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멘토님. 온라인을 통해서라도 이렇게 멘토님과 이야기할 수 있어 정말 다행입니다. 새벽 1시까지 고민 때문에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고향을 떠나 지방에서 자재창고관리 직무를 담당하고 있는 28세 직장인입니다. 현재 저의 가장 큰 고민은 지금까지 쌓아온 역량과 제 가치관의 격차가 너무나도 난다는 것입니다.
대학생시절 물류 유통업에 흥미를 느껴 졸업하기까지 관련 자격증을 취득하고 인턴활동을 했습니다. 졸업 후 마침 좋은 기회로 대기업 물류유통 자회사에 취업할 수 있었고 제 꿈을 이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업계 특성상 많은 수출이 있는데 이 수출이 예상치 못한 시간에 많이 나옵니다. 해외에서 주문하는 양과 시간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죠. 그래서 영업사원 오더도 매우 돌발적입니다.
친구들과 한잔하는 평일 저녁에도, 여자친구와 데이트 중인 영화관에서도, 심지어 부모님과 해외여행 중일 때는 보이스톡으로 연락이 옵니다. 물류업 특성상 주말근무가 있다는 것도 알았지만 대신 순환근무로 평일에 온전하게 쉴 수 있어 인턴생활을 할 때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저는 언제나 출하에 대한 긴장을 놓지 못합니다.
거의 8년간 쌓아온 물류에 대한 제 경험과 자격증은 일과 휴식이 명확해야 한다는 제 가치관과 어긋납니다. 새로 갈아엎고 시작하고 싶지만 치열한 취업시장에 29살의 나이, 좋지 않은 학벌, 평범한 스펙으로 다시 뛰어드는 게 솔직히 두렵습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부모님은 제가 나약하다며, 예전에는 다 그랬다고 하시지만,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어디 가서 터놓고 말씀드릴 분도 없고 매일 이 문제로 끙끙 앓고 있습니다. 멘토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최용석 멘토의 답변
무조건 참는 게 능사는 아닙니다
반갑습니다 멘티님. 질문을 읽어보니 저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먼저 제 얘기를 좀 할게요. 저는 대기업 IT 인프라를 관리하는 일을 했습니다. 이 일을 할 때 작업을 주로 새벽이나 주말에 하고 장애가 날 때 시도 때도 없이 불려 갔습니다. 새벽에 갑자기 출근하는 때도 많았습니다.
그곳에서 4년 동안 일하면서 힘든 적이 정말 많았던 것 같습니다. 크리스마스 날 데이트 하다 출근한 동료도 있었고, 저도 소개팅이나 데이트 도중에 회사를 가야 하는 일이 빈번했습니다.ᅠ
그러다가 4년 전에 우연히 프로젝트를 진행한 외국계 회사에서 오퍼가 들어와서 합류하게 됐습니다. 비슷한 직무를 하지만 전과는 많이 다르게 여유가 있고 새벽에 출근하는 일 없이 잘 다니고 있습니다.
제 생각을 전하기에 앞서, 제가 물류 분야는 해박하지 못하다는 점을 염두에 두세요. 일단, 멘티님이 힘든 이유는 다른 사람은 다 견딜만한 일을 못 견뎌서도 아니고, 힘든 것에 비해 연봉이 낮아서도 아닙니다.
저는 회사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회사에서 충분한 인력을 확보하지 못할 때 보통 이런 일들이 발생하더라고요. 어쩔 수 없는 일 때문에 새벽에 출근해야 할 때, 똑바로 된 회사라면 그 시간만큼 다음 날에 휴식을 줍니다. 아니면 새벽에 가동되는 다른 팀을 운영해야겠죠. 물론 한국 현실에 이런 회사는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상황은 지금의 회사에 다니며 같은 직무를 하는 이상 계속 반복될 거고 참아야 되는 문제일겁니다. 멘티님이 이 회사를 계속 다닌다는 가정 하에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다음의 몇 가지가 될 것 같습니다.
1. 부서를 옮긴다: 업무 강도가 낮은 부서로 옮깁니다. 다만 회사에 따라 부서이동이 안 되는 곳도 많을 것 같습니다.
2. 상사가 될 때까지 참는다: 누군가가 멘티님이 할 일을 대신 할 때까지 기다리는 방법입니다. 이 방법은 별로 추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위계 중심의 한국 사회에서는 이런 방식이 자연스러운 이치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3. 상사에게 현재 상황에 대해서 솔직히 얘기하고 함께 대책을 강구해본다: 교과서에서나 나올만한 방법이지만 회사에 좋은 상사가 있을 수 있기에 말해봅니다.
위의 방법으로도 도저히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이직하세요. 제가 후배들한테 얘기하는 말이기도 한데 회사는 직원을 책임지지 않습니다. 회사는 경영사정에 따라 직원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으며, 이에 대해 큰 도덕적 책임을 느끼지 않습니다.
회사가 직원에 대한 선택권을 가지고 있듯, 직원도 회사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지금 물류 쪽 이직 시장이 어떤지 모르겠지만, 현재 경험을 베이스로 더 알맞은 곳으로 갈 수 있을 겁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work and Life Balance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돈을 버는 거잖아요. 삶이 무너지면서 돈을 버는 건 별로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좀 더 참으면 좋은 삶이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만약 멘티님이 지금 당장 인내하는 게 후에 더 좋은 삶을 보장한다면 조금 더 참아보세요. 아니라면 환경을 바꾸세요. 인생은 생각보다 깁니다. 참는 게 항상 옳은 것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