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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제철 현직자가 말하는 보람과 인간관계
멘토
생산/품질/제조
약 5년 전
💬 멘티의 질문
멘토님. 지난 번 답변 엄청 자세하고 길게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프린팅 해서 두고두고 보고 있습니다. 더하여 다른 질문을 여쭤봐도 될까요?

회사생활을 하면서 가장 기뻤던 일이 무엇이 있으신가요?  또, 보통인간 관계때문에 회사생활이 힘드실텐데 멘토님 역시도 인간 관계때문에 힘드신가요? 회사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적은 언제신지 궁금합니다.

ⓒ markus spiske

H제철은 07~15, 15~23, 23~07 이런식으로 근무한다고 들었는데 23~07시간에 근무하시면 안 힘드신지 궁금합니다. 아무리 적응됐다고 하더라도 이 시간엔 졸기 마련인데, 멘토님이 말씀하신것처럼 고로는 순간순간 위험요소가 너무많아서 순간의 졸음으로 물질적 손해를 볼 수도 있고 안전에도 피해가 있을 수있는데 23~07시간대에 안 힘드신가요?

💬 한상우 멘토의 답변

또 뵙게 되어 반갑네요. 멘티님. 일단 멘티님 질문에 답변을 드리기 전에 먼저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어요. 굳이 제 답변을 프린팅해서 걸어두실 필요는 없어요. 제 답변은 그냥 제가 겪은 일이고 제가 한 일이에요. 당연히 멘티님과는 경우가 다르겠죠? 그저 참고만 해주셨으면 해요. 작게라도 도움이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다행이고 보람입니다. 

자, 그럼 멘티님의 질문에 대해서 하나 하나 말씀드릴께요. 항상 말씀드리지만 H제철은 노동조합이 있어서 평등과 노동권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제철소라는 이미지가 남성적이고 보수적이라서 그렇지 까라면 까야되는 문화가 아니에요. 

부당하고 잘못된 명령은 거부할 수 있고 그게 보편화 되어 있습니다. 이 점 잘 명심하셔야 H제철에서 직장생활을 잘 해나갈 수 있어요. 무조건 회사편만 들어도, 노동조합만 믿고 태만해도 안됩니다.
 
ⓒspacezerocom

기본에 충실할 때 보람은 따라옵니다

먼저 제일 처음 질문 주신 내용인데요. 가장 보람있던 일이라면 뭐 제강부서가 워낙 다재다난해서 한 가지만 딱 꼽아서 말씀드리기가 곤란하네요. 굳이 말씀드리자면,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저희가 다루는 쇳물이 양이 많고 위험하다보니 순간적인 판단이 연연주를 좌우하는 경우가 많아요. 유능한 사람들일수록 이러한 판단이 빠르고 작업에 대한 결과가 초단위로 같은 제강공장안에서 공유가 되다보니 다들 민감하죠. 

제 경우 전로에서 합금철을 평량 할 때 실수로 다른 합금철이 평량된 적이 있어요. Fe-Mn과 Coolant(냉각제)를 요구했는데 호파에 담긴게 Fe-Si가 투입된 거에요. 보통 이러한 합금철이 kg단위가 아니라 톤단위로 투입되다보니 컴퓨터를 믿고 모델조업을 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거에요. 보통 성분을 분석하기까지 7~8분이 걸리는데 용강의 온도드롭이 달랐어요. 제가 요구한 합금철이 아닐 수 있다고 판단해서 일단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라인을 중지시켰어요. 그리고 성분분석을 보고 수요가가 요구한 스펙과 차이가 많이나서 전로, 이차정련, 공정, 크레인에 전화걸고 강종을 바꾸고 연주파트에 따로 연락해서 아예 강종을 바꾸고 연주를 일찍 시작했습니다. 

이 연연주가 중요한게 한 heat가 주조불능이 되면 뒤 연연주들도 줄줄히 끊겨 천문학적인 손해가 나게 됩니다. 조치 끝내고 제가 계산해 본 결과 약 11억원 정도 손해를 예방했어요. 이 모든게 30분 안에 작업이 끝났습니다. 

짧은시간 안에 빨리 조치가 잘 끝났고 그 결과 제 이름이 제강공장안에서는 한 번 보고서로 알려지게 됐어요. 자랑이라고는 할 수 없는게 이런 경우가 한 달에 한 번쯤은 일어나기에 표창까지는 아니고 그냥 우수사원선정으로 끝났죠.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게 뭐냐하면요, 같이 일하는 형들이 절 인정해준 겁니다. 그 뒤로 제가 작업을 하면 처리할 동안 다른 형들이 제 작업에 터치도 안하고 계장님들도 일단 믿고 일을 맡기셨어요. 그 때 느낀게 뭐냐면요. 본인 평판은 본인이 만든다는 겁니다. 지각 안하고 가끔씩 이런 돌발조치만 잘 해주면 업무적으로 크게 스트레스 받을 일은 없어요.

인간관계는 어디나 비슷, 자존감을 위해 미움 받을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사실 멘티님께 더 말씀드리고 싶은건 이거에요. 대인관계 스트레스. 보통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제선, 제강을 떠나 안전상의 이유로 단독작업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 Olexandra

크레인을 제외하면 보통 2명 이상이 같이 일해요 제강부서 전로파트의 경우 5명이 같이 한 노를 맡아서 일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것도 한 두 해 보고 말 것도 아니고 짧게는 20년 길게는 30년 이상 봐야하는 사이에 트러블이 발생하면 앞으로의 직장생활이 꼬이겠죠. 

군대와의 차이점이 이거에요. 군대는 미친척 하고 2년 개기는 경우도 있고 타직장의 경우도 더러운꼴 겪고 그만두면 다시는 얼굴 안 볼 수 있겠죠. 하지만 제철이라는 특성상 업계가 매우 좁아요. 심지어 P사에서 싸우고 H제철에서 다시 서로 만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생각하는 사이에서는 사실 뭐든 흐릿하게 하는게 제일 무난해요. 다만 정말로 이건 아니다 싶은 사람들도 꼭 존재합니다. 무전 한 마디 못 알아 들었다고 욕하고,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군대에서도 터치 안하는 부분까지 뭐라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이런 문제들은 사실 아무도 도와주지 않습니다. 개인과 개인으로 풀어야 돼요. 보통 이런 갈등은 나이많은 형들과의 사이에서 많이 발생하는데요. 제 경우도 치사하게 구는 사람이 좀 있었어요. 2억 원이 넘는 쇳물을 다루는데 1만원하는 소모품 함부로 쓴다고 혼내고, 조업이론이나 원인이 뻔한 상황인데 제가 틀렸다고 우기는 경우 (실제로 원인규명해보니 제가 맞는 경우) 등 별별일이 다 있고 별의별 사람이 다 있어요. 말 한마디를 해도 빈정상하게 하는 경우도 있죠. 

이건 따라하셔서 별 도움은 안되겠지만, 알아만 두셨으면 해요. 제 경우 그럴 경우 수첩에 해당상황을 적어놨다가 다음에 같은 상황이 일어나면 조목조목 끝까지 말합니다. 이건 노동조합도 회사도 나서는 게 아닙니다. 대인관계는 결국 본인이 싸워야합니다.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 아시죠? 제목 그대로입니다. 미움을 조금 받더라도 올바른 관계로 나아가겠다는 자존감이 중요해요. 

ⓒRawpixel.com

근무 패턴, 누구에게나 평등한 휴식

마지막으로 야간근무에 대해서 적어주셨는데요. 사실 이건 좀 사람마다 다르고 나이나 가정을 일구었는지도 중요한 사항이라서요. 저와 제 또래 형, 동생들의 경우를 좀 말씀드릴게요. 

야간근무의 경우 보통 업무강도를 좀 낮춰줍니다. 야간에 졸기라도 하면 큰 일이니 주간에 하던 일에 비해서 80%정도로 업무량이 줄어요. 이건 명문화된건 아니고 그냥 제 느낌입니다. 그리고 글 중반에 단독근무를 지양한다고 말씀드렸었죠? 야간에 대한 이유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졸기라도 하면 큰 일이니 2인1조를 기본으로 근무합니다. 회사의 방침이나 노동조합 단체협약도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개인의 생활리듬을 말씀드릴께요. 저를 비롯한 가장 많은 사람들의 경우 야간근무를 마치면 아침먹고 씻고 퇴근하면 보통7시~8시입니다. 이 때 잠을 잡니다. 그러면 아무래도 낮에 자는 만큼 많이는 아니고 12시~오후 1시에 깹니다. 이 때 개인용무를 보기도 하고 상당히 드문 경우지만 다시 출근해서 회사내 복지관에서 운동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후 저녁을 먹을 때까지 쉬다가 해가 저물어가는 7시쯤 다시 자고 출근하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계속 쉬다가 야간 출근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보통 4조 3교대의 경우 5일을 기준으로 바뀝니다. 야간 근무 5일이면 피로가 축적되어서 쉬는 사람들이 많죠. 모든 교대가 끝나고 56시간을 쉬는 걸 원칙으로 합니다. 

오전 근무 5일 마치고 56시간 휴식 후 야간 근무5일 근무, 야간 근무 5일 마치고 56시간 휴식 후, 오후 근무 투입. 이렇게 5일 일하고 약 이틀간의 휴식시간을 가집니다. 휴가자가 발생시 쉬는 사람들이 대체근무를 우선적으로 보장하며 여의치 않을경우 해당근무자의 같은 동료들이 12시간씩 맞교대를 합니다. 따라서 휴가를 쓰거나 하면 적어도 3일전에 미리 알려주는게 좋죠. 

ⓒpixabay

이런식으로 근무가 짜여져서 신입이라고 해서 휴가등 복리후생에 제약을 받거나 하는 부분은 없습니다. 만약 누군가 차별 받는 경우가 발각되면 해당 부서 부서장 이하 전원이 징계를 당합니다. 

걱정하시는 것과는 달리 딱히 4조 3교대에서 힘든 적은 없었어요. 다만 고로 3기를 건설할 때 한시적으로 4개 조를 두 개 조로 나누어 맞교대를 돌아간 적은 있네요. 매일12시간씩 근무하면서 약 3개월간 맞교대를 돌아갔습니다. 

그때는 개인시간도 없이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다보니 사생활이 없어져서 좀 힘들긴 하더군요. 동료들도 그 때 이야기를 하면서 어떻게 버텼는지 웃으며 이야기합니다. 

8시간 근무를 하다보니 부당한 잔업이나 퇴근에 눈치가 보이는 경우는 전혀 없어요. 근로법이 일하면 일하는 만큼 수당을 줘야하기 때문에 오히려 결혼한 형들 같은 경우 서로 잔업을 하려고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정도로 궁금해 하시는 점에 대해서 끝맺음 지으려 합니다. 제가 H제철 다니면서 느낀 점이 하는만큼 돌아온다는 거에요. 수당이나 임금 등은 당연한 이야기고요. 평판이나 업무능력 등 결국 본인의 태도가 무엇보다도 크게 좌우합니다. 그 덕에 이직율 최하를 자랑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다른 궁금한 점이 있으시다면 저 뿐만이 아니라 H제철 연구소에 재직 중이신 다른 멘토분도 있으신 것 같으니 질문하시면 답변드리겠습니다. 부디 복학하셔서 빨리 졸업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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