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멘토님. 저는 작은 회사에서 인턴을 하며 공기업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취준생입니다.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코로나 상황에서 멘토님께서 항상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Laura Davidson
저는 비상경 문과 출신에 기획 직무를 목표로 잡았는데요. 스스로 기획 직무에 맞는 사람인지 역량 평가를 해보려고 합니다. 멘토님. 기획 직무에 필요한 역량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 멘토님께서는 그 역량을 어떻게 쌓아가셨는지 여쭤볼 수 있을까요?
다시 한번 멘토님께서 안녕하시길 바랍니다!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기획 직무에 필요한 역량을 물어보셔서 제가 아는 한에서 솔직하게 답변드리겠습니다.
저는 저희 협회에서 인사 및 기획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연차로는 7년 차인데 매년 업무를 하면서 느끼는 바이지만, 기획에 필요한 가장 큰 역량을 딱 꼬집어서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제 전임자들도 그렇고, 가끔 오다가다 소통하는 다른 중/소/대/공기업/공무원 전략기획실에 계신 분들과 대화를 해봐도 '그래, 이 역량이 기획자로서는 최고로 필요한 능력이지' 말씀드릴 수 없을 것 같아요.
기획자는 올라운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날카로운 통찰력과 분석력, 설득력, 집요한 실행 능력을 디폴트 값처럼 가지고 계셔야 하고 그래야 그 자리에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다만, 공기업 취업을 준비하시는 것 같아 이쪽 업계에서 기획자로 살아남는데 가장 필요한 역량 하나를 굳이 꼽으라면 저는 '눈치'가 아닌가 싶습니다. '공(함께 공, 共)'의 언어에서 유추할 수 있듯 사회 전체의 이익을 대면하는 기업들은 이해관계자들이 상당히 많이 얽혀있습니다.
일반 사기업은 '이익 창출 극대화'라는 극명한 목표를 가지고 있지만, 공기업 또는 공무원들은 무엇을 어떻게 기획하고 의사결정을 하느냐에 따라 아군이 생길 수도 있고 적이 생길 수도 있는 것 같아요. 특히 저처럼 협회에서 근무를 하시는 기획자라면 그 스트레스는 극에 달할 수도 있습니다. '함께'를 위해 기획한 제도가 일반산업체 입장에서는 규제 강화가 되고, 정부 입장에서는 규제완화가 될 수 있고, 회원사 입장에서는 이도 저도 아닌 사업이 될 수 있으니 말이죠. 제가 실제로 365일 중 183일을 밤을 새워가며 기획한 중장기 발전전략에도 누군가는 흡족해하고 누군가는 불만을 갖습니다.
멘티님께서 공기업에 취업하시어 기획자로서 역량을 쌓고 싶으시다면, 최대한 많은 이들이 이해하고 수긍할 수 있는 방향으로 '눈치'를 좀 봐가며 사업을 기획하는 것이 어떨까 싶네요. 그리고 만약 공기업 기획자로서 인정받으며 업무하고 싶다 이러시면 기관장 '눈치'를 봐가며 기획 보고서를 쓰시는 전략도 하나의 생존전략입니다. 참고로, 공기업 기관장은 보통 3년마다 바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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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학사를 전자공학을 나왔는데, 똘똘해 보인다는 이유로 경영부 기획업무에 무작정 던져졌습니다. 정말 멘붕이었습니다. 제가 아는 기획이라고는 전자회로 설계, 알고리즘 분석법 이런 거였는데, 느닷없이 5, 10개년 중장기 발전을 세우고, 예산을 계획하고 채용 전략을 만들어보라니... 그 스트레스에 대상포진도 수 번 걸렸었네요. 그래도 한 번 해보자는 마인드로 부딪혔고 아래는 제가 지난 7년 동안 느낀 경험을 토대로 말씀드리오니 절대 제 말이 정답이 아님을 아시고 걸러서 들어주십사 읊어 보겠습니다.
©Pawel Chu
1. 일단 기획자는 본인이 속한 조직의 대부분을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게 저는 제일 스트레스였는데요, 엔지니어 같은 경우나 특정 사업담당자는 본인의 업무만 잘하면 됩니다. 특히 대한민국 공기업이 갖고 있는 사업의 95%(이건 제가 당당히 얘기할 수 있습니다)는 전임자들이 해오던 양식 그대로 수행하면 되는 단순 반복 업무입니다.
최초/중간/결과 보고 양식, 사업 수행 방식 등 거의 대부분이 그냥 전임자가 해왔던 거 그대로 따라서 물 흘러가듯 수행하면 되는 업무입니다. 근데, 기획자는 이런 업무를 해당 사업담당자 만큼 알고 있어야 하고, 심지어 그 사업의 SWOT, 연도별 사업 예산 추이, 다른 사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나 없나, 그에 따른 인력은 얼마나 필요한가 이런 것들까지 파악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제가 기획한 보고(안)은 최종 결정권자가 승인을 해주는 데까지 상대적으로 상당한 시간을 요합니다. 보고하러 들어갔다가 '이 사업은 어떤 사업이길래 확장을 하려는 건가요?’, ‘예산이 주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요'라는 질문을 받습니다. 매번 3년마다 결정권자가 바뀌는 매번 새로 설명해야 하죠.
2. '커뮤니케이션 능력'입니다.
위 내용과 연계가 됩니다. 말을 재밌게 하고, 말을 많이 하고, 다른 부서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아닙니다. 내가 기획한 (안)을 상급자 또는 제3자에게 명확히 전달할 수 있어야 하고, 왜 내가 한 소리가 일리 있는 이야기인지 관련 법령, 근거를 제시하며 정확한 논리와 분석력으로 상대의 고개를 자연스레 끄덕끄덕하게 할 줄 알아야 합니다.
3.문서작성 능력은 기본입니다
아시려는지 모르겠지만, 요즘 공기업 기관장 대부분은 고위 공무원 출신들이 많습니다. 공무원 출신들도 본인들이 온 소속(산업부, 기재부, 문체부, 고용노동부 등등)에 따라 성향도 상당히 극명하게 차이 납니다. 재밌는 문화죠.
그 성향에 따라 '보고서 양식'도 달라집니다. 이 능력은, 문서를 많이 작성해 보시고, 보고서를 많이 접해보시면 자연스럽게 길러지는 능력이니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또한, 요즘 정부에서는 '국어책임관'이라고 하여, 각 부처 산하 공기업, 특수법인에 '국어책임관'지정을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 국어책임관인데, 이 내용 가지고도 한 시간 떠들 수도 있지만, 이거는 따로 검색해 보시기 바랍니다.
4. '회계지식'도 어느 정도 있으면 좋아요.
이건 마치 뿌링클 가루와도 같은 겁니다. 프라이드 순살치킨만 먹어도 맛있지만, 뿌링클 뿌려먹으면 더 맛있잖아요?
5. 기획 관련 대학원에 진학도 고민해 보세요
저는 직장 다니면서 야간 대학원에 진학하여 혁신경영 연구실에서 약 3년을 공부하고 심도 있는 논문도 작성했습니다. 석사 졸업하는데 힘들긴 했지만 제 업무능력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공기업 특성상 학력이 진급에 상당한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제 답변이 도움이 되셨길 바라며.. 부디 적성에 맞는 일 찾으시길 바랍니다. 파이팅!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짧은 질문 글에 정말 상세하게 답해주셔서 도움도 되었지만 한편으로 감동했습니다. 작성해 주신 현실적인 조언 참고해서 좋은 결과 만들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