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학도의 얼렁뚱땅 취업뽀개기, 그 후 3년의 이야기 1편. 'CU 매니저가 되다!'
작년 처음 잇다에 가입하고, '김태호 PD'라는 이름을 팔며 첫번째 칼럼을 올린 지 어느새 반년이 지났습니다ㅎ 그 글이 나름 괜찮았는지, 추후 제 글을 읽어보시고 연락해주시는 분들도 있구, 그 글 때문에 멘토님을 찾아왔다며 글을 남겨준 멘티분들도 계셨습니다.
멘토로 활동한지 반년 후. 그리고 30살이 된 지 7개월이 지난 마지막 7월의 오늘.
만으로 2년, 연차로는 3년이 된 연극학도의 직장생활 이야기를 한번 정리하면 어떨까 해서
오랜만에 키보드 위에 손가락을 올려놓습니다.
조금은 재미가 없을수도,
혹은 뛰어나게 재미있을 수도 있는 제 칼럼,
저의 3년여간의 이야기를 짤막하게 담아보려 하니 많이 읽고, 많이 비판하고, 많이 공감해주세요.
오늘은 첫번째 1년여간의 이야기. CU 매니저 편입니다.
1. 2014년 첫 취업, 그리고 CU 매니저가 되다.
'걔 우리회사 왜 왔대?' '연예인 누구 아냐?'
연극학과라는 타이틀로 회사에 입사하고, 가장 많이 들은 질문 2가지. 우리집에 왜 왔니 를 외치는 것처럼 반복적으로 들려오는 우리회사 왜 왔니 왜 왔니 왜 왔니. 그리고 연예인 누구아냐? 친해? 입사 첫날 부터, 부장님과의 식사때부터, 팀장님과의 대화부터, 선배와의 술자리부터. 저 두가지 질문은 나를 보면 의무적으로 물어봐야 할 회사내의 어떤 공식과도 같았다.
'네, PD준비하다가 안되서, 취업으로 돌렸는데 운좋게 여기 붙었습니다.'
'박하선이랑 오연서가 동기인데,,,,, 다들 지금 연락두절입니다. 죄송합니다'
연락두절이라는 말을 할 때 마다 일그러지는 선배들의 표정에 참으로 가슴아팠지만, 오히려 반대로 나라는 이름 석자를 알릴 수 있어서 좋기도 했다. 매일같이 잘생긴 사람, 예쁜 사람, 끼많은 사람 속에서 평범함을 자랑했던 내가 이렇게 일반 회사 속에서는 참 특이한 사람이 될 수 있구나 라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신입사원 연수가 끝나고 처음 발령받은 곳은 CU 삼성전자 서초 사옥. 엄청난 의욕과 엄청난 열정과, 엄청난 패기로 삼성전자의 모든 여직원들에게 말을. 아니, 내가 맡은 점포를 최고의 점포로 만들어보자라는 일념은 6년여간의 배우 활동 및 연극 수업으로 다져진 거친 발성으로 시작되었다. '반갑습니다 CU입니다!' 를 외치면 돌아보는 사람들, 그 우렁찬 목소리에 담긴 힘이 1달만 지나면 회사 내에서 인정받는 사원이 되어 탄탄대로의 길을 갈거라는 꿈을 꾸기는 개뿔. 매출 올리는 것은 내 역량의 문제가 아니였다. 하지만, 매일같이 새로운 사람들을 접하고, 친해지면 말도 걸면서 인사도 하고, 내 맘대로 점포도 꾸며보고 하는 것들, 그리고 스태프와 농담따먹기도 하고, 그들과 점포 업그레이드를 위해 고민하는 순간들은 나의 하루하루를 즐겁게 만들었다. 지루하고 일상적인 삶에서 벗어난 직장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그 당시 나에겐 새로운 행복이었다.
그리고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삼성전자에서 미소를 띄우며 아름다운 여.. 아니 모든 고객들에게 친절을 베풀던 나의 노력이 보기 좋았는지, 난 금새 새로운 곳으로 점포를 옮기게 되었다. 그곳은 바로 CU 서초중앙로. 직영점으로써 매출을 빠르게 올리는게 가장 큰 지상과제인 험난한 점포였다. 그곳에서의 기억은 짧게 정리된다. '내가 8시부터 15시까지 스태프 업무를 보며 매니저 일도 겸했다' 라고. 그렇게 힘들게 일하는게 보기 안쓰러웠는지, 1달 후 CU 선릉SK허브점이라는 곳으로 발령을 받았다. 이 곳에서의 내 매니저 업무가 가장 빛을 발하지 않았나 싶다. 평수 약 12평. 월세는,, 어마어마했고, 이 곳 역시 매출을 올려야 하는 지상 최대의 과제가 나에게 주어졌다. 어느새 회사에 입사한지는 3개월이 된 시점. 이제 제대로 내 편의점을 만들어보자 라는 생각은 다양한 아이디어를 떠오르게 해 줬고, 그건 실제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편의점에 뮤지컬 노래를 틀기도 하고, 진선여고 학생들을 위해 방명록 제도를 운영했고, 시식대에 유머게시판을 만들고, 모디슈머 게시판을 만들어 혼자 밥먹는 쓸쓸한 영혼들을 피식거림 몇번으로 위로하기도 했다. 빼뺴로데이때는 에반게리온 컨셉으로 빼뺴로를 진열해 완판하는 쾌거도 이루었다. (물론 안의 조종사는 곰돌이 인형으로 대체했다. 심지어 이 4만원짜리 곰돌이 인형이 팔리기도 했다! 취객손님에게) 이 떄가 1년여간의 매니저중 두번째로 즐겁지 않았나 싶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실험해보고, 좋은 결과까지 냈기 떄문이다.
이 후 CU 서초중앙점, CU 서초고교점, CU 신사현대점, CU 압구정역점, CU 신사월드점, CU 강남세브란스점까지. 총 9개의 점포를 역마살 낀 봉이 김선달처럼 돌아다니며 다양한 경험을 했다.저 중 CU 서초고교점은 내 인생 최고의 점포 경험으로 꼽힌다. 점포 매니저를 하며 수능을 앞둔 고3친구들과 친해지고, 그들의 인생을 상담해주고 내 연애를 상담받고(?) 나의 과거를 반추하며 나의 고3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그들의 순수함을 보면 나도 덩달하 아이가 되는것 같아 좋았다. 그리고 그들에게 내 인생 최고의 아재개그를 배우기도 했다. '부부가 산에 올라가면? 쁏 돌돔이 짜부되면? 뚊' 이라는 기가막힌 개그를 서초고 3학년 불과 수능을 반년 앞둔 아이들에게 배웠으니 말이다.
2014년 7월부터 2015년 6월까지. 약 1년여간의 매니저 생활은 나를 참 가슴뛰게 만들었다.그리고 즐거웠다. 특히 마지막 점포 3개의 매니저를 할 때는 3대3 미팅을 하는 도중에도 다음날 발주때문에 중간 1시간을 비우는 일까지 만들었을 정도니.. 그 때 나의 핑계가 잊혀지질 않는다. '나, 스태프 빵구나서 그거 해결하고 올게!' 이 정도면 나의 열정은 하늘이 감동하고 땅이 놀라는 수준이긴 했다.
난 어떻게 즐거울 수 있었을까 3년이 지난 지금, 그때를 돌이켜보면 내가 단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을 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왕 맞닥뜨린 '매니저'(직장인)의 삶을 한번 즐겨보자라는 생각이 컸다. 내가 보증금 억대가 넘어가는 점포의 주인이 되어 마음껏 경영해본다는 건 어느누구도 하지못할 억만금의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분명 스태프 문제가 생기거나, 평가가 안 좋을 땐 많이 지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나는 내가하고 있는 일에서 긍정적인 의미를 찾으려 노력했다. 무언가를 항상 즐거움이 대상으로 바라보려 했다. 그래서 새로운 곳으로 옮기는게 두렵지 않았다. 분명 또 즐거운 일이 생길 것이니까. 회사에서 신입사원이 즐거움을 찾는 곳으로 회사를 바라본다는게 쉽지는 않다. 매니저야 내가점포의 왕이고 내가 직접 운영을 하는 것이니 가능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힘들것이다. 그러나 신입사원이기에 그게 가능하다. 잘 모르기때문에.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무엇이 즐거울지 모르기 떄문에 즐거움을 찾으려 노력할 수 있다. 이게 내가 1년여간 배운 가장 큰 자산이었다. '내가 속한 회사의, 내 업무에서 즐거움은 어디에 있을까'를 끊임없이 찾으려 한 것.
여기계신 멘티분들도 언젠가 직장인이 되고, 신입사원이 되어 새로운 환경을 맞닥뜨릴 것이다. 그 때 꼭 이 생각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속초에서 포켓몬을 찾으며 사람들이 즐거움을 얻듯이, 이 회사에 숨겨져있는 즐거움몬을 찾아내서 즐거움 마스터가 되보자! 라는 생각을. 그게, 여러분의 하루하루를 가슴뛰게 만들 것이기에.
그럼 다음 이야기는, 또 글이 쓰고 싶어지는 어느날 계속되겠습니다.
다들 좋은 '오늘'이 되십시오!ㅎ