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멘토님! 곧 2학년이 되는 외국어 고등학교 학생입니다. 생각해보면 저처럼 장래희망이 자주 바뀐 친구도 없는 것 같아요.
어릴 땐 국제무대에서 우리나라를 알리는 외교관을 꿈꿨는데 고등학생이 되고 막상 국제회의나 토론을 준비하며 하나도 행복하지 않단 걸 깨달았어요. 영어나 제2외국어를 모국어처럼 사용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주눅도 들었고요. 몸이 아플 정도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교사로 꿈을 바꿔 교육 봉사도 꾸준히 다니고 죽기 살기로 준비해서 교육학 경시대회에서 수상도 했어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억지로 나는 교사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그런데 멘토님,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나운서'라는 직업이 제가 어렸을 때부터 진심으로 원하는 직업이었어요. 아나운서라는 단어만 들어도 설레고 제가 아나운서가 되었다는 상상만 해도 너무너무 행복할 정도로요.
한편으로는 제가 이 직업을 두려워하고 있더라고요. 초, 중, 고등학교 때 한 번도 빠짐없이 방송부 아나운서 지원서를 썼다가 내보지도 못했어요. 나는 안 될거란 강박관념에 갇혀있었던 것 같아요. 진심으로 하고 싶었는데 지금 정말 후회해요.
고민 끝에 멘토님을 찾게 되었습니다. 아나운서가 허황된 꿈은 아닌지,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지 궁금해요.
멘토님은 어떻게 해서 아나운서가 되셨나요? 아나운서가 되어 가장 좋았던 점과 후회되는 점들을 여쭙고 싶습니다. 진짜 제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소중한 시간 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멘토의 답변
마음에 품은 꿈이 있다면 일단 해보자
안녕하세요. 멘티님 답변을 정독했어요. 일단 질문에서 달변인 것이 느껴집니다. 말을 못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글에서 느껴져요. 달리 잘난 척을 하지 않아도, 유별난 미사여구를 사용하지 않아도 타고난 말솜씨는 두세 문장 안에 드러나는 법이잖아요.
멘티님은 말하기를 편안하게 생각하고,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 잘하는 성격이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봅니다. 얼굴 한 번 보지 못했는데 함부로 성격에 대해 언급해서 미안해요. 경솔해 보였을지 모르지만, 달변이나 낯선 사람들 앞에서 편하게 말하는 것이 아나운서에게는 정말로 중요한 요건이라 언급을 안 할 수가 없었어요.
일단 이야기 해 준 고민, 너무 공감돼요. 사실은 아나운서를 꿈꾸는 모든 사람이 똑같은 고민을 한답니다. 저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대학교 4학년이 되어서야 준비를 시작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멘토님. 고민하지 마세요. 나와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길 바라요. 지금 내 앞에 있다면 손을 잡고 이야기 할 텐데. 제가 이렇게 이야기해도 아마 수차례 흔들리고 갈등하게 될 겁니다. 하지만, 다시 한번 마음을 담아 말하건대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해보길 권합니다.
'현실적으로 가능한지'를 물었지만, 제가 답을 드릴 수 없습니다. 얼굴과 목소리, 성격을 보고 듣고 겪지 않으면 절대로 판단할 수가 없는 직업이기 때문이에요.
아나운서, 순발력과 내공이 중요해요
최대한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아나운서 시험에서 보는 항목과 제가 뭘 준비했는지 함께 따져볼게요.
1. 서류심사: 학점, 토익, 경력을 봅니다. 학점은 평점 3.3 이상, 토익은 800점 이상. 높은 점수는 아닙니다. 점수보다는 다양한 경험과 끼를 보는 직종이죠.
이외에 봉사활동, 토론대회 수상, 명예기자단 활동, 학생회 활동, 대학교 축제 사회자, 다양한 아르바이트 경력 등을 쌓기는 했지만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다양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내공’을 보기 때문에 다양한 경험 쌓기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 카메라테스트: 카메라 앞에서 뉴스 원고를 읽는 심사입니다.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옷 색깔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뉴스를 읽는 스킬을 기르기 위해 보통 학원 하나정도는 다닙니다. 학원 졸업 후 친구들과 공부모임을 만들어서 뉴스 읽기를 계속 연습하면 돼요.
3. 필기시험: 상식, 논술 시험에 대비해야 합니다. 보통 신문을 많이 읽죠. 상식 스터디 뿐만 아니라 논술, 작문 역시 스터디로 연습합니다. 다 같이 모여서 시간 내에 글 쓰는 연습을 한 다음 쓴 글을 돌려 읽으면서 첨삭하고 퇴고하죠.
4. 면접: 이력서에 첨부한 자기소개를 바탕으로 다양한 질문이 쏟아져 나옵니다. 저는 예상 질문 30개 정도를 뽑아갔어요. 예를 들어, 어떠한 한 경험이 있는데 그 경험을 통해 배운 게 뭔가? 이런 식으로요.
면접은 재치와 순발력이기 때문에 준비하는 게 사실 큰 의미는 없어요. 질문의 폭이 너무 넓어서 대비하기 어렵죠. 시사 관련 질문이 나오기도 하고, 얼굴 지적이 나오기도 하거든요. 아까 말한 내공이 여기서 발휘되는 겁니다. 돌발질문이 많아서 본성이 숨김없이 드러나게 됩니다. 책을 많이 읽어두면 좋겠죠.
추상적인 이야기지만 평소에 주변을 사로잡을 수 있는 매력을 키우세요. 최종면접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임원분들이 면접에 들어온다는 점이 다르죠.
정리하자면, 학점관리, 토익점수 따기, 시사상식 스터디, 신문 스터디, 논작문 스터디, 아나운서학원 이수 이후 뉴스리딩 스터디가 되겠네요. 모든 아나운서 시험이 이런 형태라는 건 아니고 대략 이렇다는 것입니다. 면접 방식은 아주 다양해서 때때로 즉석에서 쇼를 진행 해보라고 하기도 하고, 토론을 시키거나 영어면접이 추가되기도 합니다.
최대한 구체적으로 적고자 애썼는데 도움이 됐는지 모르겠어요. 만약 대학교 때에도 같은 꿈을 꾸고 있다면, 반드시 하나하나 실천하시기 바라요. 솔직히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는 것 같죠? 다양한 경험 쌓기는 지금도 할 수 있어요. 사소한 경험보다는 특이하고 임팩트있는 한 가지 경험을 해보세요.
논술 작문 시험대비나 독서도 당장 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이 둘을 엮어서 함께 하는 게 지름길입니다. 피천득, 김연수와 같이 유명한 작가의 수필집을 읽어보고 마음에 드는 구절들은 한 번씩 일기장에 적어보세요. 분량을 늘려가면서 하나의 글을 다 따라 써보는 것도 좋아요. 실제로 필사는 작가 지망생들이 쓰는 가장 기본적이고 전통적인 방법이죠.
부품이 아닌 하나의 브랜드로 존중받는 직업
아나운서는 직업만족도가 굉장히 높은 편이에요. 적성에 맞으면 일이 굉장히 즐겁고요.
일상이 일상적이지 않은 것도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어요.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되면 매일 새로운 사연과 새로운 음악을 만나게 되지요. 뉴스를 가장 최전방에서 전달하기 때문에 매일 새로운 뉴스를 접하기도 하고요.
사내 위계질서도 다른 직종에 비해 유연한 편입니다. 임원분들도 미디어에 종사하시기에 의사소통하시는 걸 좋아하시고 젊은 마인드를 유지하고 계셔요. 복장도 자유로운 편이죠.
무엇보다도 ‘나’라는 사람이 비단 회사의 부품이 아니라, 하나의 브랜드와 개성으로 존중받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에요. 같은 일을 하더라도 누가 어떤 색깔을 내느냐에 따라 달라지니까요. 예를 들어 박선영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뉴스와 배현진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뉴스는 서로 다르잖아요.
후회한 적은 없습니다. 다만 경쟁률에 비해 처우가 훌륭하지 않다는 점은 꼭 이야기해야겠네요. 일반 대기업보다 경쟁률은 훨씬 치열한데 보수는 비슷하게 받으니까요. 하지만 내가 즐거운 일을 할 수 있다는 점과 사회적 인식을 고려해본다면 충분히 보상받는 직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멘티님의 소중한 꿈을 응원합니다. 훗날 아나운서 후배로 멘티님을 만나고 싶습니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