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환경에 관심이 있습니다. 거창한 마음까지는 아니지만, 교내에서 환경동아리를 하고 있고, 환경 관련 공모전에도 참여했고, 교양 수업도 환경 관련 강의를 신청해서 듣습니다.
멘토님께서 계신 단체는 아니지만, 환경 NGO에 기부도 하고요. 그리고 봉사활동 하는 것을 좋아해서 지난여름에 카자흐스탄으로 단기 봉사활동도 다녀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NGO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한 NGO에 해외팀 팀장으로 계신 분이 말씀하시기를, 절대로 사명감이 없이는 힘들다고 하시더라고요. 제 전공이 투철한 박애 정신으로 대표되는 전공도 아니고, 저는 '살면서 좋은 일을 하고 싶고, 그게 내 일이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어쩌면 이상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데 말이죠. 게다가 취업이 쉬워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가 잘못 본 것인지 모르겠는데, 경력직 모집이 더 많은 것 같더라고요.
1. 신입으로 취업하는 것이 힘들까요? 그리고 NGO는 정말 업무량이 살인적으로 많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2. 해외의 거대한 NGO들이 한국에 지부를 만들고 있는데, 한국은 경제 규모에 비해 시민의식이 그만큼 발달하지 않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단체들은 활동에 제약을 받지 않기 위해 거대기업이나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는데 그렇다면 어떠한 방법으로 규모를 키워나가나요? 전망은 긍정적인가요?
3. 마지막으로, 제가 만났던 거리 운동가들이나 간사님들은 성격이 굉장히 진취적이시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성격이 혁신적이라기보다는 현상 유지에 가깝고, 행동가보다는 관리자의 특성을 더 많이 지니고 있습니다. 이런 저의 성격이 애로사항이 되지는 않을까요?
잡다한 제 고민들을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멘토님의 답변을 기다릴게요. 감사합니다.
💬 멘토의 답변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잇다에 멘토 신청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제 첫 번째 멘티가 되셨네요. 프로필을 보니 평소에 환경에 관심이 많으셨나 봐요. 현장에서는 보기 드문 케이스인 것 같아요. 멘티님이 해주신 말씀은 좋은 질문이고, 심도 깊은 질문이라 뭐부터 말씀드려야 할지 쉽지 않네요.
우선 NGO의 실무 현장에서 겪는 경험을 얘기해 볼게요. 한 10년 자리 잡고 있어 보니 부딪히는 편견들이 좀 있는 것 같아요.
야근과 마감, 보통의 직장과 다르지 않아요
첫 번째는 "NGO는 봉사하는 곳이니까 일반 사회생활 하는 것보다는 덜 힘들지 않겠어?"라는 편견이에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라고 생각해요. 아무래도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들보다는 덜 치열할 수도 있고, 윗사람 눈치도 덜 볼 수도 있겠지요? 사실 꼭 그렇지도 않지만요.
업무량이라는 것은 무시할만하지 않은 것 같아요. 적은 예산에 적은 인력, 부족한 인프라를 바탕으로 일해야 하다 보니, 기업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는 일들도 어렵게 어렵게 해야 하는 경우가 많죠.
그 대부분을 채우는 건 직원들의 열정과 시간과 노력이에요. 마감 시간까지 맡은 일을 끝내기 위해 수당 없이 야근하는 경우도 많지요. 일하다가 싸우기도 하고, 포기하기도 하고, 성공하기도 하고, 보람을 느끼기도 하고요.
제가 보는 NGO는 여느 기업이나 정부기관, 행정기관 등 보통의 직장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저마다 자기가 선택한 삶의 자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여러 곳들과 크게 다르지 않죠.
긴 싸움을 위해 필요한 사명감이라는 맷집
그렇지만 절대 사명감이 없이는 힘들다라고 하셨다는 그분의 말씀은 상당히 일리 있습니다. 두 가지 측면에서 그렇게 보는데요. 행정적으로는 NGO라는 조직 특징상 프로그램을 위한 비용 외에 운영비와 인건비, 마케팅 비용 등에 가해지는 압박이 일반 기업보다 훨씬 심하거든요. 기업만큼 충분하지 않은 보상과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다 보면 한편으로는 열정과 사명감만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사회생활'의 압박을 견뎌야 할 때도 있습니다.
또 한 가지, 변화를 만들어 내기 위해 NGO들이 일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그저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어린이를 돕는다고 해도 돈만 있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고, 멸종위기의 코끼리를 살린다고 하는 것 역시 코끼리 보호구역 하나 만든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죠.
그 어린이가, 그리고 코끼리가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는 데 얽히고설킨 복잡한 문제들을 한 올 한 올 풀어야 합니다. 반면에 그런 일을 이뤄내라고 후원금을 주시는 분들이 모두 관대하게 기다려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이런 긴 싸움을 감당하려면 그만한 맷집(사명감)이 필요합니다.
묵묵한 책임감 역시 사명감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명감을 단순히 열정적이고 진취적인 것만으로 가늠할 수는 없습니다. 한 조직 안의 구성원들이 모두 열정적이고, 모두 진취적이라고 한다면 그 조직은 NGO든, 기업이든 지속될 수 없어요. 왜냐하면, 모두가 열정적이고, 모두가 진취적인 곳에서는 의견을 좁히기 어렵거든요.
누군가는 차분히 의견을 정리해주고, 열정적인 사람들이 벌리고 다니는 크고 작은 일들을 규모 있게 만들어주는 역할도 해야 합니다. 그런 역할을 묵묵하게 해주는 능력도 사명감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되지 않을까요? 저는 그 사명감이라는 단어를 책임감이라는 말로 치환해서 쓸 수 있다고 봅니다. 또 그 책임감은 NGO가 아니더라도 어디에서나 통용된다고도 생각해요.
활동가는 좋은 일을 '대행'하는 사람
두 번째 편견은 "좋은 일을 하며 산다."라는 편견이에요. 저도 NGO에 발을 디딜 때 동일하게 가졌던 편견이랍니다. 하지만 막상 지내보니, ‘내가 하는 일은 좋은 일일까?’라는 생각을 가지게 됐어요. 아니 더 엄밀히 말하자면 좋은 일을 하면 나도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인가라는 생각이죠.
제가 분명히 이 사회와 누군가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은 맞아요. 그렇지만 그것이 ‘좋은 일’이라고 규정지을 수는 없죠. 그저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일 중의 하나를 직업으로 삼아 하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많든 적든 언제나 부족하지만 어쨌든 저는 그 일에 대한 보상을 받고 있거든요.
환경을 위한 일이든, 어린이들을 위한 일이든, 노숙인들을 위한 일이든 그 일을 대가를 바라지 않고 지원해주시는 분들이 이른바 ‘좋은 일’을 하는 거지, 내가 그 일을 하는 현장에 있다고 해서 ‘좋은 일’을 하는 ‘좋은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물론 이런 생각은 이쪽 분야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의 의견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 ‘좋은 일’을 대행하는 사람으로서 하는 생각이랍니다.
한국 시민의식은 높은 편입니다
제가 일하고 있는 단체는 작년에 한국본부가 세워졌답니다. 55년에 가까운 긴 역사에 비해 우리나라에서의 역사는 상당히 짧아요. 비슷한 시기에 *INGO라고 부를 수 있는 곳들이 많이 들어왔어요. 그린피스, UNHCR, 국경없는 의사회, 옥스팜 등등.
INGO들이 최근에 많이 들어오게 됐지만, 한국이 멘티님이 생각하는 것만큼 시민의식이나 남들을 돕고자 하는 의식이 부족하지는 않습니다. 이렇게 얘기하는 이유는 오랫동안 한국에서 일하던 NGO들이 모금 실적에서 굉장히 좋은 성과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전에 일했던 한국월드비전은 2011년에 이미 미국, 캐나다, 호주에 이어서 모금 순위 4위를 했어요. 유니세프에 있을 때는 작년 중순쯤 정기후원자 수로 유니세프 여러 사무소들 중 1위를 했고요. 컴패션, 기아대책, 세이브더칠드런 등 여러 기관들의 국내 모금 규모도 다른 나라 오피스들과 비교했을 때 상위를 차지하고 있어요.
마음이 있는 곳에 사람들은 돈을 쓰게 되어 있어요. 연애랑 똑같죠.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선물도 주고, 장거리 연애에 길에다 쏟아붓는 교통비가 아깝지 않지요.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이런 지표들이 결코 한국 사회가 그렇게 척박하지는 않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에요. 저처럼 모금하는 사람들에겐, 그리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사람들에게는 기회가 열려있고, 앞으로도 계속 열려있다고 봐도 괜찮아요.
물론 기관들도 빈익빈 부익부가 있기는 합니다. 잘 알려지지 않는 곳은 여전히 프로그램 진행을 위한 모금이 잘 안 돼서 힘들기도 하답니다. 그렇지만 필요한 곳에는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사회복지공동모금회라든지, 아름다운재단처럼 모금을 대신하고 분배사업을 진행해 주는 곳도 있으니 꼭 그렇게 어렵지만도 않아요.
NGO도 하나의 조직입니다
이제 마지막 질문에 답을 드릴게요. 멘티님이 본인을 학생이라고 소개해주셨는데, 아마 대학교 2~3학년쯤 된 것 같아요. 수능 준비 했던 것처럼 또다시 긴장하면서 취업전선에 뛰어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저도 마음이 답답한 게 남 일 같지 않네요.
솔직하게 말하면 저는 기업이나 NGO나 비슷하다고 얘기해주고 싶어요. 어떤 조직이나 팔아야 하는 아이템을 만드는 공장 같은 부서(NGO로 치면 사업부 정도)가 있다면, 그것을 팔아야 하는 부서(NGO는 모금 부서 정도)도 있고, 그 두 가지가 잘 굴러가도록 경영을 하는 부서(기획실, 인력팀, 재무팀, 총무팀, 감사팀 등)도 있어요.
어떤 사람은 숫자를 잘 다뤄야 하고, 어떤 사람은 창의적이어야 하고, 어떤 사람은 꼼꼼해야 하고, 어떤 사람은 문서작업을 잘해야 하지요. 그 모든 것을 다 잘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거예요.
회사 입장에서는 완벽한 사람을 뽑기보다는 지금 내 밑에서 얼마나 착실하게 일해 줄 것인가를 가장 중요하게 보고, 그다음에 그 사람의 장기가 그 업무에 적합한지를 본답니다. 상대가 신입이라면 뭐가 됐든 일을 배워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니까요. 그러니 원하는 회사나 직종이 있다면 인턴이나, 알바 그 무엇이 되었든 먼저 경험해 보시길 권해드려요.
무조건 하고 싶어서, 열정적으로 살았던 1년
끝으로 제 첫 입사 경험담을 말씀드릴게요. 제 소개에 ‘NGO 취업 뒷문으로 들어가기’라고 쓴 게 있을 거예요. 저는 처음 취업 당시, 그냥 이 일이 무조건 하고 싶었어요. 정규직 뽑을 때는 보기 좋게 떨어졌고요. 제가 아주 뛰어난 사람은 아니었다는 얘기죠.
한 달 뒤에 있는 ‘직장체험 연수’라는 고용노동부에서 지원하는 인턴 비슷한 것을 뽑을 때 겨우 합격했어요. 알바도 거치고, 자원봉사도 했다가 결과적으로는 1년 정도 ‘저 여기서 직원 하고 싶어요’하는 말을 귀담아들으셨던 분이 추천해서 직원이 됐었죠. 무모했지만 그때 경험이 저한테는 인생 중에 가장 열정적이었던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그 이후에 경험이 쌓이니 30대 중반이 돼서 후배에게 조언까지 하게 됐네요. 첫 번째 멘티라서 그런지 이것저것 길게 썼지만 정성은 듬뿍 담아봤어요. 도움이 되면 좋겠네요. 또 궁금한 점이 있으면 다시 질문 주세요. 멘티님을 응원할게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