 스트레스는 덜 받겠지만, 여기서는 하청업체 외주관리하는 업무를 주로 하게 될 거예요. 큰 회사에서도 자체개발을 하는 일부 부서에 들어가면 그래도 괜찮을 겁니다.
따라서 멘티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SI 회사가 개발자의 무덤이라는 이야기는 위에서 3번과 4번을 반복하는 회사에 들어간 경우에 해당됩니다. 아예 SI 회사 지원을 지양하라는 말은 아니고, 업계 상황을 잘 보고 업무 환경이 어떨지 판단할 필요가 있다는 거예요.
세부 분야를 구체적으로 좁혀보세요
아직 희망 분야를 정확하게 결정하지 못한 멘티님께 특별히 어떤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 SW 분야는 카테고리가 다양하고, 복잡하거든요. 웹, 애플리케이션, 솔루션, 마이닝, 데이터 분석, 데이터/영상/음성 처리, 임베디드 등 나열하면 할수록 끝이 없어요.
따라서 소프트웨어로 진로를 정해야겠다고 막연하게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을 해보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좁혀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이후에는 기업 규모도 선택할 수 있겠죠.
이런 선택과는 별개로 위에서 강조한 것처럼 학부 시절에 배웠던 자료구조, 운영체제, 데이터베이스, 네트워크 등의 기초 과목들은 꾸준히 공부해서 잘 다져놓으셔야 합니다.
ⒸStock-Asso
저는 이렇게 준비했습니다
제 취준 스토리는 대학교 3학년을 마치고 1년간 휴학했던 시절부터 출발합니다. 그때 대외 활동과 개인 프로젝트, 기초교과목 공부를 꾸준히 하면서 취업을 준비했었죠.
특히 기초과목 공부는 기술면접을 대비해서 했던 만큼 단순 암기로 끝내지 않았습니다. 어느 정도 기초지식을 쌓은 후에는 인터넷에서 기술면접 리스트를 찾아서 자연스럽게 대답할 수 있을 때까지 공부와 스터디를 했었죠.
그렇게 시간이 흘러서 복학하기 한 두 달 전부터는 포트폴리오를 정리하고, 기업조사와 함께 자소서를 작성했습니다. 이때 인턴을 포함해서 약 60여 개의 기업에 서류를 냈어요.
하지만 서류를 내는 족족 떨어져서 불안감과 스트레스가 심해졌습니다. ‘그냥 포기할까? 아니면 대학원으로 도망갈까?’ 하는 정말 여러 가지 생각을 했어요. 많은 취준생이 여러 번 불합격의 좌절을 맛보고 본인에게 실망하죠. 하지만 저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끈기 있게 자소서를 작성했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정말 신기하게도 대기업은 모두 떨어졌고, 반대로 IT 기업은 서류 전형에서 대부분 합격했었죠. 그러던 중 S사의 서류 전형과 인적성에 통과했고, 마음을 비우고 면접을 치렀는데 운 좋게 최종합격하게 됐습니다.
멘티님 역시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계실 것 같습니다. 취업은 아무리 많이 떨어지더라도 단 한 군데만 통과하면 해결됩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셔서 원하시는 바 이루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