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멘토님. 올해 대학에 입학한 새내기 멘티입니다. 저는 작가가 되고 싶은데요. 실제 작가님으로 활동하고 계신 분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이렇게 멘토님께 질문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1. 글을 쓰다 막히는 부분이나 슬럼프가 찾아오면 어떻게 극복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또 글을 쓸 때 가장 중요한 마음가짐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2. 글을 쓰면서 가장 도움이 되는 자신의 강점이 무엇인가요? 또 멘토님이 생각하는 책의 매력과 의미는 무엇인가요? 또한, 요즘 e-book 시장이 많이 커졌는데 멘토님께서는 종이책과 e-book의 매력을 뭐라고 생각하세요? 멘토님 프로필을 보니 경영학을 전공하셨더라고요. 경영학을 공부했는데 작가가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혹시 작가가 되는데 대학에서 복수전공이나 문예 창작 수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또 독자분들의 피드백이나 감상문을 읽어보신 적이 있으시나요? 그중 가장 기억에 남거나 뿌듯했던 독자의 말은 무엇이었나요? 좋은 작가가 되고 좋은 글을 쓰기 위해 꼭 경험해 봤으면 하는 것이 있을까요? 멘토님께서는 좋은 글이 어떤 글이라고 생각하시는지도 궁금합니다.
부모님께서는 작가가 안정적이지 않은 직업이라며 제가 작가로 사는 것을 반대하십니다. 제가 아직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한 채 막연히 작가를 꿈꾸는 것인지 고민됩니다. 실제 작가의 현실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3. 작가의 생각을 글에 담는 것과 독자의 반응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궁금한 것이 많아 질문이 많았습니다. 멘토님의 진솔한 이야기가 제게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멘티님. 작가 지망생으로서 궁금한 이야기들이군요.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게 더 중요하니까 제 이야기는 참고로 들어주세요. 그럼, 차례로 답변 드리겠습니다.
슬럼프는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없애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마감이 있는 글은 슬럼프 같은 건 느낄 새도 없이 그냥 씁니다. 일이란 게 원래 그렇죠. 취미나 공부는 관두거나 쉴 수 있지만 일은 아니에요. 직장인이 놀고 싶다고 놀 수 있나요? 작가도 마찬가지인데 어찌 보면 좀 더 냉정해요. 신뢰를 잃으면 필드에서 퇴출당하니까요. 특히 돈을 받고 일하는 프로 세계에서 글이 안 써진다고 시간을 끌 수는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글쓰기에 가장 필요한 마음가짐은 ‘즐기는 것'입니다. 컴퓨터 앞에 앉으면 막막해지고 짜증이 나는 성격이라면 작가로서 일하기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거리 두기는 작가로서 강점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거리 두기를 잘하는 편입니다. 감정적으로 도취하는 일이 적은 편이며 한 발 떨어져 분석적으로 살펴보는 데 능합니다. 소설, 에세이, 칼럼, 기사 등 대다수 글에 그런 성향이 묻어납니다. 아마도 여러 매체에서 계속해서 글을 청탁해오는 건 이런 강점 때문인 것 같네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매체와 미디어에도 거리를 두며 각 매체와 미디어의 속성을 존중하는 편입니다. 많은 작가가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책을 예찬하는데 전 아니에요. 글자가 싫은 사람은 책을 아예 읽지 않고 유튜브 영상만 봐도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건 정보를 취합하고 걸러낼 수 있는 본인의 역량이겠지요.
다만 그 역량을 배양하는 데 가장 유용한 매체는 역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능동적으로 페이스를 조절하며 깊이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매체는 현재로선 책뿐이네요. 물론 e-Book도 마찬가지죠. 사실 제게는 e-Book과 종이책의 차이가 그다지 크지 않아서 둘 다 매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연히 시작한 소설의 길, 소설가는 학위가 필요 없습니다
원래 유학을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2008~2009년 금융위기 때 환율이 치솟으면서 유학을 접게 됐습니다. 당시 속상한 마음에 ‘그냥 소설이나 써보자’ 하는 마음에 몇 편 끼적여봤는데 행운인지 불운인지 문학사상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어요. 그때 등단하지 않았다면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나 금융 애널리스트로 일하지 않았을까요? 글쓰기와 음악은 취미로 했을 것 같아요.
문예 창작 전공 수업이나 복수전공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작가가 되는 데 필요한 학위는 없습니다. 모든 공부, 경험, 독서는 글쓰기의 밑바탕이 됩니다. 관건은 그걸 엮어나가는 본인의 역량이지 특정 경로는 아니라고 믿습니다.
독자들의 반응은 초연하게 바라봅니다
이런저런 경로로 다양하게 독자의 반응을 접하고 있습니다. 일을 매개로 오가는 피드백이기에 건조하게 분석적으로 바라봅니다. 뿌듯해하지도 짜증을 내지도 않습니다. 기억에 남는 건 얼마 전 작고하신 김윤식 선생님의 고언 한마디네요. ‘문학과 시사만화의 차이를 고민해보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경험은 글쓰기의 밑바탕이 됩니다
위에서 언급했듯 모든 경험은 글쓰기의 밑바탕이 됩니다. 중요한 건 그 경험을 지나간 일 또는 추억으로 흘리지 않고 경쟁력 있는 글로 빚어낼 수 있는 통찰력, 감수성, 필력 등이겠지요. 따라서 특정 경험을 추천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저는 사기 치지 않는 글이 좋습니다. 아는 만큼, 느끼는 만큼, 생각하는 만큼 쓰는 게 좋은 글 같습니다. 유식한 척, 감성적인 척, 사려 깊은 척하는 글이 시중에 너무 많네요. 근데 독자 눈엔 훤히 보인다고 믿습니다.
전업 작가의 현실? 확실한 기반을 먼저 다져 놓으세요
글만으로 먹고사는 작가는 거의 없습니다. 웹툰, 웹 소설은 이야기가 다른데 순수문학으로 분류되는 쪽은 그래요. 문학상 수두룩하게 받고 인터넷 서점 대문을 장식하는 톱 작가의 연간 인세조차 대기업 신입사원 수준에 못 미칠 때도 많습니다. 그래서 강의, 강연 등을 병행하는 경우가 많아요.
냉정하게 전업 작가라는 단어 자체가 환상입니다. 다들 다른 일을 하면서 글도 쓰다가 확실한 기반을 다지면 그제야 전업 작가로 돌아서지요. 그러니 사회 어느 분야든 전문적으로 일할 수 있는 역량을 쌓아서 병행하길 권합니다. 실제로 그런 전문지식은 글쓰기에도 큰 밑거름이 될 거예요.
작가의 생각 vs 독자의 반응, 무엇이 우선인가?
전 제 생각을 소신껏 담되 그걸로 독자를 끌어들이는 방향을 지향합니다. 다소 시간이 걸릴 수도 있고 어쩌면 끝내 달성하지 못할 비전임을 알지만, 현재로선 그렇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또한 글을 제외하고도 먹고살 만한 기반을 다져야 가능한 것일 수 있어요. 일단 자기 삶을 책임질 수 있어야 글도 소신껏 쓸 수 있습니다. 그게 아니면 남들 입맛에 맞춰서 쓸 수밖에 없게 되거든요. 앞에 했던 이야기와 반복이지만 현실적인 기반을 닦아놓고 글을 쓴다면 훨씬 편하실 거예요.
진솔하게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겁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글쓰기를 도전하는 데 돈이 드는 건 아니니까요. 저의 이야기가 멘티님께 도움이 됐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