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R 2.0? 3.0? 이것도 업데이트가 되나요?
안녕하세요! 새해 첫 에세이를 들고 왔습니다….만!흠.. 막상 쓰려고 하니 과연 이 내용을 누가 읽어주실 지 쉽게 예측은 안되네요. 뭐, 저라도 읽죠! 새해에는 되도록이면 매사에 희망을 가져보려고요ㅋㅋㅋ자, 제목에서 보셨겠지만, CSR과 관련된 소식들을 접하다 보면, 여기저기서 CSR 2.0이니, 3.0이니 하는 슬로건들을 내거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어요. 그런데, 사실 업계 전문가로 몇 년을 있었다고 스스로 얘기하는 입장인 저도, 그런 슬로건들을 보면 그런게 있었나? 뭐였지? 아니 이거 언제 나 빼고 다들 어디 가서 따로 합의라도 했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어요. 그만큼, 뭐 고심해서 슬로건을 만드신 분들께는 좀 죄송한 이야기지만, 상당부분 중구난방인 면이 있다는 거죠.제 입장부터 좀 명확히 해 볼게요. CSR이라는 개념에, 2.0이나 3.0으로 명명할 수 있을 정도로, 모두가 합의할 수 있을 만큼 혁신적인 변화가 있었을까요? 아뇨, 없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CSR은 2010년 이후로는 계속 꾸준히 그 때 나온 CSR 그대로였어요. 단, CSR에 속하는 많은 주제들 중 일부에 대해서, 아주 많은 산업계와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공감한 일종의 유행들은 있어왔죠. 이번 에세이에서는 한국에서 유행했던 것들 한정으로 두 가지 유행을 소개해 볼게요.CSV 혹은 공유가치창출, 많이 들어보셨죠?2011년에서 2013년 사이 즈음에, 다수의 대한민국 대기업 CSR 조직들의 이름이 대 격변을 거쳤습니다. 그 때 개편된 조직명들 상당수에 이런 단어가 들어갔었죠, 공유가치. 영어로는 Shared Value 라고 하는데, 2011년 초에 그 이름도 유명한 하버드 경영대학의 마이클 포터 교수가 내세우면서, 대한민국 기업들 사이에서는 이게 마치 다음 세대의 CSR인 것 처럼 많은 기업들이 이에 반응하는 현상이 있었습니다.CSV라는 개념을 간단히, 아주 간단히만 소개해 볼게요. 기업들의 CSR이 대부분 기업의 향후 수익 창출과의 연계를 고려하지 않고 무대가성, 그리고 단발성으로 이뤄지는데, 앞으로의 CSR은 이런 경향에서 벗어나서 장기적으로 기업의 수익창출에도 기여할 수 있도록 전략적으로 기획/실행되어야 한다는 게 CSV의 주된 내용이에요. 왜 공유가치냐면, 기존의 CSR처럼 일단 공익성은 기본으로 추구하면서, 기업의 사익에도 기여하는, 즉, 공과 사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가치라서 그래요.워낙 저명하신 분이, 그것도 입에 착착 감기면서도 뭔가 CSR의 발전형인 것 같은 명칭을 가지고 주창한 개념이다 보니, 적어도 그 분에 대한 신뢰도가 높았던 대한민국 기업계에서는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켰는데, 뭐, 이내 사그라들었습니다. 뭔가 좀 이상했거든요.제가 지난 에세이 두 편을 모두 사회적 기업과 기업의 사회공헌팀을 비교하는 데 할애했는데, 우선순위에 차이가 있긴 하지만 두 조직 다 공익과 사익을 모두 창출해야 하는 곳이라고 소개 했어요. 한번씩 읽어주시면 저야 감사하지만, 일단 이것부터 마저 읽어주세요ㅋㅋㅋㅋ 저 소개를 보니, 여러분도 뭔가 이상하게 생각되지 않으세요? CSV가 요구하는 것하고, 사회공헌팀이나 사회적기업이 하고 있는 일이, 얼추 비슷해 보이지 않나요?그렇게 느껴지셨다면, 그게 정상입니다. 그렇다고 CSV가 틀린 개념인고 하면, 에이 그건 또 아니죠. 마이클 포터 교수, 개인적으로 팬은 아닙니다만, 그 분은 감히 제가 이렇다 저렇다 평 하는게 죄송스러울 정도의 석학인 건 틀림 없잖아요. 단, CSV라는 개념이 주목을 끌게 하려고 무리수는 좀 두신 것 같아요.CSV의 진짜 비교 대상은, 기업의 자선/기부활동이거든요. 자선이나 기부가 CSR의 한 분야이긴 하지만 말이죠. 이렇게 생각해 봐요. 제가 만약, “사람들이 커피 마실 때 쓴 맛 없애려고 설탕/시럽을 많이 넣는데, 설탕이 몸에 그리 좋지는 않죠? 그러니 우리 앞으로는 설탕보다는 몸에 좀 나은 꿀을 넣읍시다!” 라고 말했다고 생각해 봐요. 제가 내세운 대체제는 꿀이죠? 그게 뭘 대체하나요? 커피인가요? 아니면 그 커피 안에 들어가는 설탕인가요? 꿀이 CSV고, 설탕이 기부/자선활동, 그리고 커피가 CSR이에요. 그런데 포터 교수님은, 뭐.. 왠지는 잘 몰라도 꿀하고 설탕을 비교하면서, 마치 꿀하고 커피를 비교하는 것 처럼 하셨던 거죠.사실 그 교수님이 진짜 하고싶었던 얘기는, 양념을 좀 더해서 풀어보자면 아마 이거였을 거에요. “괜히 연말에 직원들이 맛도 없는 김치나 담그고, 1/3은 깨 먹어가면서 연탄 나르게 하느라 돈 쓰지 말고, 사내 소셜 벤쳐를 육성하거나 정부의 지역사회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투자하거나 하는 식으로 좀 기업스럽게 사회가치를 만드는 데 기업의 소중한 자산을 활용해야 한다!” 말이죠. 문제는, 그 정도는 기업들도 진작에 생각하고 있었다는 거에요. 여전히 김치도 담그고 연탄도 날라야 했다는 게 문제지… 그렇다고 여태 해 오던 기부를 별안간 안 할 수도 없잖아요?무튼 그러다 보니, 요새는 그 때 만큼 CSV가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지는 못해요. 단, 워낙 크게 유행했던 개념이고, 사실 비교 대상이 잘못됐다는 문제를 제외한 개념 그 자체로는 되게 말이 되거든요. 그래서, 사회적 가치 창출이라든가 가치경영이라든가 하는 형태로 그 명맥은 유지가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이건 들어보셨나요? SDG!CSV에 대한 열광이 좀 시들해지고 그 뒤를 뭐가 이을까 이렇다 할 유행이 형성되지 않고 있던 와중에, 이번엔 UN에서 2015년 말에 큰 건 하나를 터뜨립니다. 2000년부터 15년간 추진돼 오던 새천년개발목표(Millennium Development Goals)가 2015년을 끝으로 종료되고, 그 뒤를 이은 15년 동안 지속가능한 개발 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로 보다 세분화/확대되어 추진되기로 한 것이죠.사실 새천년개발목표는 적어도 제가 CSR 전문가를 자청하기 시작한 시점에는 이미 좀 시들시들해 진 상황이었는데요, 이게 17개 목표와 그 밑의 무려 169개에 달하는 세부 목표들로 확대가 되면서, 뭐 현재까지는 기업들이 나름 활발하게 관심을 보이는 중입니다. 꼭 한국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고요, 요즘 나오는 지속가능성 보고서들을 보면, UN SDG의 다양한 아이콘이나 명칭들이 보고서 여기저기에서 눈에 띄고 있어요. 디자인 적으로도 써먹기 좋아서 더 많이 등장하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지요....그런데, 이게 또 문제가 슬슬 보이는게 말이죠…. 아무래도 UN이라는 강력한 주체로부터 추진된 목표라서 그런지, 이게 마치 현재 CSR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것 처럼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단 말이에요. 즉, 지속가능한 개발 목표의 달성에 기여하는 것이 곧 지속가능한 경영을 달성하는 것 처럼 여긴다는 거죠.여태까지의 저의 패턴에 익숙하신 분들이라면 이제 예상하시겠지만, 저는 그게 아니다! 라고 말 할 겁니다. 이게 사실 그 이름에도 벌써 힌트가 숨어있는데요, SDG는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한 목표입니다. 즉, 이걸 달성해야 하는 이유가, 개발이 덜 된 지역사회를 보다 지속가능하게 개발하기 위함이라는 거죠.반면에 지속가능경영, 제가 CSR이라고 말하는 활동의 목적은 뭔가요? 물론 지역사회의 지속가능성에 기여하는 것도 여러 목적 중 하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기업이 내일, 다음 주, 내년, 다음 세대로까지 쭉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에요. 우리가 기업에게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것은, 기업이 더 이상 자기들이 미치는 악영향들을 무시하면서까지 이윤만 추구하다가는, 그 기업 활동의 기반이 되는 많은 것들의 생존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따라서 결국 기업을 포함한 모두의 활동이 지속되지 못할 것이라는 데 점차 많은 사람들이 합의하게 되었기 때문 이거든요. 즉, 우리는 기업에게, “너희(기업) 살자고 모두가 다 죽기 전에, 모두에 대한 너희의 책임을 다 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죠. 그 중의 하나가 기업의 기반이 되는 지역사회를 지속가능하게 개발하라는 것이고요.그러니, SDG의 17개 목표, 나아가 169개의 세부목표 모두는, 사실 꽤 방대하긴 합니다만 그렇다 하더라도 결국 CSR의 더 많은 목표들 중의 일부에 해당하지, 결코 CSR의 다음 세대가 될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생각해 볼게요.제가 축구팀 감독을 맡게 되었고, 제 목표는 팀을 리그에서 우승시키는 것이라고요. 그러기 위해서는, 저는 일단 팀이 이기는 경기를 전체의 40% 이상, 패하는 경기를 전체의 25% 이하로 유지하는 것으로 목표를 세우고, 또 이를 위해서 경기당 실점 목표를 1골 이하, 득점 목표를 1.5골 이상으로 잡았다고 해 보죠. 뭐 가정이니까 대충 그러려니 하고 넘어 갈게요.시즌 내내 엄청나게 노력해서 경기당 실점을 0.8골로 유지했습니다! 그렇다는 것이 과연, 제가 리그 우승을 달성했다는 것을 의미할까요? 만약 경기당 실점은 0.8골인데 득점이 0.5골이라면요? 득점, 실점 목표도 다 달성했는데 주구장창 0:0이나 1:1로 비기기만 해서 이긴 경기가 전체의 20%밖에 안됐다면요? SDG의 달성이 곧 CSR의 수행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말,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가시죠? CSR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 그 CSR이었습니다.제가 아까, CSR은 2010년 이래로 계속 그대로였다고 했죠? 왜 하필 2010년이냐 하면, 그 해에 ISO에서 사회책임에 대한 국제 표준이 제정됐거든요. 물론, 그게 벌써 10년 전이니 이제 슬슬 그것도 업데이트가 된다거나 하더라도 이상할 일은 아니죠. 그럼, 그 때가 CSR 2.0의 원년이 될 겁니다.2010년 이후로 지금까지의 10년동안 CSV라는 것도 대두가 되었고 지금은 SDG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그것들 중 어느 것도 CSR 2.0이나 3.0, 뭐 그 이상이 될 수는 없었어요. 자선활동 2.0이나 기부 3.0이라면 모를까요.유행도 괜히 생기는 건 아니니, CSV나 SDG가 유행할 때 그것들을 잘 따라가는 것도, CSR의 중요한 요소이기는 할 겁니다. 그리고 그 유행들은 계속 변하겠죠. 그러나, 기업이 자기 책임을 다 하기 위해서는, 그때그때의 유행을 잘 따르는 것 이상의 노력이 언제나 필요하다는 건 변하지 않을 거에요. 저는, 앞으로도 유행 전문가 말고 CSR 전문가를 추구할 생각인데, 여러분은 어떠신가요?뭐.. 실컷 떠들긴 했는데 읽을만 한 글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재미있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길고 정리 안 된 글에 관심 가져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또 봬요! 감사합니다.이동건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